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천이 KBO 리그 원년 정규시즌에서 250타수 103안타, 타율 0.412를 기록해 초대 타격왕에 오름. 이후 규정타석을 채운 4할 타자가 나오지 않으면서 KBO 역사상 유일한 시즌 4할 타자로 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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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헤이요 클럽 라이온스 소속 백인천이 타율 0.319를 기록해 일본프로야구 퍼시픽리그 수위타자에 오름. 일본프로야구 선수 경력의 대표적인 전성기로 기록됨.
경동고와 농업은행에서 선수로 활동한 백인천이 일본프로야구 도에이 플라이어스에 입단함. 이후 약 20년에 걸친 일본프로야구 선수 생활을 시작하며 한국 야구 선수의 해외 프로리그 진출을 개척함.
《애니》가 제55회 아카데미상에서 미술상과 음악 부문의 '오리지널 송 스코어 및 각색·각색음악상' 등 2개 부문 후보에 오름. 수상에는 이르지 못했으나 대규모 세트와 뮤지컬 음악 작업이 아카데미 후보로 인정받음.
《애니》가 제40회 골든글로브상에서 3개 부문 후보에 오름. 에일린 퀸이 뮤지컬·코미디 영화 여우주연상과 올해의 신인여우상 후보에, 캐럴 버넷이 뮤지컬·코미디 영화 여우주연상 후보에 지명됨.
《애니》가 미국에서 공식 개봉함. 초기에는 14개 극장을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상영됐으며, 제작비가 3,500만~4,000만 달러 이상으로 추산될 만큼 당시 기준으로 상당한 규모의 제작비가 투입된 뮤지컬 영화.
존 휴스턴 감독의 뮤지컬 영화 《애니》가 뉴욕에서 개봉함. 1977년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에일린 퀸이 애니, 앨버트 피니가 대디 워벅스, 캐럴 버넷이 미스 해니건을 연기함. 로스앤젤레스에서는 5월 19일, 댈러스에서는 5월 20일 개봉함.
본 촬영을 마친 뒤 캐럴 버넷·팀 커리·버나뎃 피터스가 출연하는 뮤지컬 넘버 '이지 스트리트'의 추가 촬영이 진행됨. AFI 기록상 영화의 최종 제작 기간을 마무리하는 촬영에 해당함.
뉴욕·뉴저지와 캘리포니아를 오가며 진행된 《애니》의 본 촬영이 완료됨. 제작 과정에서 버뱅크 스튜디오에 약 100만 달러를 들인 뉴욕 거리 세트가 건설되는 등 대규모 뮤지컬 영화로 제작됨. 이후 일부 장면의 추가 촬영이 진행됨.
영화 《애니》의 본 촬영이 시작됨. 당초 예정 시기보다 촬영을 앞당겨 뉴욕 라디오 시티 뮤직홀을 시작으로 뉴저지와 뉴욕 일대에서 촬영한 뒤 캘리포니아 버뱅크 스튜디오로 제작 장소를 옮김.
컬럼비아 픽처스가 당시 아홉 살이던 에일린 퀸을 애니 역으로 발탁했다고 발표함. 미국 22개 도시와 영국 런던에서 진행된 대규모 오디션에 8천 명이 넘는 어린이가 참가했으며, 퀸은 이 작품으로 장편영화에 데뷔함.
《애니》의 감독이 여러 차례 변경된 끝에 존 휴스턴이 연출자로 결정됨. 허브 로스와 랜들 클라이저 등이 앞서 감독 후보 또는 연출자로 거론됐으며, 레이 스타크가 제작을 맡은 뒤 휴스턴이 최종적으로 영화를 연출하게 됨.
컬럼비아 픽처스가 브로드웨이 뮤지컬 《애니》의 영화화 판권을 950만 달러에 인수함. 당시 무대 뮤지컬의 영화화 판권 거래로는 사상 최고액으로 보도된 계약으로, 1982년 영화 제작의 출발점이 됨.
2019년 2월 1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시민장으로 영결식이 거행됨. 빈소에는 사흘간 6천여 명이 조문했고 시민 장례위원으로 약 2천 명이 함께함. 전국 곳곳의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도 추모와 헌화가 이어진 추모의 장.
2019년 1월 28일 지병으로 별세함. 만 92세로, 일본의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을 끝내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남. 피해자에서 인권운동의 상징으로 나아간 삶으로 국내외에서 폭넓게 추모된 인물.
2017년 자신이 받은 여성인권상금을 무력분쟁 지역 성폭력 피해자 지원에 쓰도록 기부해 김복동평화상을 제정함. 정의기억재단을 통해 분쟁지역 성폭력 생존자와 인권운동가에게 수여하도록 함. 자신의 피해 경험을 세계 여성과의 연대로 확장한 상징적 기부.
2015년 12월 한국과 일본 정부가 발표한 '위안부' 합의와 그에 따라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에 강하게 반대함. 피해 당사자의 동의 없는 합의라며 일본의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 재단 해산을 요구함. 노령에도 1인 시위 등으로 명예 회복을 위한 싸움을 이어간 활동.
2012년 세계 여성의 날에 쉼터에서 함께 지내던 길원옥과 함께 나비기금을 발족함. 향후 일본의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이 이뤄지면 받게 될 배상금 전액을 전 세계 전시 성폭력 피해 여성에게 기부하겠다는 취지로 출범함. 피해자가 또 다른 피해자를 돕는 연대의 상징으로 평가되는 활동.
2010년부터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운영하는 쉼터 '평화의 우리집'에서 생활하기 시작함. 의료 지원 등을 받으며 한동안 쉬었던 인권 활동을 다시 본격적으로 재개함. 이후 기부와 국제 증언 등 가장 활발한 활동기로 이어지는 분기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