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증녀, 《산불》로 제5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수상
주증녀가 《산불》로 제5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함.
주증녀가 《산불》로 제5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함.
김희갑이 《산》으로 제5회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함.
한은진이 《까치소리》로 제5회 청룡영화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함.
이풍구가 《종자돈》으로 제5회 청룡영화상 아역특별상을 수상함.
오영일이 《사랑은 당신만》으로 제5회 청룡영화상 신인특별상을 수상함.
신봉승이 《산불》로 제5회 청룡영화상 각본상을 수상함.
김진규·신성일·신영균이 남자 인기상, 김지미·남정임·윤정희가 여자 인기상을 받아 제5회 청룡영화상 남녀 인기베스트6에 선정됨.
서정민이 이만희 감독의 1966년작 《만추》로 1967년 제5회 청룡영화상 흑백촬영상 수상. 문정숙·신성일 주연 원작 영화의 촬영에 대한 수상으로, 2011년 김태용 감독의 동명 영화와 구분.
안인숙이 《섬마을 선생》으로 제5회 청룡영화상 장려상을 수상함.
정윤주가 《만선》으로 제5회 청룡영화상 음악상을 수상함.
박석인이 《한》으로 제5회 청룡영화상 미술상을 수상함.
차정남이 《한》으로 제5회 청룡영화상 기술상(조명)을 수상함.
홍동혁이 《사격장의 아이들》로 제5회 청룡영화상 색채촬영상을 수상함.
과학기술자의 후생복지와 연구 활동을 지원하고 국민의 과학기술 이해를 넓히기 위한 재단법인 과학기술후원회의 설립 허가. 1967년 7월 설립 방침 발표와 11월 발기인 총회를 거쳐 12월 21일 법인 설립 허가, 12월 30일 설립 등기를 완료한 과정. 정부 보조금과 출연금, 민간 기부금을 재원으로 연구 활동 지원과 국민 생활의 과학화를 함께 추진하려 한 조직. 이듬해 첫 이사회에서 윤일선을 이사장으로 선임하고 과학기술자 실태 파악, 퇴직 과학기술자의 복지 지원, 산업계와의 협력 등을 주요 사업으로 설정. 1968년 7월에는 유공 과학기술자 9명에게 매달 지원금을 지급하며 후원 사업을 구체화한 출발.
장준하가 1967년 제7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뒤 국회의원 겸직 문제에 따라 『사상계』의 발행권을 부완혁에게 넘김. 부완혁은 같은 해 12월부터 발행인 겸 사장을 맡아 잡지를 운영함.
이는 창간 이래 장준하가 직접 이끌어 온 『사상계』의 경영·발행 체제가 바뀐 전환점. 다만 『사상계』의 비판적 논조와 정치적 성격은 이후에도 이어졌으며, 1970년 김지하의 「오적」 게재와 필화 사건, 강제 폐간으로 이어지는 배경 가운데 하나가 됨.
1965년 별세한 부친 고노 이치로의 지역 기반을 물려받아 중의원 의원 선거에 출마해 처음 당선됨. 와세다대학교 졸업 후 종합상사 마루베니의 전신 회사에 근무하다 정계에 입문한 경로. 이후 42년여에 걸쳐 14차례 연속 당선되며 장수 의원의 길을 시작한 사건.
세계보건기구가 천연두 강화 박멸계획을 시작함. 백신의 광범위한 공급과 접종에 더해, 환자 발생 감시와 접촉자 추적, 환자 주변 집중 접종을 결합한 국제 보건 사업.
실험영화 《Kusama’s Self-Obliteration》을 제작함. 같은 시기 보디 페인팅과 ‘자기소멸’을 주제로 한 퍼포먼스를 활발히 전개하며 회화·설치의 반복 개념을 신체와 영상으로 확장함.
1967년 포터 왜고너의 《The Porter Wagoner Show》에서 기존 듀엣 파트너 노마 진을 대신할 가수로 합류. 이후 RCA 레코드와 계약해 왜고너의 듀엣 파트너인 동시에 솔로 가수로 음반 활동 시작.
로런스 올리비에가 맹장염으로 공연할 수 없게 되자 안소니 홉킨스가 내셔널 시어터의 《죽음의 무도》에서 올리비에의 역할을 대신함. 초기 무대 경력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기록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