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초연 배우들이 참여한 캐스트 앨범이 폴리도르에서 발매됨. 공연장에서만 들을 수 있던 노래들이 음반을 통해 퍼졌으며, 영국 앨범 차트에서 3주 동안 1위를 기록함.
이벤트 18,099
박종철군 범국민추도회 개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알려진 뒤 야당과 재야가 함께 2월 7일 전국 주요 도시에서 '박종철군 범국민추도회'를 열고 추도식과 도심 시위를 벌임. 정부의 원천봉쇄에도 서울·부산 등에서 많은 시민이 추도와 항의에 나섬. 흩어져 있던 반정부 세력이 고문 규탄을 고리로 처음 대규모로 결집한 행동.
윌리 딕슨이 자신의 곡 〈You Need Love〉와 레드 제플린의 〈Whole Lotta Love〉 사이의 가사 유사성을 문제 삼아 1985년 제기한 저작권 소송이 법정 밖 합의에 도달함. 합의 조건은 공개되지 않았으며, 이후 후속 발매물에서 딕슨의 작곡 크레딧이 추가됨. 법원 기록상 소송은 같은 해 9월 최종적으로 정리됨.
KBS 《사모곡》 첫 방송
KBS 2TV 일일연속사극 《사모곡》이 첫 방송됨.
부산지검 울산지청의 수사와 언론 보도를 통해 형제복지원의 강제수용·강제노역과 폭행, 다수 사망 실태가 드러남. 울주 작업장에서의 노역과 감금에 대한 조사가 시설 운영 전반의 문제로 확대되었고, 야당과 사회단체의 실태조사 요구로 이어짐.
아동과 성인, 여성과 장애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수용되어 있었으며, 가족과의 연락과 이동을 제한받음. 수용자들은 폭력과 노동력 착취뿐 아니라 교육 기회의 상실도 겪었음.
사건이 공개된 뒤 다수 수용자가 퇴소하거나 다른 시설로 옮겨졌지만 시설과 재단은 이름을 바꾸어 이어짐. 퇴소만으로 가족관계와 생계, 심리적 후유증이 회복된 것은 아니었으며, 생존자들은 이후에도 수용 경력에 따른 낙인과 어려움을 증언함.
CBS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뒤 고문 피해자와 가족을 다룬 특집을 1시간 15분간 방송함. 참여자 변상욱의 회고에 따르면 간부진이 주제 변경과 방송 중단을 요구했지만 직원들이 방송을 진행했으며, 이후 제작진이 다른 부서로 발령됨.
대학원 중심 연구대학을 목표로 장기발전계획 발표
1987~2001년을 대상으로 한 장기발전계획을 발표하고 국제적 수준의 대학원 중심대학으로 발전한다는 방향을 제시함. 대학원 교육과 연구의 강화, 학부 교육체제의 개편, 대학의 자율화가 함께 논의된 변화.
학부 전문인력 양성과 함께 학문 후속세대와 연구자를 기르는 기능을 대학 발전의 중심에 놓은 계획.
골든 하베스트, 《용형호제》 홍콩 개봉
《용형호제》가 제작지 홍콩에서 1987년 1월 21일 정식 개봉. 성룡·알란 탐·관지림·롤라 포너가 주요 배역을 맡은 구성. 일본과 한국에서 먼저 공개된 뒤 홍콩에서 개봉한 배급 순서.
강민창 치안본부장, 물고문 시인하고 조한경·강진규 구속
언론 보도와 부검 결과로 의혹이 커지자 강민창 치안본부장이 사건 발생 5일 만에 기존 발표를 뒤집고 물고문 등 가혹행위 사실을 공식 시인함. 수사 경관 조한경과 강진규 2명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함. 다만 가담자를 2명으로만 한정해 이후 드러나는 조직적 축소·은폐의 출발점이 됨.
오연상·황적준, 고문치사 정황 확인
박종철의 사망 직후 현장에 출동했던 중앙대 용산병원 의사 오연상이 조사실 바닥에 물이 흥건했다고 증언하며 단순 쇼크사 발표에 의문을 제기함. 이어 부검을 맡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황적준 박사가 1월 17일 온몸의 피멍과 폐 손상 등 물고문·전기고문 흔적을 확인함. 경찰의 '쇼크사' 주장을 무너뜨리고 고문치사의 진상을 드러낸 결정적 전환점.
경찰, 박종철 사인을 허위로 발표
경찰은 사망 다음날, 박종철이 조사를 받던 중 책상을 "탁" 치니 갑자기 "억" 소리를 지르며 쓰러져 단순 쇼크사했다고 공식 발표하며 사건을 은폐하려 함.
1987년 1월 14일 박종철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으로 사망한 뒤, 치안본부 5차장 박처원이 사건의 축소·은폐 조작에 관여함. 실제 고문 가담자가 5명이었음에도 경찰은 2명만 가담한 것으로 발표하며 책임을 축소하려 했고, 이 조작은 5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폭로로 무너짐. 박처원은 같은 달 29일 범인도피 혐의로 구속됨.
은폐·축소 조작 관여
1987년 1월 14일 서울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박종철이 고문 끝에 사망한 뒤, 치안본부 5차장 박처원은 대공수사 지휘라인의 핵심 인물로서 사건 축소·은폐 조작에 관여함. 경찰은 실제 고문 가담자가 5명이었음에도 조한경·강진규 두 명만 가담한 것으로 발표하며 책임 범위를 축소하려 함.
경찰 발표와 진상 은폐
경찰은 처음 박종철의 사망을 단순 쇼크사로 설명하며 고문 사실을 부인했고, 이후 부검 결과와 여론 압박으로 물고문 사실을 시인함. 이른바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는 표현은 1월 15일 강민창 치안본부장의 공식 발표에서 나온 것으로, 박처원은 그 발언의 직접 화자는 아니었음.
폭로와 구속
5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폭로로 고문 가담자가 2명이 아니라 5명이고, 치안본부 간부들이 범인 축소·은폐에 관여했다는 사실이 알려짐. 박처원은 유정방·박원택 등과 함께 5월 29일 범인도피 혐의로 구속됨. 사건 은폐의 붕괴는 전두환 정권의 국가폭력과 민주화 요구를 결집시키며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계기가 됨.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경찰들이 서울대학교 학생 박종철을 불법연행한 뒤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선배 박종운의 행방을 추궁하며 물고문을 가해 사망에 이르게 함. 경찰은 사인을 단순 쇼크사로 설명했으나 언론 취재와 의료진의 소견 등이 고문 의혹을 드러냈음. 사건은 전국적인 추모와 고문 규탄운동을 촉발했으며, 이후 가해 경찰의 범위와 은폐 사실이 추가로 밝혀지면서 전두환 정권에 대한 저항을 증폭시킨 계기가 되었음.
《맹목적인 기회》 폴란드 개봉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영화 《맹목적인 기회》(Przypadek, Blind Chance)가 폴란드에서 개봉함. 열차를 타는 우연한 선택에 따라 한 인물의 삶이 세 갈래로 나뉘는 구조를 통해 개인과 정치적 환경의 관계를 탐색한 작품. 1981년 제작됐으나 검열로 공개가 지연돼 1987년 개봉함.
동아수출공사, 《용형호제》 신정 시즌 한국 개봉
《용형호제》가 1987년 1월 1일 한국에서 개봉하며 홍콩 개봉보다 20일 앞서 관객과 만남. 수입은 동아수출공사가 맡았으며, 1986년 12월 23일 등급분류를 마치고 신정에 개봉한 일정. 1980년대 한국 극장가에서 성룡 주연 홍콩 액션영화가 신년 대목에 배치된 사례.
《전원일기》 일용 엄니 역 김수미의 MBC 연기대상 수상
김수미가 가난한 살림을 꾸리는 농촌 노모 일용 엄니의 생활감 있는 연기로 MBC 연기대상 대상을 받은 해. 실제 나이보다 훨씬 연로한 인물을 익살과 억척스러움, 자식에 대한 애정으로 그려내며 작품의 대표적인 얼굴로 자리 잡은 성취. 김 회장네뿐 아니라 일용이네와 마을 이웃들이 함께 만들어낸 서민적 가족극의 힘을 드러낸 수상.
청계피복노조, 여성 지도부 중심의 조직 활동
합법 지위를 회복하지 못한 청계피복노조의 비공개 활동 과정에서 여성 지도부가 조직 활동을 수행함. 구술사 연구는 1981년 강제 해산 뒤 여성들이 청계모임을 주도했고, 1986년에도 여성 활동가들의 지도력이 나타났다고 분석함.
같은 연구는 구속된 남성 활동가들이 돌아오면서 여성 지도부가 배제되고 남성 중심의 지도체계가 다시 구성되었다고 설명함. 여성들이 조합원의 다수를 이루고 교육·파업·조직 유지에 참여하면서도 지도부 진출에는 제약을 겪은 경험.
포항제철, 창단 후 첫 K리그 우승
포항제철이 창단 후 처음으로 국내 프로축구 리그 정상에 오름. 이후 1988년에도 리그 우승을 거두면서 1980년대 후반 국내 상위권 구단으로 자리잡음.
CBS의 보도 기능 회복을 요구하는 100만인 서명운동이 시작됨. 교계·학계·대학가·시민사회단체가 참여했으며, 1987년 7월 무렵 서명자가 50만 명을 넘어섬.
수비라치스, 사그라다 파밀리아 수난 파사드 조각 맡음
조각가 주제프 마리아 수비라치스가 수난 파사드 조각을 맡음. 가우디 사후의 예술가가 독자적인 조형 언어로 건축 작업에 참여한 사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