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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1919년의 기록 54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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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이 칭다오 전투 등에서 포로로 잡은 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군 장병을 수용하기 위해 1915년 9월 나라시노 포로수용소를 가동함. 도쿄 아사쿠사 혼간지와 후쿠오카·구루메·시즈오카·오이타의 수용소에서 장병들이 이송되었으며, 최대 약 1천 명이 생활함. 러일전쟁 뒤 다카쓰 병영으로 바뀐 군사시설 일대가 다시 포로 수용에 사용된 시기.

나라시노 수용소

1915년 9~10월 경복궁에서 식민 통치의 성과를 선전하는 조선물산공진회를 개최함. 행사 준비 과정에서 흥례문 권역 등 궁궐 건물들을 해체하여 전시 공간으로 전용한 사건. 흥례문 권역의 훼철은 1916년 이후 같은 자리에 진행된 조선총독부 청사 건립과 구분되는 과정.

1912년 창간된 WSPU의 신문 《The Suffragette》가 《Britannia》라는 이름으로 전쟁 지원 입장을 전면에 내세움. 에멀린·크리스타벨 팽크허스트 지도부의 노선 변화가 조직의 매체에도 반영된 것임. 참정권 운동을 계속하려는 일부 활동가들은 별도 조직을 꾸렸으므로, 지도부의 선택을 모든 회원의 합의로 볼 수는 없음.

여성사회정치연합

British, French, and Belgian Permanent Blind Relief War Fund 설립. 헬렌 켈러는 조지 케슬러, 코라 파슨스 케슬러와 함께 미국 지부를 구성하여 맹인 구호 활동에 적극적으로 협력. 이 단체는 후에 AFOB 로, 그 이후 헬렌 켈러 인터네셔널(Helen Keller International, HKI)로 이름 변경.

아인슈타인이 새 중력 이론으로 수성 근일점의 이상 이동을 계산해 프로이센 과학 아카데미에 보고함. 뉴턴 역학으로 설명되지 않던 100년당 약 43초의 세차를 이론값과 일치시킨 결과. 이론이 관측 사실을 정량적으로 설명한 첫 성공으로, 완성 직전 이론에 결정적 자신감을 준 사건.

아인슈타인이 논문 「중력의 장방정식」으로 일반 상대성이론의 최종 장방정식을 프로이센 과학 아카데미에 제출함. 물질·에너지 분포와 시공간 곡률을 대응시키는 일반 공변 형태의 방정식을 완성한 사건으로, 1907년 등가원리 착상에서 시작된 일반 상대성이론의 형성이 이론적으로 완결된 핵심 시점.

일반 상대성이론

세실 B. 드밀 감독의 무성영화 《치트 (The Cheat)》 미국 개봉. 일본인 골동품상 히슈루 토리를 백인 여성의 신체와 가정을 위협하는 관능적이고 잔혹한 인물로 묘사하고, 일본계 배우 하야카와 셋슈가 해당 배역을 연기한 작품.

아시아 남성을 성적으로 매혹적이지만 백인 사회에 위험한 존재로 재현한 초기 할리우드의 대표적 사례. 이후 황화론과 인종 간 성적 공포가 결합한 영화적 전형을 분석할 때 반복적으로 거론되는 작품.

잡지에 필요한 지도를 직접 만들기 위해 협회가 지도 제작 부서를 설립하고 앨버트 범스테드를 기용함. 외부 제작사에 의존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기사에 필요한 지명과 정보를 편집진의 요구에 맞춰 설계할 기반을 마련함. 지도는 사진과 함께 복잡한 공간 정보를 독자에게 설명하는 주요 수단이 됨.

내셔널 지오그래픽

1915년 말 구대칭 질량 주위의 중력장을 기술하는 아인슈타인 장방정식의 첫 엄밀해를 구했고, 아인슈타인이 1916년 1월 13일 프로이센 학술원에 이를 발표함. 이 해에서 오늘날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으로 불리는 척도가 나오며, 후대의 좌표 확장과 인과구조 분석을 거쳐 이 경계가 사건의 지평선으로 이해됨. 블랙홀의 수학적 토대를 놓은 이정표.

일반 상대성이론

아인슈타인이 종합 논문 "일반 상대성이론의 기초(Die Grundlage der allgemeinen Relativitätstheorie)"를 1916년 3월 20일 학술지 안날렌 데어 피지크에 제출함. 등가원리부터 장방정식까지 이론 전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같은 해 제49권 제7호에 게재된 집대성 논문. 약 10년에 걸친 연구를 종합해 이후 상대론 연구의 표준 참고 문헌이 된 저작.

일제강점기, 전북 군산시 월명동에 설립된 2년제 중등여학교. 설립 당시 2학급 규모. 설립 당시 군산 및 인근 지역(전북, 충남)의 유일한 중등여학교. 1951년 학제 개편에 따라 현 군산여자고등학교로 개편. 초기 일본인 학생 중심이었으나 점차 한국인 학생도 증가하며 지역 여성 교육의 중심 역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