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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1969년의 기록 1,15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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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가 남정임·김광수 주연의 《공주님의 짝사랑》을 연출. 궁궐에 갇힌 생활을 답답해하는 숙경공주가 정해진 혼인보다 자신이 선택한 사랑을 찾는 이야기.

감독 자신이 주연을 맡았던 《민며느리》와 달리 젊은 배우들을 앞세운 사극 로맨스. 공주의 외출과 변장을 통해 여성의 선택을 중심에 놓은 두 번째 연출작.

최은희 감독

최은희가 안양영화예술학교의 교장으로 후진 양성에 참여. 한국영상자료원의 2013년 회고전 소개가 재임 시작을 1967년으로 제시한 교육 활동. 일부 지역 자료의 1969년 취임 표기와는 차이가 있는 이력.

최은희는 촬영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학생들의 연기 교육에 활용. 이후 자신이 연출한 《총각선생》에 학교 학생들이 출연하며 수업과 영화 제작을 연결.

최은희 교장

면도 중 스스로 상처를 내는 남자를 그린 약 5분의 단편 《The Big Shave》 제작. 깨끗한 욕실이 피로 물드는 장면과 마지막의 ‘Viet ’67’을 통해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을 비판한 작품. 벨기에 실험영화제의 지원으로 만들었으며, 부조리한 상황과 폭력을 결합하는 스콜세지 초기 연출의 특징이 뚜렷하다.

마틴 스콜세지

문정숙·신성일 주연의 1966년작 《만추》로 1967년 제10회 부일영화상 감독상 수상. 같은 작품의 최우수작품상 및 배우·촬영 수상과 구분되는 감독 개인의 수상.

이만희

제5차 세계기상총회가 1968~1971년 세계기상감시계획 및 시행계획을 채택하여 1963년의 구상을 구체적인 운영체계로 발전시킨 결정. 전지구관측시스템(GOS), 전지구통신시스템(GTS), 전지구자료처리·예측시스템(GDPFS)을 세계·지역·국가 센터의 역할 분담으로 연결한 체계 정비.

WMO와 국제학술연합회의(ICSU)가 전지구대기연구계획(GARP)을 추진하여 대기 순환과 예측 가능성 연구를 국제적으로 조직한 전환점. 강화된 공동관측과 수치모델 연구를 연결하고, 1970년대 대규모 현장실험과 전지구 실험으로 이어진 과학협력 기반 형성.

미국 정부가 트랜싯의 민간·상업 이용을 개방함. 해군용으로 출발한 체계가 해양 조사와 상선 항법으로 확장되는 계기가 되었음. 다만 신호 이용이 가능해진 것과 저렴한 수신기가 널리 보급된 것은 별개의 단계였음.

해리 에드워즈와 켄 노엘 등이 산호세에서 올림픽 인권 프로젝트를 조직함. 국제대회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흑인 선수들이 정작 일상과 스포츠 조직 안에서는 차별받는 현실을 문제 삼음.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로디지아의 참가 배제, 흑인 지도자 기회 확대 등을 요구하며 1968년 대회 보이콧을 논의했으며, 이후 시상식 항의의 배경이 됨.

북한군 특수부대원 31명이 박정희 대통령 등을 살해할 목적으로 서울에 침투해 청와대 습격을 시도했으나 저지됨. 이 사건과 이어진 푸에블로호 나포는 한반도 긴장을 높였으며, 박정희 정부는 향토예비군 창설 등 안보 대응을 강화함.

장희빈의 입궁과 권력 획득, 몰락을 다룬 임권택의 궁중사극. 숙종의 총애를 받은 궁녀가 중전의 자리에 올랐다가 정치적 반격으로 밀려나고, 다시 권력을 얻으려는 음모 속에서 파국을 맞는 이야기. 남정임·신성일·태현실이 주요 출연진으로 참여하고 도금봉·허장강·한은진·정애란 등도 출연. 장천호 각본, 안윤혁 촬영의 한국영화사 제작 영화.

임권택 신성일 출연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운영을 둘러싼 갈등 속에 앙리 랑글루아가 해임됨. 정부 측은 관리와 필름 보존의 문제를 제기했고, 지지 영화인들은 기관의 자율성 침해에 반발함. 국제적인 지지와 상영 협조 중단 움직임, 시위가 이어지면서 영화유산의 공적 관리와 창작계의 독립성 문제가 충돌한 사건이 됨.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베트남 꽝남성 퐁니·퐁넛 지역에서 작전 중이던 한국군 해병 제2여단 소속 일부 장병들이 비무장 민간인들을 살상한 사건. 피해 생존자 응우옌티탄과 가족들이 입은 피해는 이후 대한민국을 상대로 한 국가배상소송에서 다루어짐.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23년 2월 7일 한국군의 민간인 살상에 대한 대한민국의 배상책임을 인정했으며, 2025년 1월 17일 항소심도 정부의 항소를 기각함. 정부는 같은 해 2월 상고하였고, 2026년 9월 7일 원고 측 공동성명에서도 대법원에 계류 중인 사건으로 확인됨.

박정희 사건 당시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