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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1919년의 기록 54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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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이 파견한 이상설·이준·이위종이 헤이그에 도착하여 대한제국의 독립과 외교권 회복을 호소한 사건. 을사늑약의 강제성과 무효를 알리고 제2차 만국평화회의 참석을 요구했으나 열강의 거부로 공식 회의에 참여하지 못한 외교 활동. 언론과 국제 여론을 통한 호소를 이어 갔으며 일본이 고종 퇴위 강요의 구실로 이용한 사건.

대한제국

일본이 헤이그 특사 파견을 구실로 고종을 압박하고 이완용 내각이 고종의 양위를 선포한 사건. 고종과 황태자가 참석하지 않은 가운데 황위 교체를 밀어붙여 황제의 통치 기반을 약화시킨 조치. 순종의 정식 황제 즉위식은 8월 27일 경운궁 돈덕전에서 거행된 후속 의례.

대한제국

고종 강제 퇴위 뒤 일본이 한일신협약을 강요하여 대한제국의 내정 통제권을 확대시킨 사건. 법령 제정과 중요한 행정 처분, 고등 관리 임면 등에 통감의 승인 또는 동의를 요구하고 일본인 관리 임용을 제도화한 7개 조항의 협약. 부속 비밀각서에 군대 해산 등을 규정하여 7월 31일 해산 조칙과 8월 1일 서울 시위대 해산으로 이어진 조치.

7월 31일의 해산 조칙에 이어 서울 시위대 해산을 강행한 사건. 박승환의 자결 소식을 계기로 일부 군인들이 해산에 맞서 일본군과 교전한 항쟁. 이후 지방 진위대도 차례로 해산되었으며 해산 군인들의 의병 합류가 항일 의병전쟁의 확대에 기여한 분기점.

《Votes for Women》의 첫 호가 발행됨. 이 신문은 WSPU의 운동 소식과 주장을 전달하고 지지자들을 연결하는 중요한 매체로 자리 잡음. 거리의 시위와 별개로 신문 제작·판매와 독자 조직이 참정권 운동의 일상적인 기반이었음을 보여줌.

1907년 10월 17일 굴리엘모 마르코니의 무선전신 체계가 아일랜드 클리프던과 캐나다 노바스코샤주 글레이스베이 사이에서 정기적인 대서양 횡단 상업 통신 서비스를 시작한 사건. 해저 케이블에 의존하던 장거리 국제 통신에 무선 방식의 새로운 상업적 경로를 제시한 개통.

대륙 간 무선 통신의 실용화와 국제 정보통신 산업 발전을 보여주는 기술사적 이정표.

도라 마르가 프랑스 파리 6구 다사스 거리의 타르니에 산원에서 앙리에트 테오도라 마르코비치라는 이름으로 태어남. 아버지 조제프 마르코비치(Joseph Markovitch)는 크로아티아 출신 건축가였으며, 어머니 루이즈 줄리 부아쟁(Louise Julie Voisin)은 패션 상점을 운영했음.

미국과 일본이 일본인 노동자의 미국 이민을 제한하는 이른바 신사협정을 마련함. 일본 정부가 미국 본토로 이주하려는 노동자에게 여권 발급을 제한하는 대신, 미국 정부가 샌프란시스코의 일본계 학생 분리교육 조치를 철회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방식으로 타협함. 정식 조약이 아니라 1907년 말부터 1908년 초까지 양국이 교환한 일련의 외교 각서와 행정조치로 성립함. 일본인의 미국 이민을 인종적·국적별로 제한하는 체제가 강화되면서 이후 일본이 파리 강화 회의에서 인종 평등 원칙을 제기하게 된 주요 배경 가운데 하나가 됨.

인종 평등 제안 (1919)

베른 특허국에 재직하던 아인슈타인이 자유낙하하는 사람은 자신의 무게를 느끼지 못한다는 통찰에 도달함. 가속에 의한 관성력과 중력이 국소적으로 구별되지 않는다는 등가원리로, 훗날 스스로 "생애 가장 행복한 생각"이라 회고한 착상. 중력을 시공간의 기하학으로 다루는 일반 상대성이론의 출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