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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1919년의 기록 54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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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의 자유당 집회에서 크리스타벨 팽크허스트와 애니 케니가 여성 참정권에 대한 답변을 요구함. 두 사람은 집회에서 쫓겨나고 체포된 뒤 수감되었으며, 이 사건은 정치 집회에 직접 개입하는 WSPU의 전술이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됨.

여성사회정치연합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는 을사늑약을 경운궁 중명전에서 강요함. 1904년 대화재 이후 고종이 집무 공간으로 사용하던 건물이 국권 침탈의 현장이 된 사건. 고종의 승인 없이 강압적으로 추진된 늑약에 대한 저항이 이어졌으며, 중명전은 이후 주권 회복을 위한 외교 노력과도 연결되는 장소가 됨.

알프레드 비네와 테오도르 시몽이 특별한 교육 지원이 필요한 아동의 현재 지적 수행 수준을 평가하기 위한 첫 검사 체계를 발표함. 약 30개의 다양한 과제를 쉬운 것에서 어려운 것 순으로 배열하고 기억·이해·언어·판단·추론 등 여러 정신 기능을 함께 살펴보도록 구성함.

1905년판은 아직 1908년판과 같은 연령별 척도가 완성된 상태가 아니었음. 정상 아동과 다양한 연령 집단에 검사를 적용한 후 과제를 연령 수준별로 재배치하는 작업이 이어졌고, 1908년 개정에서 오늘날 비네-시몽 척도의 전형으로 알려진 구조가 확립됨.

알프레드 비네

편집자 길버트 H. 그로스버너가 티베트 사진으로 11쪽을 구성한 특집을 게재함. 글을 보조하는 삽화가 아니라 현장의 모습을 전달하는 중심 자료로 사진을 활용하며 잡지의 편집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됨. 잡지에 사진이 처음 실린 시점과는 구별되는, 사진 중심 특집의 중요한 전환점임.

내셔널 지오그래픽

러일 강화 뒤인 1905년 11월 러시아군 포로 송환이 시작되고, 나라시노 포로수용소가 1906년 1월 폐쇄됨. 수용소 건물과 부지는 이후 나라시노 연습장에 온 일본군 부대의 임시 숙소인 다카쓰 병영으로 이용됨. 1915년 제1차 세계대전기 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군 포로 수용으로 이어지는 시설 전환.

나라시노 수용소

일본이 한성에 통감부와 부속 관청을 개설하고 업무를 시작한 사건. 을사늑약으로 박탈한 외교권을 통감이 장악하고 고문·일본인 관리 등을 통해 대한제국의 내정까지 통제하는 기구의 출범. 초대 통감으로 임명된 이토 히로부미가 부임하기 전 임시 통감 체제로 업무를 시작한 경과.

용산에서 평양을 거쳐 신의주에 이르는 경의선 전 구간의 열차 운행이 시작됨. 한반도 서북부의 주요 도시가 철도로 이어졌고, 경부선과 연결되는 남북 간선축이 형성됨.

철도는 사람과 상품의 이동 범위를 넓혔지만, 건설과 운영을 장악한 일본의 군사·정치적 목적에도 복무했음. 개통을 근대 교통의 발전으로만 평가하지 않고 식민지화의 기반이 되었다는 점도 함께 이해해야 함.

1906년 4월 18일 수요일 오전 5시 12분 북부 캘리포니아 해안에서 발생한 진도 7.9 규모의 대지진. 3천 명 이상이 사망했고 도시의 80% 이상이 파괴됨.

여성에게 신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한성부 창성동에서 진명여학교가 개교. 순헌황귀비가 교지를 지원하고 엄준원이 설립을 추진해 초대 교장을 맡았으며, 2년제 보통과에 여학생 70명이 입학

진명여자고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