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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1929년의 기록 39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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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W. 채프먼이 클래런던 프레스에서 《The Novels of Jane Austen》 학술판을 출간함. 당시 고전 그리스·로마 작가에게 주로 적용되던 수준의 본문 비평과 판본 연구를 오스틴에게 적용한 판본으로, 오스틴을 학술적 정전 작가로 다루는 전환점 가운데 하나가 됨.

청계천 암거공사 과정에서 광통교 북쪽 교대의 정릉 신장석 부분에 콘크리트 하수관을 끼워 넣고 남쪽 교대에도 배수용 토관을 설치한 공사. 오래된 교량과 왕릉 석재를 보존 대상보다 도시 배수 기반시설로 취급하던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 후대 발굴과 해체 과정에서 이 시설의 흔적이 확인되어 근대의 훼손 이력을 파악하는 단서가 됨.

『독립신문』이 1924년 1월 1일 제169호부터 한자 제호 ‘獨立新聞’을 한글 ‘독립신문’으로 변경. 1919년 창간호부터 제21호까지 사용한 ‘獨立’, 제22호부터 제168호까지 사용한 ‘獨立新聞’에 이은 세 번째 제호. 김승학 운영 아래 한인 독자를 위한 국문 표기를 제호에 반영한 변경.

이광수가 『동아일보』 1면에 「민족적 경륜」을 5회에 걸쳐 연재함. 정치·산업·교육 분야의 결사를 조직하고 일제가 허용하는 범위에서 민족의 당면한 권리와 이익을 확보하자고 주장함. 식민 지배를 인정하는 타협적 자치론이라는 비판과 동아일보 불매운동을 불러왔으며, 이광수가 동아일보사를 떠나는 계기가 된 논설.

이광수 (춘원)

금박 사당을 해체한 뒤 이집트 관리와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무거운 석관 덮개를 들어 올린 작업. 안쪽의 인체형 관이 드러났지만 미라와 황금 가면은 여전히 여러 겹의 관 안에 놓인 상태. 매장실 개방과 석관 개방, 미라 조사 사이에 긴 기술적 준비가 필요했음을 보여주는 사건.

밀른의 시 「테디 베어」가 셰퍼드의 그림과 함께 잡지 《펀치》에 실림. 아직 위니 더 푸라는 이름이 정착하기 전의 곰 캐릭터가 인쇄물에 등장한 단계였음. 이 시는 같은 해 동시집 《우리가 아주 어렸을 때》에도 수록됐음.

곰돌이 푸

이집트 정부가 조사단 관계자들의 부인에게 무덤 관람을 허용하지 않자 카터가 항의하며 작업을 중단한 사건. 단순한 방문 일정의 충돌을 넘어 발굴 허가와 언론 접근, 유물의 귀속을 누가 통제할 것인지에 관한 갈등의 폭발. 이어진 법적 분쟁으로 조사 일정에도 차질이 발생한 상황.

카터와 정부의 갈등이 계속되는 가운데 유물국장 피에르 라코가 군인·경찰과 함께 무덤을 열고 이집트 정부를 대신하여 접수한 조치. 외국 후원자의 발굴권이 이집트 국가의 관리 권한보다 우위에 있지 않음을 드러낸 사건으로, 다음 시즌의 허가 조건 재협상으로 이어진 계기.

라울 월시 감독과 더글러스 페어뱅크스가 제작한 무성 판타지 영화 《바그다드의 도둑 (The Thief of Bagdad)》 개봉. 바그다드와 몽골, 이슬람 건축, 중국풍 의상과 가상의 마법 세계를 하나의 시각적 공간으로 결합한 작품.

중동과 중앙아시아·동아시아의 문화적 차이를 지우고 서구 관객을 위한 화려한 ‘동양’으로 재구성한 대표 사례. 중국계 미국인 배우 애나 메이 웡은 몽골인 노예로 등장해 이국적이고 위험한 동양 여성의 역할을 수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