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삼성, 최동원·김시진 포함 대형 트레이드
최동원과 김시진을 포함한 일곱 선수를 맞바꾼 롯데와 삼성의 대형 트레이드. 첫 우승의 상징이던 최동원이 부산을 떠나고 김시진이 롯데 유니폼을 입게 된 구단 전력과 팬 기억의 전환점.
최동원과 김시진을 포함한 일곱 선수를 맞바꾼 롯데와 삼성의 대형 트레이드. 첫 우승의 상징이던 최동원이 부산을 떠나고 김시진이 롯데 유니폼을 입게 된 구단 전력과 팬 기억의 전환점.
전두환이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하고, 재임 중 국정의 과오와 친인척 비리에 대한 최종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밝힘. 공개한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겠다는 뜻도 표명한 뒤 이순자와 함께 강원도 인제의 백담사로 떠남.
5·18에 대해서는 비극적 결과에 책임을 느끼고 피해의 상처를 충분히 치유하지 못한 점을 후회한다고 언급함. 다만 유혈 진압의 구체적인 지휘·가해 책임을 인정하지는 않아, 일반적인 국정 책임과 피해자에 대한 유감 표명을 구체적 가해행위에 대한 사죄와 구분할 필요가 있음.
박광수의 장편 연출 데뷔작 《칠수와 만수》 국내 개봉. 박중훈과 안성기가 도색공 칠수와 만수로 만난 사회극.
두 노동자가 대형 간판 위에서 나누는 푸념이 고공시위로 오인되는 이야기. 칠수의 탈출 욕망과 만수를 얽매는 연좌제의 그늘을 통해 1980년대 한국사회의 계층·분단 문제를 다룬 작품.
보니 타일러가 냉전 말기 소련에서 약 6주간 순회공연을 진행함. 당시 소련에서 공연한 초기 서방 대중음악 가수 가운데 한 명으로 기록. 타일러는 훗날 자신을 소련에서 공연한 최초의 서방 여성 가수라고 회고함. 서유럽과 북미를 넘어 동유럽권에서도 높은 인지도를 확보했음을 보여준 활동.
김익렬이 1988년 12월 10일 서울에서 사망. 국립서울현충원 묘비의 사망일 표기와 후대 묘역 취재 사진으로 확인되는 날짜.
육군 중장으로 예편한 뒤 남긴 제주4·3 회고는 사후 유족을 통해 공개되어 《4·3은 말한다》 제2권에 수록된 유고.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된 군인.
국회 언론청문회에서 보도지침과 문화공보부의 언론 통제에 관한 증언이 이루어지고, 다음 날에는 주요 신문사 사주들이 출석함. 언론에 가해진 국가의 강압뿐 아니라 경영진의 대응과 권력과의 관계도 공개적으로 질문받았음. 민주화 이후 통폐합과 해직의 책임을 사회적으로 따지는 장이 열렸으나, 청문회 개최와 피해 회복의 완료는 구분할 필요가 있음.
람보가 소련군에게 붙잡힌 트라우트먼 대령을 구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하는 액션 영화. 스탤론이 주연과 공동각본을 담당.
1988년 12월 17일 한국 극장 개봉.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의 《위험한 관계》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에서 개봉. 18세기 프랑스 귀족사회를 배경으로 메르테유 후작부인과 발몽 자작이 타인의 사랑과 정절을 내기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벌어지는 파국을 그린 작품
키아누 리브스는 세실에게 음악을 가르치며 사랑에 빠지는 당스니를 연기. 글렌 클로즈, 존 말코비치, 미셸 파이퍼, 우마 서먼과 함께 귀족들의 유혹과 복수에 얽히는 인물들의 관계를 구성
런던 히스로에서 뉴욕으로 향하던 팬암 103편 보잉 747기가 스코틀랜드 로커비 상공에서 폭탄에 의해 파괴됨. 탑승자 259명 전원과 지상 주민 11명 등 270명이 사망함. 유족과 지역사회에 큰 상실을 남겼으며 스코틀랜드 당국과 FBI 등의 장기적인 국제 수사로 이어짐. 회사의 경영위기를 설명할 때도 피해자의 삶과 항공보안의 과제를 별도로 살펴볼 필요가 있음.
《저널 오브 컨슈머 리서치》 15권 3호에 실은 연구에서 동일한 다진 소고기를 '75% 살코기'와 '25% 지방'으로 각각 표기해 소비자 평가 비교. 살코기 비율로 표기된 쪽이 맛과 품질 전반에서 더 호의적으로 평가되었고, 실제로 고기를 시식한 뒤에는 그 격차가 줄어드는 양상 관찰. 위험 선택이 아닌 단일 속성의 표기 방식만으로도 평가가 달라진다는 점을 보여 속성 프레이밍이라는 별개 유형이 성립하는 근거.
1988년 미국 대선을 배경으로, 상대 후보의 공격 메시지를 미리 약하게 노출해 유권자의 태도를 면역시키는 정치 캠페인 접종을 현장 연구로 검증함. 위협과 선제적 반박이라는 두 기제가 실제 선거 설득에서도 작동함을 보였고, 1990년 다이렉트 메일 실험 등으로 확장함. 실험실에 머물던 접종 이론을 정치·광고 등 실제 설득 환경으로 끌어낸 분기점.
한·중 수교가 이뤄지기 전인 1988년, 한국 가수로는 처음으로 중국 본토 무대에 서서 공연함. 냉전기 문화 교류가 드물던 시기에 이뤄진 이례적 공연. 그의 영향력이 국경을 넘었음을 보여 준 사례.
자라가 포르투갈 포르투에 스페인 밖 첫 매장을 열며 국제 확장을 시작함. 이 시점부터 자라는 지역 체인을 넘어 유럽과 세계 시장으로 진입하는 브랜드가 됨.
인텔 CEO 앤디 그로브가 TSMC의 제조 공정을 검증하고 인증하며 주문을 냄. 무명의 신생 파운드리였던 TSMC가 세계 최고 반도체 기업으로부터 품질을 공인받은 사건. 이 인증을 발판으로 TSMC가 국제 시장에서 신뢰를 얻고 고객을 넓히는 전환점.
1988년 들어 ASM 인터내셔널이 합작에서 발을 빼고 필립스도 대규모 비용 절감에 나서며 존폐의 기로에 섰으나, 필립스 이사회의 지원으로 사업을 이어감. 같은 해 ASML이라는 사명을 공식 채택하고 독립적인 주체로 전환함. ASML은 약어가 아니라 회사의 정식 명칭으로, 이후 도약의 발판이 된 전환점.
PARC 컴퓨터과학연구소를 이끌던 마크 와이저가 컴퓨팅의 '세 번째 물결'로서 유비쿼터스 컴퓨팅 개념을 제시. 기술이 일상의 배경으로 스며드는 '차분한 기술'을 핵심으로 삼아, 메인프레임·개인용 컴퓨터 이후의 컴퓨팅을 전망. 이후 모바일·임베디드·사물인터넷 흐름의 사상적 기반이 됨.
1988년 성균관대학교 사학과에 한국사 담당 교수로 부임. 성균관대에서 학사부터 박사까지 마친 연구자의 부임으로, 학과의 연구 인력 재생산이 자리를 잡았음을 보여 준 사례. 이후 한국 근현대사·사회주의운동사 연구와 후학 양성을 이어 감.
CNRI 재직 중 빈트 서프가 상용 전자우편 서비스 MCI Mail과 인터넷의 연결을 추진함. 1988년 상용 전자우편과 인터넷 사이의 연동을 위한 허가와 실험을 추진했고, 1989년 MCI Mail이 인터넷과 연결되며 상용 네트워크와 연구용 인터넷 사이의 경계를 넓히는 초기 사례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