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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1919년의 기록 54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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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 개척자 글렌 L. 마틴이 캘리포니아에서 글렌 L. 마틴 컴퍼니를 설립함. 이후 군용 항공기와 미사일·우주 분야로 확장한 마틴 계열 기업사의 출발점으로, 1961년 마틴 마리에타를 거쳐 1995년 록히드 마틴으로 이어짐.

록히드 마틴 후신 기업

몬테네그로가 오스만 제국에 선전포고하며 제1차 발칸 전쟁이 시작됨. 이후 불가리아·세르비아·그리스가 전쟁에 가세하면서 발칸동맹과 오스만 제국의 전면전으로 확대되고, 발칸반도의 세력 균형과 오스만 제국의 유럽 영토에 큰 변화를 초래한 전쟁의 출발점이 됨.

《아메리칸 매거진》에 실었던 글을 바탕으로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을 출간한 타벨. 여성의 가사와 돌봄, 공동체 생활에 사회적 의미가 있다는 논의를 펼쳤지만, 이를 여성의 본성과 임무에 연결하며 남성의 직업과 정치를 따르는 방향에 비판적인 입장을 제시. 대학 교육과 독립적인 저술 경력을 실현한 자신의 삶과 달리 여성참정권 운동에는 반대하거나 거리를 둔 태도로 논쟁을 낳은 인물. 여성에게 투표권만 주어지면 정치가 저절로 정화된다는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았으나, 그 비판은 여성의 역할을 제한하는 보수적 관념과 함께 나타난 한계. 탐사보도의 선구라는 성취와 성평등에 대한 시대적 제약을 함께 보여주는 저술.

앨런과 맬컴 러헤드 형제가 샌프란시스코에서 Alco-Hydro Aeroplane Company를 설립함. 훗날 성을 Lockheed로 바꾼 형제의 초기 항공기 사업으로, 1926년 설립된 Lockheed Aircraft Company로 이어지는 기업 계보의 출발점.

록히드 마틴 후신 기업

세계산업노동자연맹(IWW, Industrial Workers of the World)에 가입하고 단순한 지지자를 넘어 워블리스(Wobblies)라고 불리는 열렬한 단원으로 활동, 급진적인 노동 운동에 투신. 헬렌 켈러는 장애의 근본 원인이 열악한 노동 환경과 빈곤에 있다고 믿었고, 포괄적이고 혁명적인 IWW의 이념에 공감.

진명여학교 보통과가 4년제 진명여자보통학교로, 중등과가 3년제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로 인가. 초등 단계의 보통교육과 중등 단계의 여자고등보통교육을 함께 운영

미국 정부의 반독점 소송과 법원의 판단에 따라 듀폰의 화약 사업이 듀폰·허큘리스·아틀라스의 세 회사로 나뉨. 정부는 1907년 소송을 제기했으며, 법원은 듀폰이 셔먼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함.

듀폰은 새로 설립한 두 회사에 생산시설과 자산을 넘기는 분할안을 정부와 협의함. 화약산업에서 경쟁을 회복하기 위한 기업 구조 변경이었음.

미국 수정헌법 제16조가 비준 요건을 충족해 연방정부가 주별 인구 비례 배분 없이 개인·기업의 소득에 과세할 수 있는 헌법적 근거를 마련함. 연방정부 재정 구조와 20세기 복지·전쟁 비용 조달 체계를 바꾼 제도적 전환점임. 비준 완료일과 이후 공식 인증 절차는 구별됨.

뉴욕시와 민간 철도 운영사들이 이중계약(Dual Contracts)을 체결함. 시와 회사가 건설·설비 부담을 나누고 두 운영망을 대폭 확장하는 방식으로, 지하철을 맨해튼 중심의 초기 노선에서 여러 자치구의 통근 기반시설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됨. 공공 소유와 민간 운영이 결합된 체제였으며, 처음부터 하나의 통합 공기업이 모든 노선을 건설한 것은 아니었음.

영국이 건강 악화를 이유로 수감자를 조건부로 일시 석방할 수 있는 법을 제정함. 단식으로 쇠약해진 서프러제트가 풀려났다가 회복 후 다시 구금될 수 있어 ‘고양이와 쥐 법’이라는 별칭이 붙음. 석방이 형의 소멸을 뜻하지 않았으며, WSPU의 단식 저항과 당국의 대응이 맞물린 제도였음.

일제의 회유와 감시, 국내 민족운동에 대한 탄압을 피해 1913년 4월 중국 상하이로 망명. 쑨원을 비롯한 중국 혁명가들과 교류하며 중국 2차 혁명에 참여하고, 이듬해 신규식과 함께 박달학원을 설립해 한인 청년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등 해외 독립운동에 나섬.

김규식 (우사)

하이럼 빙엄의 페루 탐사를 사진과 글로 소개하는 특집호를 발행함. 안데스산맥의 잉카 유적을 국제 독자에게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함. 잡지의 탐사 보도는 현장 연구와 대중적 관심을 연결했지만, 유적을 처음 알린 서구 탐험가의 이야기만으로 현지 주민의 지식과 역사를 대신할 수는 없음.

신흥강습소 교장 여준과 제1회 졸업생 김석·강일수·이근호 등이 1913년 5월 6일 통화현 합니하에서 신흥교우단을 결성. 교직원·졸업생·재학생을 아우르며 군사 학술 연마와 독립사상 선전, 한인 마을 교육 활동을 추진. 뒤에 신흥학우단으로 개칭되면서 신흥학교 관계자 네트워크가 독립운동 조직으로 확장.

신흥무관학교

도산 안창호가 주도하고, 우강 송종익(송종우) 등 동지들이 함께 흥사단 조직. 무실(誠實), 역행(實踐), 충의(信義), 용감(勇氣)의 4대 정신을 바탕으로, 건전한 인격을 수양하고 민족 전체의 대업을 준비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함. 일제강점기 미주 한인사회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으며, 상해 임시정부를 지원하는 등 독립운동의 인적·물적 기반을 마련.

1913년 5월 1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민족운동단체 흥사단을 창립함. 청년학우회를 확대 조직해 안창호 등 발기인 6인이 창단발기인대회를 개최하고 안창호를 전권위원으로 선출함. 무실역행과 인격 수양을 통한 민족 역량 강화를 지향한 흥사단 운동의 시작.

안창호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시민권 취득 자격이 없는 외국인의 부동산 취득·소유를 기존 조약이 허용하는 범위로 제한하고, 농지 임차를 최장 3년으로 제한하는 외국인 토지법을 승인함. 당시 미국의 귀화법상 시민권 취득 자격이 없던 일본계 이민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일본 정부의 항의를 불러온 입법. 이후 일본이 파리 강화 회의에서 인종 평등 원칙을 제안하게 된 주요 배경 가운데 하나가 됨.

date: 1919-02-14 title: 마키노, 인종 평등 제안 빠진 규약 초안에 추후 재제출 방침 표명 type: event entities:

인종 평등 조항이 빠진 국제연맹 규약 초안이 예비 강화 회의 본회의에 보고되자 마키노 노부아키가 발언에 나섬. 이날 규약 내용에 대한 토론이 예정되지 않았음을 들어 즉각 논의를 요구하지 않고, 일본 측 제안을 후속 논의 단계에서 다시 제출해 각국 대표의 검토를 요청하겠다는 뜻을 밝힘. 제안을 철회하지 않고 추후 재상정할 방침을 공식화한 것으로, 4월 11일 인종 평등 수정안 재제출로 이어짐.

인종 평등 제안 (1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