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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18,099

정렬

1980 20건
46년 전

병원체를 가진 등줄쥐가 한탄강 유역에서 포획되었고, 한국전쟁 때 환자가 많이 발생한 지역도 관련이 있기 때문에 한탄강 이름을 따 한탄바이러스 (Hantaan Virus)로 명명.

제인 오스틴의 어린 시절 극본을 무대에 올리려는 뉴욕 연극인들의 경쟁을 다룬 영화. 자브발라가 발견된 극본을 이야기의 출발점으로 삼고, 1980년 1월부터 3월까지 뉴욕 현지에서 촬영한 작품.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

미국의 버나드 라운과 소련의 예브게니 차조프를 비롯한 의사들이 제네바에 모여 핵전쟁 예방을 위한 국제 협력의 원칙에 합의. 두 심장학자의 오랜 학문적 교류와 서신 왕래를 바탕으로, 군비경쟁의 적대 진영에 속한 의료인들이 공동 조직을 출범시킨 사건.

핵전쟁과 관련 문제에 활동의 초점을 맞추고,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의사의 책임을 정치적 입장보다 앞세우기로 결정. 동서 양측의 의료 지식을 모아 핵전쟁의 결과를 시민과 지도자에게 알리되 초당파적 성격을 유지한다는 원칙 확립. 국가 간 대립을 넘어 예방의학의 관점으로 핵 위협에 대응하는 운동의 시작.

국제핵전쟁방지의사회

동양통신과 합동통신을 합치고 시사·경제·산업 등 군소 통신사를 흡수한 연합통신이 출범함. 통신사는 신문·방송에 기사를 공급하므로 통신망의 단일화는 독자가 접하는 뉴스의 출발점에도 영향을 미쳤음. 설립 자본금의 일부는 기존 통신사들의 현물출자로 마련되었고, 이후 지분 이전을 거쳐 KBS와 MBC가 대주주가 되었음.

국가보위입법회의가 의결한 노동조합법 개정법률을 전두환 대통령이 공포함. 개정법은 노조 설립을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로 규정하고, 근로자 30인 이상 또는 해당 사업장 근로자의 5분의 1 이상의 찬성을 설립 요건으로 정함.

직접적인 근로관계가 없는 사람 등의 노조 설립·해산 및 단체교섭 개입을 금지하고, 상급 노동단체에 교섭을 위임할 때에는 행정관청의 승인을 받도록 함. 사업장 간 연대와 외부 지원, 상급단체의 교섭 활동을 제약하는 법적 장치가 강화되면서, 정권 초기 노동계 정화조치에 이어 노조의 조직과 활동에 대한 제도적 통제가 확대됨.

전두환

전두환 정부가 국가보위입법회의를 거쳐 제정한 「언론기본법」을 공포함. 이 법은 신문·통신·방송 관련 법체계를 통합하고 언론의 공적 책임을 내세웠으나, 정부가 정기간행물 등록을 취소하거나 발행을 정지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했음. 앞서 이루어진 언론인 강제해직과 언론사 통폐합에 법적 통제 장치가 결합하면서 제5공화국 언론 통제체제가 굳어졌으며, 법률은 민주화 이후인 1987년 폐지됨.

1980년 12월 14일 방영된 《코스모스: 개인적 여행》 12화 〈Encyclopaedia Galactica〉에서 "특별한 주장에는 특별한 증거가 필요하다"고 언급함. 외계 문명의 지구 방문 가능성과 UFO 사례를 엄격하고 회의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맥락에서 제시. 텔레비전 방영을 통해 격률을 대중적으로 확산한 계기.

세이건의 표준

시인 김지하가 형집행정지로 석방됨. 민청학련 사건으로 수감됐다가 1975년 잠시 풀려난 뒤, 인혁당 사건의 고문·조작을 폭로하고 다시 구속되어 장기간 옥살이를 한 끝의 출감.

전두환 정부 출범 뒤 이루어진 석방이지만, 이전 정권에서 시작된 국가폭력과 장기 구금의 피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음. 김지하는 출감 이후에도 집필과 사상적 모색을 이어감.

전두환

본햄 사망 두 달여 뒤 남은 세 멤버와 매니저가 공식 성명을 내고 활동 종료를 선언. 새 드러머를 들여 활동을 잇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 1968년 결성 이후 12년의 활동이 마무리. 멤버 교체로 명맥을 유지하는 관행과 달리 원 편성의 완결성을 택한 결정으로 자주 인용.

레드 제플린

KBS가 수출의 날 기념식을 컬러로 중계하며 텔레비전 컬러방송을 시작함. 국내 전자업체들은 이미 컬러 수상기를 생산하고 있었지만 국내 판매와 방송은 별도의 정책적 허용을 기다려야 했음. 1980년 8월 국내 시판 허용과 11월 정부의 방송 개시 결정이 이어지면서 흑백 중심의 시청 환경이 바뀌기 시작함. 컬러 프로그램의 확대는 영상 제작과 수상기 수요를 함께 변화시켰으며, 같은 시기 언론통폐합에 따른 채널 재편과는 구분되는 기술적 전환이었음.

동아방송이 마지막 방송을 마치고 KBS에 흡수됨. 동아일보는 앞서 지면으로 방송 종료를 알렸으며, 청취자가 접하던 민영 라디오의 목소리는 강제적인 방송 재편 속에서 사라졌음. 같은 날 동양방송도 폐국하여 신문사가 방송을 함께 운영하던 체제가 해체되었음.

1980년 11월 30일 언론통폐합 조치에 따라 동양방송이 서울 본사와 부산지국의 텔레비전·라디오 방송을 종료하고 한국방송공사에 흡수 통합됨. 개국 16년여 만의 폐국으로, 당일 TV와 라디오에서 고별방송이 진행됨.

라디오에서는 황인용이 밤 11시부터 자정까지 《밤을 잊은 그대에게》의 마지막 TBC 방송을 진행함. 그는 종료 시각이 다가오자 남은 시간을 헤아리며 울먹였고 마지막 호출부호를 알린 뒤 방송을 마쳐, 언론통폐합과 TBC 폐국을 상징하는 장면 가운데 하나로 회고됨.

전두환 정부의 동력자원부가 대한석유공사 민영화에 따른 지분 인수기업으로 선경을 선정했다고 발표함. 미국 걸프사의 철수에 뒤이은 조치로, 선경은 같은 해 12월 지분 50%와 경영권을 인수해 섬유 중심 기업에서 석유·화학 분야로 사업을 확대함.

정부는 산유국과의 관계를 통한 원유 확보 능력과 자금 조달 등을 선정 이유로 제시함. 선경의 유공 인수는 그룹의 석유·화학사업 확대와 수직계열화의 토대가 되었으며, 11월의 선정 발표에 이어 12월 인수와 경영진 교체가 이루어짐.

전두환 당시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