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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1919년의 기록 35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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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일본이 일본인 노동자의 미국 이민을 제한하는 이른바 신사협정을 마련함. 일본 정부가 미국 본토로 이주하려는 노동자에게 여권 발급을 제한하는 대신, 미국 정부가 샌프란시스코의 일본계 학생 분리교육 조치를 철회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방식으로 타협함. 정식 조약이 아니라 1907년 말부터 1908년 초까지 양국이 교환한 일련의 외교 각서와 행정조치로 성립함. 일본인의 미국 이민을 인종적·국적별로 제한하는 체제가 강화되면서 이후 일본이 파리 강화 회의에서 인종 평등 원칙을 제기하게 된 주요 배경 가운데 하나가 됨.

인종 평등 제안 (1919)

베른 특허국에 재직하던 아인슈타인이 자유낙하하는 사람은 자신의 무게를 느끼지 못한다는 통찰에 도달함. 가속에 의한 관성력과 중력이 국소적으로 구별되지 않는다는 등가원리로, 훗날 스스로 "생애 가장 행복한 생각"이라 회고한 착상. 중력을 시공간의 기하학으로 다루는 일반 상대성이론의 출발점.

1908년 6월 18일 서울 영국총영사관에서 열린 영국 법정이 《대한매일신보》 발행인 배설에게 금고 3주와 6개월간의 선행 보증을 선고함. 통감부가 배설의 항일 언론 활동과 국채보상운동 지원을 문제 삼아 영국 사법당국에 처벌과 추방을 요구한 결과임. 배설은 상하이로 이송되어 복역했으며, 운동의 주요 보도·모금 거점이던 《대한매일신보》의 활동도 위축됨.

국채보상운동

스탠더드오일 창업자 존 D. 록펠러의 손자이자 존 D. 록펠러 주니어와 애비 올드리치 록펠러의 6남매 중 셋째로 메인주 바하버에서 태어남.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가문의 일원으로 성장하며 훗날 정치·자선·예술 후원의 발판이 된 배경 형성. 가문의 부와 공적 활동이 결합된 그의 생애의 출발점.

1908년 7월 12일 통감부가 《대한매일신보》 총무이자 국채보상지원금총합소 검사원이던 양기탁을 의연금 횡령 혐의로 구속함. 통감부는 배설과 양기탁이 보관 중이던 국채보상금 3만 원을 임의로 소비했다고 주장함. 운동 지도부에 대한 불신을 확산시키고 조직을 분열시킨 이른바 국채보상금소비사건의 시작.

국채보상운동

윌리엄 C. 듀런트가 미국 미시간주에서 여러 자동차 제조사를 하나의 기업집단으로 묶기 위한 지주회사 제너럴 모터스를 설립. 뷰익과 올즈모빌을 출발점으로 캐딜락 등 여러 브랜드를 편입하며 20세기 미국 자동차산업의 대표 기업으로 성장하는 출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