본문 바로가기

1960–1969년의 기록 1,155건

구간을 선택해 더 좁은 기간으로 좁혀 보세요.

가장 많은 기록
1969 · 133건
관련 엔티티
723개
날짜가 확정된 기록
72%
구간을 선택해 기록 보기 1969 · 133건

국가와 다른 국가 국민 간 투자분쟁 해결에 관한 협약의 발효로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설립. 투자자와 국가 사이의 분쟁에 조정·중재 절차를 제공함으로써 국제 민간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기반 마련.

조선 중기 경상도 감영을 배경으로 한 임권택의 사극. 감사의 외동딸을 둘러싸고 선비 유중서와 홍시건 사이에 벌어지는 삼각관계를 중심으로, 지방 관아와 혼사를 소재로 삼은 작품. 김정환의 각본에 김진규·김지미·트위스트 김·독고성이 출연하고 이유동이 촬영을 담당. 새한필름 제작으로 완성된 1960년대 중반 임권택의 사극 연출작.

임권택

수일간의 호우 뒤 11월 4일 새벽 아르노강이 범람해 강변 주거지와 피렌체 역사 도심으로 물과 진흙이 밀려듦. 국립중앙도서관 앞 제방을 넘은 물이 산타크로체 지구와 박물관까지 확산하고, 베키오 다리의 상점과 도심 건축물에도 큰 피해를 남김. 생활 공간의 침수와 함께 회화·조각·장서가 물과 오염물에 노출되면서, 주민 구조와 문화유산의 긴급 수습을 동시에 수행해야 했던 재난. 강물이 빠진 뒤에도 작품 재료에 스며든 수분과 진흙, 유출된 연료가 손상을 이어가면서 수습 작업이 장기 보존 문제로 전환됨. 유명 미술품의 피해와 주민의 생활 기반 상실이 겹쳐, 재난 구호와 문화재 구조를 분리하기 어려웠던 상황.

1966년 피렌체 홍수

홍수 피해가 알려지자 이탈리아 안팎에서 구호품과 복구 자금을 모으는 운동이 확산됨. 미국에서는 미술사 연구자와 큐레이터·보존 전문가들이 이탈리아미술구호위원회(CRIA)를 조직하고, 홍수 발생 일주일 안에 전국적인 지원 활동을 가동함. 미술품뿐 아니라 도서와 기록물까지 지원 범위를 넓히고 장비·전문가·복원 교육비를 제공하며, 긴급 구조를 여러 해에 걸친 국제 보존 협력으로 연결한 움직임. CRIA는 피렌체와 베네치아로 전문가를 보내고 체류비와 장비를 지원하는 한편, 복원 교육을 위한 장학 활동과 전문 시설 지원에도 참여함. 해외의 관심을 일시적인 기부로 끝내지 않고 현장 기술과 인력의 축적으로 연결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 협력.

1966년 피렌체 홍수

우피치 궁전의 국가기록원 지상층 약 40개 방이 침수되며 행정·사법 기록과 종교기관 문서 등 방대한 자료가 젖음. 직원과 자원봉사자들은 기록을 옮기고 여러 건조 방법을 시험하며 문자의 판독 가능성을 우선 지키려 했으나, 그 과정에서 표지와 제본이 분리·소실되고 종이의 변형과 자료의 흩어짐도 발생함. 뒤이은 조사에서는 피해 규모가 초기 추정보다 큰 약 7만 점으로 파악됨. 기록 내용의 긴급 구제와 원래 물질적 형태·맥락의 보존이 항상 일치하지 않음을 드러내며, 이후 정리와 복원을 수십 년의 과제로 남긴 대응.

1966년 피렌체 홍수

유엔 총회가 결의 2222(XXI)로 우주조약 문안을 승인한 사건. 우주탐사의 자유와 국가적 영유권 금지, 대량살상무기 배치 금지, 국가책임을 하나의 틀에 담은 냉전기 다자 합의. 총회 승인 자체가 각국의 비준이나 조약 발효를 대신한 것은 아니며, 이듬해 서명과 비준을 위한 정치·법적 토대의 마련.

우주조약

빌 포스터 시니어가 이끈 하와이 패션 길드가 1965년부터 금요일에 알로하 셔츠를 입고 출근할 수 있도록 기업과 고용주를 설득하는 ‘알로하 프라이데이’ 운동을 전개함. 1966년 무렵 이 관행이 하와이 전역의 직장 문화로 퍼지며, 남성 직원들이 매주 금요일 알로하 셔츠를 업무 복장으로 착용하는 흐름이 형성됨.

알로하 프라이데이는 열대 기후에 맞는 편안한 복장을 장려하는 동시에 하와이 의류 산업을 지원하려는 지역 산업 운동의 성격도 지님. 이후 젊은 세대와 기업들이 이를 폭넓게 받아들이면서, 알로하 의복은 1970년대에 들어 금요일뿐 아니라 평일 비즈니스 복장으로도 일반화됨.

이는 훗날 미국 본토와 영어권으로 퍼진 ‘캐주얼 프라이데이’ 문화의 선행 사례로 자주 언급됨.

알로하 셔츠 (하와이안 셔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