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애니》, 약 4개월간의 본 촬영 완료
뉴욕·뉴저지와 캘리포니아를 오가며 진행된 《애니》의 본 촬영이 완료됨. 제작 과정에서 버뱅크 스튜디오에 약 100만 달러를 들인 뉴욕 거리 세트가 건설되는 등 대규모 뮤지컬 영화로 제작됨. 이후 일부 장면의 추가 촬영이 진행됨.
뉴욕·뉴저지와 캘리포니아를 오가며 진행된 《애니》의 본 촬영이 완료됨. 제작 과정에서 버뱅크 스튜디오에 약 100만 달러를 들인 뉴욕 거리 세트가 건설되는 등 대규모 뮤지컬 영화로 제작됨. 이후 일부 장면의 추가 촬영이 진행됨.
《게르니카》가 뉴욕 현대미술관을 떠나 스페인 마드리드에 도착. 1939년 이후 미국을 주요 보관처로 삼았던 작품이 피카소가 생전에 제시한 민주적 자유의 회복이라는 조건과 반환 협상을 거쳐 귀환한 사건.
프랑코 사망 뒤의 민주화와 1978년 헌법 제정이 만들어 낸 정치적 변화 속에서 성사된 귀환. 작품은 카손 델 부엔 레티로에 설치되었으며, 내전과 해외 체류의 기억이 민주화된 스페인으로 돌아오는 상징적 의미를 얻은 문화사적 이정표.
임권택 감독의 불교영화 《만다라》 개봉. 수행에 회의를 느끼는 젊은 승려 법운과 계율 밖을 떠도는 지산의 동행을 통해 깨달음과 중생 구원의 의미를 탐색한 작품. 김성동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하고 상반된 수행 방식과 속세의 고통을 함께 다룬 화천공사 제작 영화. 안성기의 법운 역, 전무송의 지산 역, 방희의 옥순 역 출연.
로베르 바댕테르 법무장관이 정부를 대표해 국민의회에 사형제 폐지를 요청하는 연설을 함. 국가가 회복할 수 없는 죽음의 형벌을 부과해도 되는지를 묻는 논의를 이끌었으며, 다음 날 법안 표결을 앞둔 입법 과정의 핵심 장면이 되었음.
프랑스 국민의회가 로베르 바댕테르 법무장관이 정부를 대표해 제출한 사형제 폐지 법안을 찬성 363표, 반대 117표로 가결함. 이틀간의 논의 끝에 이루어진 하원 표결이었으며, 상원의 최종 가결과 대통령의 법률 공포는 이후에 진행됨.
보잉 767-200 시제기가 미국 워싱턴주 에버렛에서 첫 비행을 실시. 767은 이후 장거리 쌍발 광동체 여객기의 대표 기종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으며 여객·화물·군용 파생형으로 폭넓게 운용됨.
서독 바덴바덴에서 열린 제84차 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가 서울을 1988년 제24회 하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함. 서울은 52표를 얻어 27표의 일본 나고야를 앞섰으며, 이후 경기장·교통시설과 대회 운영을 준비하는 국가적 사업이 본격화됨.
유치 추진은 1979년부터 시작되었으며, 서울시와 대한올림픽위원회, 정부 및 민간 인사들의 외교·유치 활동이 함께 이루어진 결과였음. 전두환 정부는 유치 재추진을 지원하고 대통령 명의의 지원 확약 서신을 제출했으며, 국제대회를 대외 이미지 개선과 정권 안정의 기회로 활용하려는 정치적 목적도 갖고 있었음.
프랑스 상원이 사형제 폐지 법안을 찬성 160표, 반대 126표로 가결함. 국민의회가 채택한 문안이 수정 없이 통과하면서 의회의 입법 절차가 마무리되었으며, 이후 대통령의 법률 공포로 이어짐.
손정의가 1981년 9월 일본에서 니혼 소프트뱅크를 설립하고, PC용 패키지 소프트웨어의 전국 유통 사업을 시작함. 회사명은 정보화 사회의 기반이 될 ‘소프트웨어의 은행’을 지향한다는 뜻에서 붙여짐. 이후 소프트뱅크는 출판·인터넷·통신을 거쳐 대규모 기술 투자 그룹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출발점을 마련함.
1981년 10월 6일 이집트 대통령 안와르 사다트가 카이로의 군사 퍼레이드에서 무장 군인들의 공격을 받아 사망함.
사다트는 1973년 욤키푸르 전쟁 8주년을 기념하는 군사 퍼레이드를 참관하던 중 공격을 받음. 그의 사망은 1978년 캠프데이비드 협정과 1979년 이집트-이스라엘 평화조약 이후 중동 정치에 큰 충격을 주었고, 부통령 호스니 무바라크가 뒤를 이어 이집트 대통령이 됨.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법률 제81-908호를 공포함. 제1조가 사형 폐지를 선언하고 관련 형벌 규정을 정비했으며, 법률은 10월 10일 관보에 게재됨. 마지막 집행이 이루어진 1977년과 달리, 이때에는 사형을 선고·집행할 법적 근거 자체가 폐지됨.
스페인에 도착한 《게르니카》가 마드리드 카손 델 부엔 레티로의 전시 공간에서 공식적으로 소개. 9월의 귀환과 실제 국내 전시의 공개가 서로 다른 단계였음을 보여 주는 시점.
오랫동안 해외에서만 볼 수 있던 작품을 스페인 관람객이 자국의 역사와 마주하며 감상하게 된 전환. 작품의 안전을 위한 보호와 관람 접근성의 조정도 중요한 과제로 부각된 전시.
로스앤젤레스에서 라스 울리히와 제임스 헷필드가 밴드를 결성함. 신문 구인 광고로 연결된 두 음악가의 협업에서 출발했으며, 초기에는 공연과 데모 테이프 교환을 통해 청중을 넓혔음.
1981년 10월 보건사회부의 전국 불우아동결연사업을 수탁하며 국내 후원 기반을 넓힌 전환. 앞서 1976년 국내 아동결연사업을 시작하고 1980년 서울시 사업을 맡은 경험을 바탕으로 전국 단위 운영에 진입한 단계. 사업 수탁과 함께 전국 9개 결연후원사업 지부와 사회복지관 6개소를 신설한 조직 확대. 후원자와 어린이의 서신 교류, 지역별 후원조직과 언론 협력을 통해 일회성 모금보다 지속적인 결연을 확대하려는 운영. CCF의 지원 종료를 준비하던 시기에 국내 시민이 아동 지원을 이어받을 수 있도록 다져진 후원·전달 체계.
본 촬영을 마친 뒤 캐럴 버넷·팀 커리·버나뎃 피터스가 출연하는 뮤지컬 넘버 '이지 스트리트'의 추가 촬영이 진행됨. AFI 기록상 영화의 최종 제작 기간을 마무리하는 촬영에 해당함.
김호선 감독의 《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 개봉. 이어령의 원작을 바탕으로 우연히 백지수표를 손에 넣은 영화 음향효과 기술자가 한 여성의 아파트에 갇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송재호·장미희·최불암 등이 출연하며, 실종사건을 둘러싼 경찰 수사와 언론 보도를 통해 도시사회의 불안과 욕망을 그린 작품.
뉴델리에서 열린 아시아경기연맹(AGF) 총회가 서울을 제10회 아시안게임 개최지로 확정함. 이라크와 북한이 유치 경쟁에서 물러난 뒤 서울이 단독 후보로 남았으며, 표결 없이 만장일치로 결정되었음. 같은 해 9월 서울 올림픽 유치에 이어 두 국제 종합대회를 준비하게 된 전환점이었음.
실리콘 그래픽스가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법인으로 설립됨. 이후 3차원 그래픽 장비와 고성능 컴퓨터를 개발한 회사로, 1990년 1월 델라웨어주 법인으로 재설립됨.
회사 공시자료는 최초 법인 설립을 1981년 11월로 기재함. 창업 활동을 1982년으로 소개하는 기술사 자료와 달리, 이 날짜는 법인 설립 기준임.
짐 클라크, 마크 해나, 커트 에이클리 등 스탠퍼드 연구자들이 창립에 참여함. 클라크와 해나가 개발한 지오메트리 엔진 기술을 바탕으로 그래픽 시스템을 개발했고, SGI라는 약칭으로 알려짐.
록히드가 주문 감소와 지속된 손실을 이유로 L-1011 트라이스타 생산을 단계적으로 종료한다고 발표함. 생산은 1983년까지 이어졌고 당시 남은 확정 주문의 인도는 1984년까지 예정돼 있었으며, 이 과정이 끝나면서 록히드는 대형 민간 여객기 제조에서 철수하고 방위·우주 사업에 역량을 집중함.
해럴드 베커 감독의 군사학교 드라마 《생도의 분노》 뉴욕 개봉. 숀 펜은 알렉스 드와이어 역으로 티모시 허튼, 조지 C. 스콧, 톰 크루즈와 함께 출연. 폐교 결정에 맞선 생도들의 무장 저항을 다룬 작품으로, 펜의 장편영화 배우 데뷔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