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트 뵈스 출생
오스트리아의 지휘자, 음악학자 쿠르트 뵈스. (~1987년)
오스트리아의 지휘자, 음악학자 쿠르트 뵈스. (~1987년)
미국의 컨트리 음악 싱어송라이터 겸 기타 연주자 조니 라이트. (~2011년)
대한민국의 아동문학가 김영일. (~1984년)
프랑스의 소설가 로맹 가리. (~1980년)
영국의 군인 윌리엄 베일. (~1981년)
일본의 바둑 기사 오청원. (~2014년)
소련의 정치인 유리 안드로포프. (~1984년)
1914년 6월 28일 보스니아 사라예보를 방문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위 계승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부인 조피가 가브릴로 프린치프의 총격으로 사망한 사건. 오스트리아-헝가리의 보스니아 지배와 남슬라브 민족주의가 충돌한 상황에서 발생한 정치적 암살.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세르비아에 최후통첩을 보내고 전쟁을 선포하는 7월 위기로 이어짐. 유럽 열강의 동맹과 동원 체제가 연쇄 작동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으로 확대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됨.
시어도어 데이비스가 발굴권을 내려놓은 뒤 카나번 경이 왕가의 계곡의 발굴 허가를 확보한 전환점. 하워드 카터는 투탕카멘의 이름이 새겨진 유물들을 단서로 아직 발견되지 않은 왕묘가 있다고 판단했으나,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대규모 탐사가 지연된 상황.
평안북도 운산에서 태어남. 한국가정법률상담소의 25주기 연보는 출생일을 1914년 8월 10일로 기록하고 있음.
에멀린 팽크허스트가 회람을 통해 전투적인 참정권 운동의 중단을 알림. 지도부는 전쟁 지원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전환했으며, 이는 전쟁을 반대하거나 참정권 요구를 계속하려는 활동가들과 다른 선택이었음. 전쟁 이전의 대정부 대결 구도가 크게 바뀐 전환점임.
독일 제국 해군 잠수함 U-9가 북해에서 영국 장갑순양함 HMS Aboukir·Hogue·Cressy를 연속 격침. 제1차 세계대전 초기 잠수함이 대형 수상함 전력에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전투.
톨킨이 저녁별 에아렌델의 항해를 다룬 시를 씀. 이후 오랫동안 발전할 신화와 연결되는 초기 시적 구상으로, 1977년 책의 출간보다 훨씬 앞선 창작의 출발점을 보여 줌. 이 날짜는 완성된 《실마릴리온》의 집필 완료일을 뜻하지 않음.
셔먼법의 포괄적 금지 조항을 보완하기 위해 가격차별·배타적 거래·경쟁을 해칠 우려가 있는 주식 인수·겸임이사 등을 구체적으로 다룬 클레이턴법의 제정. 이미 형성된 독점에 대한 사후 소송뿐 아니라 경쟁을 약화시킬 위험이 있는 관행을 규율하고 민간 피해자의 구제수단을 보강한 입법. 노동을 상품으로 보지 않는다는 원칙과 노동조합의 적법한 목적 수행에 관한 보호 규정도 포함하여, 기업 결합과 노동자의 조직 활동을 구별하려는 대응의 제도화.
제1차 세계대전 발발로 동런던 가정의 생계가 흔들리고 독일산 장난감 수입이 끊기자 팽크허스트와 동런던 서프러제트 연맹이 노먼 로드에 장난감 공장을 세움. 여성들에게 지역의 통상적인 저임금보다 높은 임금을 지급하며 목제 장난감과 인형 등을 생산했고, 노동자들의 디자인과 예술가들의 협력도 활용함. 일하는 어머니들이 아이를 맡길 수 있는 보육 공간을 함께 마련하여 고용과 돌봄을 연결함.
1914년 11월 16일 12개 연방준비은행이 같은 날 업무를 시작함. 제1차 세계대전으로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조직·인력·설비를 단기간에 갖추고 개점했으며, 연방준비법으로 설계된 중앙은행 제도가 실제 운영 단계에 들어간 시점.
안창호가 미주 한인 독립운동의 대표적 통합 조직인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장에 선출됨. 흥사단을 통한 인재 양성과 함께 대한인국민회를 기반으로 재미 한인사회의 조직화와 독립운동 지원을 이끌게 됨.
경성부윤의 자문기구이자 일제 식민통치의 지방행정 보조기구였던 경성부협의회의 관선 협의회원으로 1914년, 1918년, 1920년 세 차례 임명됨.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졸업함. 귀국 뒤 교육·기업 경영 활동에 참여하는 계기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