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의 여러 전각이 불탄 대화재 때 돈덕전은 소실을 피한 것으로 전해지는 건물. 이후 외국 사절 접견과 국빈 교류에 본격적으로 사용되며 황궁의 외교 공간 역할을 수행함.
기존 건물을 전면 개조하는 작업을 맡아 1906년까지 진행함. 외관의 곡선과 색채뿐 아니라 중정을 통한 채광과 실내 공간의 연결을 새롭게 구성함.
실비아 팽크허스트, 왕립예술대학에서 미술 교육 시작
맨체스터에서 미술을 공부한 팽크허스트가 장학금을 받아 런던 왕립예술대학에서 수학하기 시작함. 1906년까지 이어진 교육으로 회화와 디자인의 기반을 쌓았으며, 이후 그 기술을 여성 참정권 운동의 배지·현수막·포스터 제작에 활용함. 예술가로서의 진로와 정치 활동을 함께 모색하던 시기였음.
1905년 1월 2일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군이 중국 뤼순(당시 포트아서·여순) 요새의 항복을 수락함. 장기간의 공방 끝에 일본군이 핵심 해군 거점을 장악하면서 동북아시아의 군사적 주도권 구도가 크게 바뀜. 일본은 러일전쟁의 승리를 대한제국에 대한 압박과 침략을 강화하는 계기로 활용했으며, 같은 해 을사늑약을 강요함.
미 연방대법원, 육류업체 담합에 주간 통상 규제 적용
여러 주를 거쳐 이동하는 가축의 매입과 육류 판매를 하나의 통상 흐름으로 파악하고, 주요 육류업체의 공동 가격·출하 통제를 셔먼법으로 금지할 수 있다고 판단한 스위프트 사건. 가축시장에서 거래가 잠시 멈춘다는 사정만으로 주간 통상이 끝난 것은 아니라는 해석. 경쟁업체 사이의 입찰 회피와 물량 제한, 철도 운임상의 특혜를 전체적인 독점화 계획으로 검토하여, 개별 행위의 형식보다 결합의 목적과 효과를 중시한 판결. 제조와 통상을 엄격히 나누었던 초기 판례와 구별되는 연방 집행 범위의 확대.
고종이 황태자를 곁에 앉힌 채 청나라의 전임 공사 허태신과 신임 공사 증광전 등을 돈덕전에서 접견함. 외국을 대표해 주재하는 외교관인 공사를 공식적으로 맞이한 기록으로, 돈덕전이 실제 외교 업무에 쓰였음을 보여주는 사례.
아인슈타인, 광전효과 논문 제출
빛이 연속적인 파동만이 아니라 에너지 양자(광량자) 형태로 흡수·방출된다는 가설 제시. 금속 표면에 빛을 비추면 전자가 튀어나오는 광전효과를 이 가설로 설명. 빛의 입자성을 보인 이 논문으로 1921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으며, 양자역학 발전의 중요한 출발점이 됨.
러일전쟁 중 일본 육군이 1905년 3월 현재의 지바현 나라시노시 히가시나라시노 일대에 러시아군 포로수용소를 개설함. 건물 완공 전에는 포로들이 천막에서 생활했으며, 같은 해 가을 무렵 수용 인원이 약 1만 5천 명에 이름. 훗날 독일군 포로와 관동대지진 뒤 조선인·중국인을 수용한 군사시설 일대의 첫 대규모 수용 단계.
로버트 싱크 출생
미국의 육군 중장 로버트 싱크. (~1965년)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김산. (~1938년)
장 비고 출생
프랑스의 영화 감독 장 비고. (~1934년)
1905년 4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재미 한인 단체 공립협회를 창설하고 초대 회장을 맡음. 회관을 건립하고 기관지 《공립신보》를 발행함. 흩어져 있던 재미 한인을 결집한 미주 독립운동 조직화의 기반.
이홍규 출생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의 법조인 이홍규. (~2002년)
이헌구 (1905년) 출생
대한민국의 문학평론가 이헌구. (~1983년)
이한응 사망
대한제국의 외교관 이한응. (1874년~)
헨리 폰다 출생
미국의 영화배우 헨리 폰다. (~1982년)
마산선 삼랑진·마산포 구간에서 직통 시운전을 시작한 사건. 러일전쟁 중 일본군의 군용철도 건설과 결부되어 진행된 사업으로, 5월 26일은 전 구간의 정식 개통일과 구별되는 시운전 개시일. 공사 보완과 복구를 거쳐 같은 해 10월 21일 전 구간을 개통한 경과.
러일 전쟁의 향방을 가른 최후의 해전. 러시아 제국은 이 전투에서 일본 제국에 참패하며 사실상 전쟁의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
박부양 출생
일제강점기의 관료 박부양. (~1974년)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중재 아래 일본과 러시아가 미국 뉴햄프셔주 포츠머스에서 강화조약에 서명해 러일전쟁을 공식적으로 끝냈다. 조약에서 러시아는 한국에서 일본이 갖는 우월한 정치·군사·경제적 이해관계를 인정했고, 양국은 만주에서 철군하는 한편 일본은 러시아로부터 남사할린과 남만주 철도 관련 권익 등을 넘겨받았다. 조약 중재는 루스벨트의 1906년 노벨평화상 수상으로도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