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920–1929년의 기록 391건

구간을 선택해 더 좁은 기간으로 좁혀 보세요.

가장 많은 기록
1923 · 59건
관련 엔티티
221개
날짜가 확정된 기록
72%
구간을 선택해 기록 보기 1923 · 59건

캘빈 쿨리지 대통령이 존슨-리드법에 서명함. 1921년에 시작된 출신국별 할당을 더욱 제한적인 방식으로 재편하고, 귀화 자격이 없는 아시아계의 이민을 원칙적으로 배제하였음. 특히 일본계 이민의 차단은 일본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으며, 출신 배경에 따라 입국 기회를 달리 배분하는 체제가 굳어진 사건이었음.

전쟁과 빈곤 속 아동을 보호해야 한다는 운동이 국제연맹의 선언으로 이어짐. 성장에 필요한 환경, 우선적인 구호와 착취로부터의 보호를 사회의 책임으로 제시함. 훗날 아동을 독립적인 권리 주체로 다루는 협약이 마련되는 데 역사적 토대가 되었으나, 이 선언 자체가 1989년 협약과 같은 조약은 아니었음.

아동권리협약

일본군 ‘위안부’ 피해생존자이자 여성인권운동가 김학순이 중국 만주 지린에서 출생함. 훗날 1991년 국내 거주 피해생존자로서는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하고, 일본 정부를 상대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운동에 나섬.

1924년 9월 통의부와 참의부의 갈등 속에서 참의장 채찬이 통의부원들에게 피살된 뒤, 『독립신문』은 10월 4일 제177호에 통의부 비판 사설 「남만사변을 듣고」와 참의부의 통의부 성토문을 게재함. 통의부 측은 11월 7개 단체와 연합해 반임정 선언과 『독립신문』 구독 금지 내용을 담은 성명서를 발표함. 김승학은 이러한 반발 속에서 1924년 11월 15일 사장직을 사임하고 상하이를 떠남.

독립신문 상하이판

빛이 파동이자 입자이듯, 전자 같은 물질 입자도 파장 λ=h/p의 파동성을 가진다는 물질파 개념을 박사 논문에서 제안. 파동-입자 이중성을 물질 전체로 확장한 발상. 이 가설은 1927년 전자 회절 실험으로 확인되었고 파동역학의 씨앗이 됨.

덴비가 장식용 화병·볼·담배 항아리 등에 '다네스비 웨어(Danesby Ware)' 상표를 붙여 선보임. 같은 시기 전통 솔트글레이즈 생산을 접고 다양한 색 유약 컬렉션으로 무게를 옮겨, 일렉트릭 블루 등 수집가들이 아끼는 라인을 내놓음. 실용 스톤웨어에서 색채를 입힌 아트·주방 도자기로 정체성을 넓힌 전환. 다네스비 웨어 명칭은 1924년경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 쓰임.

함석헌이 1924년 동경고등사범학교 문과 제1부에 입학해 1928년 졸업함. 재학 중 우치무라 간조의 성서연구에 깊은 영향을 받고, 김교신·송두용·정상훈 등과 교류하며 무교회주의 신앙을 받아들임. 제도 교회보다 성서 읽기와 개인의 신앙적 결단을 중시하는 관점이 이후 그의 종교사상과 사회 참여의 중요한 토대가 됨.

함석헌

베니토 무솔리니가 1925년 1월 3일 이탈리아 하원에서 잔혹한 정치 폭력과 사회당 정치인 자코모 마테오티 살해 사건에 대한 정치·도덕적 책임을 자신이 지겠다는 취지의 연설을 함. 이 연설은 파시스트 정권이 의회 견제를 무력화하고 공개적 독재를 확립하는 주요 전환점으로 평가됨. 독재 제도는 단 하루에 완성된 것이 아니라 이후 수년에 걸친 법률·행정 조치로 강화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