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커 연준, 연방기금금리 20% 안팎까지 끌어올림
1981년 중반 볼커 연준의 강한 통화긴축 아래 연방기금금리가 20% 안팎까지 상승함. 높은 차입비용으로 주택·제조업 등 금리에 민감한 부문이 크게 위축됐고, 1981~1982년 경기침체와 실업 증가로 이어짐. 인플레이션 기대를 낮추기 위해 매우 높은 금리를 감수한 볼커 긴축의 정점에 해당함.
1981년 중반 볼커 연준의 강한 통화긴축 아래 연방기금금리가 20% 안팎까지 상승함. 높은 차입비용으로 주택·제조업 등 금리에 민감한 부문이 크게 위축됐고, 1981~1982년 경기침체와 실업 증가로 이어짐. 인플레이션 기대를 낮추기 위해 매우 높은 금리를 감수한 볼커 긴축의 정점에 해당함.
동요풍 히트곡 〈고추잠자리〉와 〈일편단심 민들레야〉·〈물망초〉를 수록한 1981년 정규 3집. 〈고추잠자리〉는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폭넓게 사랑받으며 그의 대표곡으로 자리 잡음. 다양한 장르를 실험하던 초기 행보를 보여 주는 음반.
워너-아멕스 새틀라이트 엔터테인먼트가 1981년 8월 1일 0시 1분(미 동부시간) MTV를 개국함. "신사 숙녀 여러분, 로큰롤(Ladies and gentlemen, rock and roll)"이라는 멘트에 이어 버글스의 〈Video Killed the Radio Star〉를 첫 뮤직비디오로 송출. 뮤직비디오를 연속 편성하고 VJ가 곡을 소개하는 새로운 형식으로, 음악 소비를 시각 매체로 전환한 출발점.
1981년 8월 12일 IBM이 개인용 컴퓨터 IBM PC(모델 5150)를 출시하며 중앙처리장치로 인텔 8088을 채택함. 8088은 8086과 같은 16비트 내부 아키텍처를 사용하면서 외부 데이터 버스를 8비트로 줄인 변종으로, 기존의 저렴한 8비트 주변 부품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IBM의 비용·개발 일정 요구에 부합했음.
IBM PC가 기업용 개인용 컴퓨터의 표준 플랫폼으로 자리잡고 호환 기종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8086 계열의 명령어 집합도 사실상의 PC 표준으로 굳어짐. 인텔이 확보한 가장 중요한 디자인 윈 가운데 하나로, 이후 x86 생태계가 수십 년간 이어지는 결정적 계기가 됨.
뉴욕·뉴저지와 캘리포니아를 오가며 진행된 《애니》의 본 촬영이 완료됨. 제작 과정에서 버뱅크 스튜디오에 약 100만 달러를 들인 뉴욕 거리 세트가 건설되는 등 대규모 뮤지컬 영화로 제작됨. 이후 일부 장면의 추가 촬영이 진행됨.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뉴욕 현대미술관(MoMA)을 떠나 스페인 마드리드에 도착. 작품은 1939년 이후 미국에 머물렀고, 피카소가 스페인에 민주적 자유가 회복되기 전에는 귀환하지 않도록 뜻을 남긴 탓에 프랑코 정권 아래에서는 반환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작품.
1975년 프랑코 사망 이후 민주화와 1978년 헌법 제정을 거쳐 반환 협상이 진전되면서 1981년 귀환이 성사. 작품은 카손 델 부엔 레티로에 설치되었고, 귀환 자체가 스페인의 민주화 전환과 망명·내전 기억의 복귀를 상징하는 문화정치적 이정표.
프랑스 국민의회가 로베르 바댕테르 법무장관이 정부를 대표해 제출한 사형제 폐지 법안을 363대 117로 가결한 표결. 상원은 9월 30일 같은 문안을 가결했고, 폐지 법률은 10월 9일 공포.
손정의가 1981년 9월 일본에서 니혼 소프트뱅크를 설립하고, PC용 패키지 소프트웨어의 전국 유통 사업을 시작함. 회사명은 정보화 사회의 기반이 될 ‘소프트웨어의 은행’을 지향한다는 뜻에서 붙여짐. 이후 소프트뱅크는 출판·인터넷·통신을 거쳐 대규모 기술 투자 그룹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출발점을 마련함.
본 촬영을 마친 뒤 캐럴 버넷·팀 커리·버나뎃 피터스가 출연하는 뮤지컬 넘버 '이지 스트리트'의 추가 촬영이 진행됨. AFI 기록상 영화의 최종 제작 기간을 마무리하는 촬영에 해당함.
급증한 교통량 수용을 위해 기존 교량 하류측에 6경간 타이드아치교, 거더교 구간 상류측에 19경간 판형교를 가설한 확장공사 완료와 개통. 교폭 40m, 왕복 8차로 규모의 쌍둥이 아치교 형태 형성. 기존 S자형 평면 노선을 대칭으로 확장하고, 제1한강교·한강인도교의 명칭을 한강대교로 변경.
백인천이 MBC와 정식 계약을 맺고 신생 프로야구단 MBC 청룡의 초대 감독에 취임함. 계약기간은 3년으로, 첫해인 1982년에는 감독과 선수를 겸하고 이후 2년간은 감독으로 활동하는 조건이었음.
일본프로야구에서 약 20년간 선수로 활동한 백인천이 한국 프로야구 출범을 앞두고 귀국해 선수 겸 지도자로 새 경력을 시작한 전환점.
크라운 하우스 엔지니어링(Crown House Engineering)이 덴비의 주식을 사들여 인수함. 새 모회사 아래에서 덴비는 테이블웨어와 조리도구에 집중했으나, 1980년대는 맞지 않은 인수와 미국 시장 부진으로 부침이 컸던 시기. 이후 이어질 여러 차례 소유권 변동의 시작.
앨런 케이가 제록스 PARC를 떠난 뒤 아타리의 수석 과학자(Chief Scientist)로 취임함. 아타리의 연구 조직에서 어린이를 위한 컴퓨팅 환경과 교육 기술을 탐구하고, 인터랙티브 컴퓨팅을 소비자용 기술로 확장하는 방향을 모색함.
이 시기는 PARC에서 형성한 다이나북·스몰토크의 문제의식을 연구소 밖의 대중적 컴퓨팅 환경으로 옮기려 한 경력 전환점에 해당함. 이후 1984년 애플 컴퓨터의 펠로로 자리를 옮겨 교육용 미디어와 개인용 컴퓨팅 연구를 계속함.
1979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1981년 제23회 사법시험에 합격함. 사법연수원 수료를 거쳐 법관 임용 자격을 갖춤. 본격적인 법조 경력의 토대가 된 관문.
리처드 페티와 존 카치오포가 태도 변화 연구를 정리한 교재 『태도와 설득: 고전적·현대적 접근』을 출간함. 이 책의 결론부에서 자신들의 설득 이론에 '정교화 가능성 모델'이라는 명칭을 처음 부여함. 흩어져 있던 태도 변화 연구를 하나의 이론적 틀로 묶어 모델의 이름과 기본 골격을 세운 저작.
오사카부립대학 공학부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자동차 부품 제조사 니혼덴소에 기술자로 입사. 회사에 다니면서 퇴근 후 소설을 집필하고 에도가와 란포상에 반복적으로 응모. 1985년 재직 중 《방과 후》로 에도가와 란포상을 받기까지 이어지는 직장인 작가 시기의 시작.
존 카치오포와 리처드 페티가 인지 욕구를 노력적 사고 활동에 참여하고 이를 즐기려는 경향으로 재개념화하고, 34문항의 자기보고식 인지 욕구 척도를 개발함. 대학 교수 집단과 조립라인 노동자 집단을 변별하는 문항을 선별해 척도를 구성. 인지 욕구를 안정적으로 측정 가능한 개인차 변인으로 확립한 연구.
AMD가 인텔과 기술 교환 계약을 맺고 8086·8088 프로세서의 공인 2차 공급사가 됨. IBM이 PC에 쓰일 칩을 최소 두 곳에서 공급받도록 요구한 정책에 따라 성사된 계약. 이후 Am286까지 같은 방식으로 생산하며 x86 시장에 본격 진입.
MTV가 유명 음악가들이 시청자에게 케이블 사업자에 MTV 편성을 요구하도록 독려하는 「I Want My MTV!」 광고 캠페인을 시작함. 낮은 초기 보급률을 끌어올리고 채널 구호를 대중문화의 유행어로 만든 마케팅 전환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