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운궁에서 덕수궁으로 개칭
일본의 압력으로 고종이 황제 자리에서 물러나고 순종이 뒤를 이은 뒤, 경운궁이 덕수궁으로 불리게 됨. 덕수는 고종이 덕을 누리며 오래 살기를 바라는 뜻의 궁호. 순종이 창덕궁으로 옮긴 뒤 이곳은 대한제국의 중심 황궁에서 퇴위한 고종의 거처로 성격이 바뀜.
일본의 압력으로 고종이 황제 자리에서 물러나고 순종이 뒤를 이은 뒤, 경운궁이 덕수궁으로 불리게 됨. 덕수는 고종이 덕을 누리며 오래 살기를 바라는 뜻의 궁호. 순종이 창덕궁으로 옮긴 뒤 이곳은 대한제국의 중심 황궁에서 퇴위한 고종의 거처로 성격이 바뀜.
곡예사들이 바닥에 누워 만든 자세를 위에서 촬영해 공중에서 균형을 잡는 듯한 장면을 연출. 실제로 위험한 묘기를 시키는 대신 카메라의 방향으로 관객의 공간 감각을 바꾼 트릭 영화.
국내 광견병 관리사를 다룬 연구에서 동물 광견병의 최초 보고 시점으로 제시하는 해. 당시 개에서 확인된 기록으로, 한반도에 바이러스가 처음 유입된 정확한 시점과 같은 뜻은 아닌 역사적 기준점. 이후 동물 예방접종과 사람의 노출 후 예방이 함께 필요한 인수공통감염병 관리 대상으로 자리 잡은 질병.
지도부에 권한이 집중되는 운영 방식에 반대한 회원들이 WSPU를 떠나 여성자유연맹을 조직함. 여성의 투표권이라는 목표는 공유했지만 조직 내부의 민주주의와 운동 방식에 대한 견해가 달랐음을 보여주는 분열임. 여성 참정권 운동이 하나의 지도부 아래 움직인 단일한 흐름은 아니었음을 드러냄.
팽크허스트가 잉글랜드 중부·북부와 스코틀랜드의 산업 지역을 여행하며 도자기·사슬·신발·방적 등 여러 업종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관찰하고 그렸음. 빠르게 마르는 과슈를 활용해 실제 작업 조건 속에서 인물과 노동을 묘사했으며, 현장에서 조사한 임금과 공정에 관한 글도 작성함. 이 기록은 이후 잡지와 참정권 신문에 실려 여성의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알리는 자료가 되었음.
비노조 모자 제조업체를 상대로 벌인 노동조합의 전국적 불매운동이 셔먼법의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뢰베 대 롤러 판결. 노조 조직화를 요구하는 노동쟁의가 주 경계를 넘는 상품 판매를 막는 결합으로 평가되어, 노동조합과 조합원에게도 반독점법상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길을 연 결정. 기업 독점을 견제하려던 법이 노동자의 집단행동을 제약하는 수단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드러낸 사례이며, 노동활동의 법적 지위를 둘러싼 후속 입법 논쟁과 맞닿은 사건.
1908년 2월 29일 원주진위대 출신 항일 의병장 민긍호가 강원도 일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다 붙잡힌 뒤 탈출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사망한 사건. 민긍호는 1907년 대한제국 군대 해산에 항거해 원주진위대 봉기를 주도하고 강원도·경기도·충청도 등지에서 의병을 지휘한 인물.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1908년 2월 29일을 사망일로 기록하나, 일부 국가보훈부 자료에는 2월 28일로 표기되어 날짜 이견이 있음. 원사료와 전투·체포 경과를 추가 대조할 필요.
일본의 영화 감독 카메이 후미오. (~1987년)
경부선과 경의선을 연결하여 부산과 신의주를 오가는 직통 급행열차 융희호가 운행을 시작함. 개별 노선의 개통을 넘어 한반도 남단과 서북단을 한 열차로 연결하는 장거리 수송망이 갖추어짐.
신의주는 대륙으로 나아가는 관문이었고 부산은 해상 교통과 이어지는 항구였음. 두 노선의 결합은 한반도 철도가 일본과 중국 동북부를 연결하는 교통축으로 편입되는 기반이 되었음.
일제강점기 태생 대한민국의 정치인 신기석. (~1989년)
대한민국의 시인 김기림. (~1950년)
미국의 영화배우 제임스 스튜어트. (~1997년)
독일의 군인 프리츠 비트. (~1944년)
영국의 소설가 이언 플레밍. (~1964년)
대한민국의 화가 심형구. (~1962년)
나치 독일의 군인 오토 스코르체니. (~1975년)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지태. (~1982년)
1908년 6월 18일 서울 영국총영사관에서 열린 영국 법정이 《대한매일신보》 발행인 배설에게 금고 3주와 6개월간의 선행 보증을 선고함. 통감부가 배설의 항일 언론 활동과 국채보상운동 지원을 문제 삼아 영국 사법당국에 처벌과 추방을 요구한 결과임. 배설은 상하이로 이송되어 복역했으며, 운동의 주요 보도·모금 거점이던 《대한매일신보》의 활동도 위축됨.
WSPU가 조직한 여러 행진 대열이 하이드파크로 모여 여성 참정권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개최함. 보라색·흰색·초록색과 수많은 깃발이 운동의 시각적 상징으로 활용됨. 공개 연설과 행진을 통해 지지자들의 규모와 조직력을 드러낸 행사였음.
스탠더드오일 창업자 존 D. 록펠러의 손자이자 존 D. 록펠러 주니어와 애비 올드리치 록펠러의 6남매 중 셋째로 메인주 바하버에서 태어남.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가문의 일원으로 성장하며 훗날 정치·자선·예술 후원의 발판이 된 배경 형성. 가문의 부와 공적 활동이 결합된 그의 생애의 출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