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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1919년의 기록 35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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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육군의 항공기 도입 시험이 진행되던 버지니아주 포트마이어에서 오빌 라이트가 조종한 라이트 플라이어가 프로펠러 파손으로 추락. 라이트는 중상을 입고 동승한 토머스 셀프리지 중위가 사망해 동력비행기 사고의 첫 사망 사례로 기록된 사건.

양기탁이 다섯 차례의 공판 끝에 국채보상금 횡령 혐의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받음. 1908년 8월 31일 첫 공판이 열린 뒤 검찰도 증거가 부족하다는 취지의 논고를 냈으며, 9월 25일 무죄가 판명됨.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운동 지도부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어 국채보상운동은 이미 큰 타격을 입은 상태였음.

비네와 시몽이 기존 검사 과제를 대폭 재구성해 3세부터 13세까지의 연령 수준별로 배열한 개정 척도를 발표함. 특정 연령의 다수 아동이 통과하는 과제를 그 연령 수준에 배치함으로써 아동의 수행을 또래의 전형적인 수행과 비교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춤.

이 판에서 아동의 검사 수행을 특정 연령 집단에 해당하는 ‘정신 수준(mental level)’으로 표현하는 방식이 본격화됨. 후대 영어권 지능검사 전통에서는 이것이 ‘정신연령(mental age)’이라는 용어로 널리 정착했으므로, 비네 자신이 현대적 의미의 정신연령 개념을 처음부터 같은 용어로 제시한 것으로 단순화하지 않음.

알프레드 비네

한삼현·윤재명·정인숙·윤성운·전재풍·이덕환·최유문 등 평양 지역 인사들이 1908년 평양 마산동에 평양자기제조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이승훈이 초대 사장을 맡음. 조선인용 식기 생산과 근대 요업기술의 확산을 목표로 한 식산흥업 사업. 신민회의 산업진흥 구상과 맞닿은 근대 기업이지만 안창호를 직접 발기인으로 단정할 근거는 확인되지 않음.

안창호 설립 주도

안창호와 최남선 등이 신민회의 외곽 청년 조직으로 청년학우회를 창립함. 무실·역행 등의 덕목을 내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청년 수양 단체. 1910년 한일병합과 105인 사건으로 해산되었으나 그 이념이 흥사단으로 계승된 원류.

안창호 중앙총무

비네가 아동 심리와 교육에 관한 연구를 종합한 『Les Idées modernes sur les enfants』를 파리의 에르네스트 플라마리옹에서 출간함. 학교에서의 아동 관찰, 신체·감각 측정, 기억과 지능의 평가, 교육 방법 등을 실험심리학의 관점에서 검토한 저작.

특히 지능을 개인에게 고정된 채 주어지는 양으로 보는 견해를 비판하고, 주의·기억·판단 등 지적 기능이 교육과 훈련을 통해 발달할 수 있다고 주장함. 비네의 지능검사가 단순한 서열화 도구가 아니라 교육적으로 개입할 대상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는 관점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저작 가운데 하나.

안중근에게 피살된 이토 히로부미를 추도하기 위해 민간에서 추진된 국민대추도회(대한국민추도회)의 준비위원 명단에 이름을 올림. 실제 추도회는 열리지 않았으나, 민족문제연구소는 이 참여를 안상호의 친일 행적 가운데 하나로 평가함.

미국 사회당 가입 및 사회운동에 적극적인 참여. 시각장애의 상당수가 열악한 노동 환경과 빈곤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발견. 즉, 장애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회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믿음. 스승 앤 설리번의 남편이자 사회주의자인 존 메이시(John Macy)와 교류하며 사상적 깊이를 더함.

참고로 헬렌 켈러가 급진적인 활동을 했기 때문에 FBI가 수십 년간 사찰.

운동 중단 뒤 남은 의연금의 처리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1909년 조직된 국채보상금처리회가 1910년 4월 18일 국민대총회를 개최함. 참가자들은 토지를 매입하고 그 수익을 교육비로 사용하기로 결의함. 국채 상환이라는 당초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국민이 모은 자금을 교육구국사업으로 전환하려 한 시도였으나, 같은 해 병합으로 실행되지 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