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케이, ‘객체지향 프로그래밍’ 용어 사용
앨런 케이가 대학원 시절인 1966년 또는 1967년경, 캡슐화된 작은 계산 단위들이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object-oriented programming’이라는 표현을 사용함. 이 개념은 이후 스몰토크의 설계 원리와 결합하며 객체지향 프로그래밍을 가리키는 대표적 용어로 정착함.
앨런 케이가 대학원 시절인 1966년 또는 1967년경, 캡슐화된 작은 계산 단위들이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object-oriented programming’이라는 표현을 사용함. 이 개념은 이후 스몰토크의 설계 원리와 결합하며 객체지향 프로그래밍을 가리키는 대표적 용어로 정착함.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홀에서 일반상대성이론과 우주론을 전공해 응용수학·이론물리학 박사학위를 취득. 팽창하는 우주의 특이점 문제를 다룬 박사 연구가 이후 특이점 정리로 이어지는 출발점.
1966년 동양방송(TBC) 3기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해 방송 활동을 시작함.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오가며 진행 경험을 쌓고, 이후 《장수만세》와 《밤을 잊은 그대에게》 등으로 이름을 알림.
일부 후대 자료에는 1967년으로 적힌 경우가 있으나, 황인용 본인의 회고와 SBS 제공 프로필은 1966년 입사로 기록함.
1966년부터 각 주가 자체 메디케이드 계획을 연방 승인받아 제도를 순차 시행. 1966년 말까지 26개 주가 도입했고 1970년에는 알래스카와 애리조나를 제외한 모든 주가 참여했으며, 알래스카는 1972년·애리조나는 1982년에 합류. 연방 지침 안에서 주가 자격·급여를 설계하는 연방-주 협력 운영 방식이 전국에 정착한 과정.
뉴욕의 팔라디움 볼룸이 1966년 문을 닫음. 이 공연장은 1961년 마약 단속 뒤 주류 판매 면허를 잃었고, 파트너 댄스에 대한 관심 하락도 운영에 영향을 줌. 뉴욕 맘보 무용가와 라이브 밴드의 대표적 만남터가 사라짐.
마틴 스콜세지와 마르딕 마틴이 훗날 《비열한 거리》가 되는 작품의 초기 아웃라인을 작성. 뉴욕 리틀이탈리에서 성장한 경험과 친구들의 생활을 바탕으로 약 7년 동안 각본을 발전시킨 작업. 《공황시대》 이후 존 카사베츠의 조언을 계기로 개인적인 경험을 담은 영화로 돌아가려던 스콜세지의 방향과 맞물린 기획.
베트남전쟁 기간 주월한국군사령부 방첩대장으로 근무함. 당시 방첩대는 군사 보안과 방첩뿐 아니라 군 관련 민간 용역과 물자 등에 관한 업무에도 관여함.
신필름이 안양촬영소를 인수하며 촬영시설과 전속 인력을 기반으로 한 스튜디오 체제를 확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대학 공개강의 자료가 제시한 인수 연도는 1966년이며, 한국영상자료원 온라인 전시의 표기는 1967년.
대규모 시설과 인력을 유지하는 고정비는 이후 경영 부담으로 작용. 작품의 양산과 흥행 부진이 겹치며 재정난으로 이어진 제작 기반의 확대.
최은희가 직접 연출하고 주연을 맡은 《민며느리》로 제5회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 가난과 시집살이에 시달리는 점순을 연기하며 감독 데뷔작에서 받은 연기상.
1962년 《상록수》, 1965년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에 이어 세 번째 대종상 여우주연상. 영화 개봉은 1965년, 이번 시상은 이듬해인 1966년.
베트남에서 성장한 서극이 홍콩으로 이주함. 이후 미국 유학과 뉴욕 활동을 거쳐 홍콩 방송계와 영화계에 진출함.
훗날 서극은 베트남·홍콩·미국을 오간 경험을 중국인들의 이주와 정착에 대한 관심에 연결했으며, 《상하이 블루스》를 설명할 때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언급함.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 지대에서 현상금 사냥꾼과 무법자 무리가 대결하는 이탈리아·스페인 합작 서부극임. 필리프 르루아가 양키를, 아돌포 첼리가 무법자 두목 그란데 콘초를 연기함. 브라스는 극단적인 세부화면과 클로즈업을 통해 만화처럼 인물을 구성하려 했다고 회고했으며, 국립영화자료원의 크레디트에는 편집자가 후안 올리베르로 기록됨.
올리비아 핫세가 런던 연극 《미스 진 브로디의 전성기(The Prime of Miss Jean Brodie)》에서 제니 역을 맡아 버네사 레드그레이브와 공연. 뮤리얼 스파크의 소설을 제이 프레슨 앨런이 각색하고 피터 우드가 연출한 작품. 핫세의 회고에 따르면 《컵 피버(Cup Fever)》를 본 앨런의 관심이 캐스팅으로 이어진 무대 활동.
한국전쟁 당시 적의 움직임을 파악해 국군에 알린 여교사의 행적을 영화화한 임권택의 전쟁 드라마. 피난하지 못한 교사가 위험을 무릅쓰고 정보를 전달해 전투에 기여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민간인의 전쟁 경험을 다룬 작품. 김종수 원작을 김정환이 각색하고 합동영화가 제작. 김진규·엄앵란·박암·이경희의 출연과 이유동의 촬영으로 완성된 영화.
용어와 세부 표현을 손질한 제3판 출간. 《반지의 제왕》과의 정합성을 높이는 수정이 반영된 판본 계보의 주요 분기점.
앨런 앤드 언윈의 영국 제2판 출간. 새 서문과 작가의 수정 사항을 반영하여 초판 이후의 본문을 정비한 판본으로, 이후 여러 영어판과 번역판이 따르게 된 개정 텍스트의 중요한 기반.
닌텐도가 요코이 군페이가 고안한 울트라 핸드를 출시함. 손잡이를 움직이면 격자형 팔이 길게 늘어나 앞쪽 집게로 물건을 잡는 장난감이었음. 카드 제조를 중심으로 성장한 회사에서 기구의 움직임 자체를 놀이로 만든 상품이며, 요코이가 완구 개발자로 활동을 넓히는 계기가 됐음.
호레이쇼 앨저상 수상.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학업과 발명을 이어 간 생애가 조명된 이력으로, 기술적 성과뿐 아니라 역경을 극복한 개인의 경로에 대한 평가.
1964년부터 《헤어》를 구상하던 배우 제임스 라도와 제롬 래그니가 1966년 말 골트 맥더못을 만나 음악 작업을 본격화함. 라도와 래그니가 대본·가사를 맡고 맥더못이 곡을 쓰는 창작진의 구성이 이때 갖추어짐.
히피 공동체와 반전 시위의 현장감을 기존 뮤지컬과 다른 음악으로 옮기려 했던 두 작가에게 맥더못의 음악은 중요한 전환점이었음.
히치콕이 허먼의 음악을 채택하지 않으면서 두 사람의 장기 협업이 끝남. 제작 환경과 음악적 방향에 대한 이견이 드러난 결별이었으며, 허먼은 이후 다른 감독들과 작업을 이어 감.
프랑수아 트뤼포의 영어권 영화 작업에 참여함. 히치콕과의 결별 이후에도 유럽 감독과 협업하며 자신의 음악적 언어를 새로운 맥락에서 이어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