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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처원
인물

박처원

Park Cheo-won

대한민국 경찰 출신으로, 치안본부 5차장(치안감)을 지내며 '대공경찰의 대부'로 불린 인물. 제5공화국 시기 남영동 대공분실을 거점으로 한 대공·공안 수사를 총괄한 경찰 간부.

1987년 1월 서울대생 박종철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으로 사망하자, 고문에 가담한 경관 5명을 2명으로 축소하고 거짓 진술을 지시하는 등 사건의 은폐·조작을 주도한 핵심 인물. 이 은폐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폭로로 드러나며 6월 항쟁으로 이어지는 국민적 공분의 한 계기.

사건 은폐(범인도피) 혐의로 1987년 구속·기소되어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고, 항소심 무죄와 대법원 파기환송을 거쳐 1996년 유죄로 최종 확정. 국가폭력과 공안통치의 은폐 구조를 상징하는 인물로 기록.

13 타임라인
1 사실

추가 정보

경력

대한민국 경찰 간부로 치안본부 5차장(치안감)에 올라 대공수사를 총괄. 오랜 기간 대공·공안 분야를 지휘해 '대공경찰의 대부'로 불린 인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은폐

1987년 1월 14일 서울대생 박종철이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으로 사망하자, 박처원은 고문에 가담한 경관이 5명임에도 2명만 가담한 것으로 꾸미고 두 사람에게 거액을 건네며 사건을 축소·은폐하는 작업을 주도. 1월 16일 강민창 치안본부장과 함께 연 기자회견에서는 사망 경위를 가혹행위가 아닌 단순 쇼크사로 설명하며 진상을 가림.

사법 처리와 평가

은폐가 1987년 5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폭로로 드러나 같은 달 구속·기소. 범인도피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 무죄와 대법원 파기환송을 거쳐 1996년 유죄가 최종 확정. 박종철 사건과 6월 항쟁의 이면에서 국가폭력 은폐의 핵심으로 기록.

타임라인

13
1927 1건
99년 전
1947 1건
79년 전
1952 1건
74년 전

박처원은 1952년 내무부 치안본부순경 시절 받은 무공포장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대공수사와 국가안보 관련 공적을 이유로 여러 훈장·포장·정부표창을 받음. 이후 보국훈장 2개, 근정훈장 2개, 무공훈장 1개, 무공포장 2개, 대통령 표창 4개, 국무총리 표창 2개 등이 공개 기록에서 확인됨.

박처원이 받은 공개 포상은 최소 13건이며, 기관장급 표창 등을 포함하면 실제 수훈·표창은 더 많았을 가능성이 제기됨.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은폐 책임으로 유죄가 확정된 인물이 장기간 국가 포상 수훈자 지위를 유지했다는 점에서, 이후 서훈 취소 논의의 배경이 됨.

1987 4건
39년 전

1987년 1월 14일 박종철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으로 사망한 뒤, 치안본부 5차장 박처원이 사건의 축소·은폐 조작에 관여함. 실제 고문 가담자가 5명이었음에도 경찰은 2명만 가담한 것으로 발표하며 책임을 축소하려 했고, 이 조작은 5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폭로로 무너짐. 박처원은 같은 달 29일 범인도피 혐의로 구속됨.

1987년 5월 18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광주민주화운동 7주기 추모미사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이 조작되었다」는 성명을 발표함. 김승훈 신부가 낭독한 성명은 경찰이 발표한 고문 가담자가 2명이 아니라 5명이었으며, 치안본부 5차장 박처원과 유정방·박원택 등 대공수사 간부가 사건 축소·조작에 관여했다고 폭로함.

진실은 영등포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이부영에게 전달된 뒤, 안유 보안계장과 한재동 교도관, 재야 인사 김정남 등을 거쳐 사제단에 전해짐. 정권이 물고문 사실을 감추고 일부 경찰관만 희생양으로 내세워 사건을 종결하려 했다는 사실이 공개적으로 확인된 것임.

폭로 직후 박종철 사건은 다시 전국적 쟁점으로 떠오름.

6월 민주항쟁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명동성당 5·18 추모미사가 열린 장소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5월 18일 폭로로 고문 가담 경관이 5명이며 경찰이 범인을 2명으로 축소해 발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검찰이 사건을 재수사함. 1987년 5월 29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사건 조작 과정에 깊이 관여한 치안본부 대공수사2단장 박처원 치안감, 5과장 유정방 경정, 5과 2계장 박원택 경정을 범인도피 혐의로 구속함.

앞서 경찰은 황정웅·반금곤·이정호 등 은폐됐던 고문 가담 경관 3명의 신병을 확보해 검찰에 넘겼고, 이들은 5월 21일 구속됨. 이로써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범인 축소·은폐에 관련된 구속자는 모두 8명으로 늘어남. 대공수사 지휘라인까지 구속되면서 경찰 내부의 조직적 은폐가 공식적으로 확인됨.

서울형사지방법원은 1987년 9월 21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범인 축소·은폐에 관여한 전 치안본부 5차장 박처원에게 범인도피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함. 함께 기소된 전 대공수사 5과장 유정방과 5과 2계장 박원택에게는 각각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이 선고.

재판부는 고문 가담자가 더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책임자를 두 명으로 축소하고 나머지 가담자들의 도피를 도운 행위를 범인도피로 판단함.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은폐 공작에 대공수사 지휘라인이 직접 관여했음을 사법적으로 처음 인정한 1심 판단.

1990 1건
36년 전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는 1990년 8월 17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축소·은폐 혐의로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전 치안본부 5차장 박처원, 유정방·박원택 전 대공수사 간부에게 무죄를 선고함. 재판부는 이들이 사건을 적극적으로 은폐·조작하려 했다는 점을 인정할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판단함.

같은 날 법원은 박종철 사망사건의 수사·발표 과정에서 직무유기와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된 강민창 전 치안본부장에게도 무죄를 선고함. 이로써 박종철 사건의 축소·은폐에 대한 치안본부 지휘라인의 형사책임은 항소심에서 한때 전면 부정됨.

검찰은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

1991 1건
35년 전

대법원은 1991년 12월 27일 박처원·유정방·박원택에게 무죄를 선고한 서울고등법원 항소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함.

대법원은 피고인들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실제 가혹행위 관련자가 더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이를 은폐·축소하고, 나머지 관련자들의 도피를 도왔다는 공소사실을 항소심이 충분한 근거 없이 배척했다고 판단함. 항소심이 관련 경찰관 진술과 피고인들의 검찰 진술을 배척한 데 채증법칙 위반, 사실오인, 범인도피죄 및 공동정범의 공모 법리 오해가 있다고 봄.

이 판결로 1990년 항소심 무죄 판단이 뒤집히고 사건은 서울고법 파기환송심으로 돌아감.

1993 1건
33년 전

1990년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뒤 1991년 대법원이 이를 파기환송하자,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는 1993년 2월 27일 파기환송심에서 박처원에게 범인도피죄를 인정해 1심과 같은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함.

재판부는 박처원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실제 고문 가담 경관 수를 5명에서 2명으로 축소하고, 관련 경찰관들에게 허위 진술을 하도록 지시해 나머지 가담자들의 도피를 도운 책임이 있다고 판단함.

항소심 무죄로 한때 뒤집혔던 대공수사 지휘라인의 은폐 책임을 다시 인정한 판결.

1996 1건
30년 전

대법원은 1996년 1월 5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범인 축소·은폐에 관여한 박처원 전 치안본부 5차장, 유정방 전 대공수사 5과장, 박원택 전 5과 2계장에 대한 유죄를 최종 확정함.

박처원은 실제 고문 가담 경관이 5명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2명만 가담한 것처럼 사건을 축소하고, 관련 경찰관들에게 허위 진술을 하도록 지시해 나머지 가담자들의 도피를 도운 범인도피죄가 인정됨. 박처원의 형량은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으로 확정됨.

1987년 1심 유죄, 1990년 항소심 무죄, 1991년 대법원 파기환송, 1993년 파기환송심 유죄를 거친 끝에 약 9년 만에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은폐 공작에 대한 대공수사 지휘라인의 형사책임이 최종 확정.

2000 1건
26년 전

서울지방법원은 2000년 5월 23일 고문기술자로 알려진 이근안 전 경감의 도피를 지시하고 자금을 지원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박처원에게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함.

박처원은 1988년 이근안에게 도피를 지시했고, 1998년 이근안의 가족에게 도피 자금 1,500만 원을 제공한 혐의가 인정됨.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이후에도 대공수사 조직 내부 인사의 책임 추궁을 피하게 하려 한 행위로 평가.

이근안
2008 1건
18년 전

그 외 사실들

발언

  • 박처원 치안감, 1987년 1월 16일 기자회견에서 박종철의 사망을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는 취지로 설명해, 고문 사실을 감추려 한 대표적 거짓 해명으로 회자.

    강민창 치안본부장과 공동 기자회견. 사건은 같은 해 5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폭로로 진상이 드러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