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T라는 화합물의 최초 합성. 곤충을 죽이는 성질이 확인된 시점은 훨씬 뒤인 1939년으로, 물질을 처음 만든 일과 살충제로서의 발견은 서로 다른 단계.
이벤트 17,405
편집일 기준 · 한국 시간
전후 농업·가정용 DDT 사용 확산
전쟁 이후 DDT가 군사 방역을 넘어 농작물·가축·가정의 해충 방제에 널리 보급. 오랫동안 효력이 남는 성질과 저렴한 비용을 장점으로 내세운 확산이지만, 나중에는 같은 잔류성이 환경 문제의 핵심으로 전환.
태릉선수촌 개촌
대한체육회가 국가대표 합숙훈련시설인 태릉선수촌을 개촌함. 초기에는 본관과 숙소를 중심으로 출발했으며, 이후 체육관과 종목별 훈련시설을 단계적으로 더해 종합훈련 거점으로 성장함.
로체스터공과대학교 칼슨 영상과학센터 헌정
로체스터공과대학교가 체스터 F. 칼슨 영상과학센터를 헌정. 칼슨 가족의 후원과 연결된 시설로, 문서 복사에서 출발한 발명의 유산이 영상과학 교육·연구 지원으로 이어진 사례.
제로그래피 발명 50주년 기념 칼슨 우표 발행
미국 우정청이 뉴욕주 로체스터에서 칼슨을 기리는 21센트 우표 발행. 첫 복사 실험 50주년 행사와 연계된 발행으로, 사무 문서 복제의 변화를 이끈 발명가를 널리 알린 기념.
미국 발명가 명예의 전당 헌액
제로그래피 인쇄 기술의 발명 공로로 미국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 미국 특허 제2,297,691호를 대표 성과로 소개하며, 일반 문서와 도면을 간편하게 복제하는 기술의 산업적 의미를 공식적으로 기린 평가.
칼슨의 이름을 딴 로체스터대학교 과학도서관 개관
로체스터대학교 허치슨홀에 칼슨 과학도서관 개관. 발명가의 이름을 과학 정보 이용 공간에 남긴 기념으로, 1987년 새 컴퓨터연구·과학도서관 건물로 이전하며 이어진 대학의 교육·연구 기반.
체스터·도리스 칼슨과 연결된 명상 모임을 바탕으로 로체스터의 선 명상센터 출범. 도리스가 같은 해 3월 필립 카플로를 초청한 뒤 6월 회원 22명의 조직이 형성된 과정으로, 칼슨 부부의 관심이 과학기술 밖의 종교·명상 공동체로도 이어진 사례.
체스터 칼슨의 사망
체스터 칼슨이 62세로 사망. 개인 실험실에서 출발한 건식 복사 기술이 사무실의 일상 도구로 정착하는 과정을 지켜본 생애의 마무리이며, 발명과 교육·공익 분야의 후원 활동을 함께 남긴 유산.
익명 기부로 지원한 노이스 연구소 개관
칼슨의 기부금으로 건설된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 노이스 화학물리학연구소 개관. 자신의 기여를 사후까지 익명으로 남겨 달라고 요청한 후원 방식으로, 발명에서 얻은 부를 기초과학 연구 시설에 돌린 사례.
호레이쇼 앨저상 수상
호레이쇼 앨저상 수상.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학업과 발명을 이어 간 생애가 조명된 이력으로, 기술적 성과뿐 아니라 역경을 극복한 개인의 경로에 대한 평가.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 이사 선임
모교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 이사회에서 신임 이사로 선임. 물리학 졸업생이자 발명가, 제록스 자문역의 경험을 대학 운영에 연결한 활동으로, 연구 지원을 위한 기부와 함께 이어진 고등교육 분야의 참여.
올해의 발명가상 수상
제로그래피 발명의 공로로 올해의 발명가상 수상. 기업들의 외면을 받던 개인 실험이 널리 쓰이는 복사 기술로 자리 잡은 뒤 이루어진 사회적 인정으로, 발명과 상용화 사이의 긴 시간차를 보여 주는 이력.
전자사진 초기 특허 제2,221,776호 등록
칼슨의 ‘Electron photography’ 미국 특허 제2,221,776호 등록. 1938년 9월 8일 출원한 기술에 대한 권리 확보로, 1942년 등록되는 별도의 핵심 특허 제2,297,691호와 구분되는 초기 특허 기록.
전자사진 원리를 정리한 특허 출원
빛을 받으면 전기가 더 잘 흐르는 물질의 성질에 주목해 ‘전자사진’ 원리를 특허 출원에 정리. 기존의 액체 현상 중심 사진 기술과 다른 복사 방식을 모색한 단계로, 실제 복사 성공에 앞서 발명의 핵심 구조를 구체화한 작업.
간편한 문서 복사 방법의 본격 연구
문서를 다시 타이핑하거나 외부 사진 복사 업체에 맡겨야 하는 불편을 해결하려 복사 기술 연구에 본격 착수. 원본을 넣으면 짧은 시간에 사본을 얻는 소형 장치를 구상하고, 도서관 조사와 개인 실험을 이어 간 독립 발명의 시작.
벨연구소 해고 이후 특허 실무로 진로 전환
대공황으로 벨전화연구소에서 해고된 뒤 특허사무소를 거쳐 P. R. 맬러리의 특허 부서에서 근무. 문서 사본을 만들기 어렵다는 현장의 문제를 직접 경험했으며, 1936년부터 야간 법학 공부를 병행한 기술·법률 전문성의 형성.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 물리학 학위 취득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에서 물리학 학사 학위 취득. 학비와 생활비를 벌며 공부한 뒤 대공황기의 취업난에 직면했으나 뉴욕의 벨전화연구소에 입사, 이후 기술 연구와 특허 업무를 함께 경험하는 경력의 출발.
체스터 칼슨의 출생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체스터 플로이드 칼슨의 출생. 어린 시절 가족의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인쇄와 과학에 관심을 키웠으며, 훗날 빛과 정전기를 결합한 복사 기술의 발명가로 성장.
바텔기념연구소의 제로그래피 개발 참여
1938년 실험 성공 이후 약 5년 동안 20곳 넘는 기업의 거절을 겪은 칼슨이 1944년 바텔기념연구소와 협력 관계를 맺음. 복사 원리를 일정한 품질로 반복하는 자동 장비로 바꾸기 위해 연구 인력과 설비를 투입하기 시작한 단계. 바텔의 연구와 할로이드의 후속 개발이 결합해 914의 상용화로 이어진 연결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