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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아오바 다이요의 골프 도전을 그린 《내일은 맑음》을 연재하기 시작함. 골프 기술과 경기의 심리를 성장 드라마에 결합하며 복싱·검도·스모에 이어 스포츠만화의 소재를 확장함. 공식 작품 포털은 작품의 시작을 1980년 10월로 소개함.

치바 테츠야

영국 여러 지역의 안테나를 조드럴 뱅크와 연결하는 MERLIN이 가동됨. 떨어진 망원경의 신호를 함께 처리해 미세한 천체 구조를 구분하는 간섭계 방식으로, 집광 면적이 같은 하나의 거대 접시를 만드는 것과는 다름. 관측의 중심이 개별 장비에서 통신·계산·협업을 포함한 전국적 기반 시설로 확장됨.

마르가 1980년대에 옛 네거티브를 긁거나 카메라 없이 감광 재료를 다루는 포토그램 등 새로운 사진 실험을 진행함. 회화에서 익힌 손의 움직임과 사진 재료의 빛 반응을 결합하여 초기 상업사진·포토몽타주와 다른 추상적 이미지를 제작함. 후기 작품들은 생전에는 널리 공개되지 않았으나 이후 회고전과 작업실 자료 연구를 통해 알려짐.

1970년대 후반부터 진행된 공장의 외부 이전이 이어지며 평화시장 건물은 생산·판매가 결합된 공간에서 도매 유통 중심으로 바뀌어 감. 봉제공장 일부는 창신동·숭인동·신당동의 주택가로 옮겨 작은 작업장과 시장 점포가 주문·하청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형성함.

완전히 이전한 시점에 관한 상인들의 기억은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로 엇갈리며, 여러 해에 걸친 재편 과정. 인근 공장에서는 빠른 납기에 맞춘 의류 생산이 계속되었지만 반지하·소규모 작업장 등으로 노동 현장이 분산되어 시장 건물의 개선이 노동조건 전반의 개선과 일치하지는 않았음.

신군부의 노동운동 정화조치와 간부 연행 이후 서울시장 명의의 청계피복노조 해산명령서가 전달됨. 같은 달 경찰이 노조 사무실의 집기를 반출하고 평화시장 일대의 접근을 막으면서 공개적인 노조 활동이 차단됨.

조합원들은 해산 철회를 요구했고 1월 30일에는 아시아·아메리카 자유노동기구 한국사무소 점거농성에 나섬. 농성 진압과 구속으로 활동가들이 흩어진 뒤에도 남은 노동자들이 청계모임을 꾸려 조직 재건을 이어감.

민주정의당이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창당대회를 열고 현직 대통령 전두환을 초대 총재와 제12대 대통령 후보로 추대함. 신군부 출신 인사들이 창당을 주도하고 민간 정치인들이 참여했으며, 이재형이 당대표위원을 맡은 집권정당의 출범.

당은 민주·정의·복지 등을 내세웠지만 계엄과 정치활동 규제 속에서 조직되었음. 이후 대통령 간접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전두환 체제를 뒷받침하는 제5공화국의 여당이 됨.

전두환 초대 총재

아벨 강스의 1927년 무성영화 《나폴레옹》 복원판을 뉴욕 라디오시티 뮤직홀에서 오케스트라 연주와 함께 상영. 케빈 브라운로의 복원 작업을 바탕으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미국 상영을 후원하고, 아버지 카마인 코폴라가 새 음악을 작곡·지휘한 행사. 고전영화의 복원과 재상영을 지원한 코폴라의 초기 보존 활동.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대법원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사형판결을 확정한 날, 전두환 정부는 국무회의를 거쳐 김대중의 형을 무기징역으로 감형함. 국내외에서 사형집행 반대와 구명 요구가 이어진 상황에서 이루어진 조치였으나, 정치적 수사와 재판의 유죄판결 자체가 이때 바로잡힌 것은 아니었음. 김대중은 이후에도 수감되다가 1982년 12월 형집행정지로 풀려나 미국으로 출국하게 되었음.

전두환

박정희 대통령 피살 뒤 1979년 10월부터 이어졌던 비상계엄이 해제됨. 1980년 5월 전국으로 확대되고 같은 해 10월 지역계엄으로 조정되었던 계엄 체제가 이로써 종료됨.

대법원은 신군부의 내란을 1980년 5월 광주 진압에만 한정하지 않고, 계엄 확대와 정치활동 규제 등이 연결된 일련의 강압행위로 판단함. 이에 따라 1997년 판결에서 5·18 내란행위의 종료 시점을 비상계엄이 최종 해제된 1981년 1월 24일로 정함.

아모스 트버스키와 대니얼 카너먼이 학술지 《Science》에 「The Framing of Decisions and the Psychology of Choice」를 발표함. 동일한 결과를 이득이나 손실 가운데 어느 쪽으로 표현하는지에 따라 사람들의 선택이 달라지는 프레이밍 효과를 제시함.

대표적인 ‘아시아 질병 문제’에서 600명의 생명이 위험하다는 가상의 상황을 제시한 결과, ‘200명을 살린다’는 이득 프레임에서는 응답자의 72%가 확실한 선택을 택함. 반대로 같은 결과를 ‘400명이 죽는다’는 손실 프레임으로 제시하자 78%가 사망자가 없을 가능성이 포함된 위험한 선택을 택함. 이득 영역에서는 위험을 회피하지만 손실 영역에서는 확실한 손실을 피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할 수 있다는 전망 이론의 예측을 보여주고, 표현 방식만으로 선호가 역전될 수 있음을 실증함.

대니얼 카너먼 공동 저자 프레이밍 효과 논문에서 제시한 핵심 현상 손실 회피 선택 차이를 설명하는 원리 전망 이론 이론적 토대

심장 전기 신호의 QT 간격과 심박수의 관계를 이용해, 신체 활동에 따라 조율 속도를 조절하는 설계가 발표된 사건. 일정한 속도로만 박동을 보조하는 데서 나아가 몸이 요구하는 활동량을 반영하려는 시도.

운동이나 활동으로 필요한 혈류가 늘어날 때 조율 속도도 적절히 달라져야 한다는 문제에 대한 기술적 접근. 이후 다양한 센서를 이용하는 활동 반응형 심장박동기로 이어진 연구 방향.

청계피복노조 해산에 반대하던 이소선이 구속됨. 서울시가 1981년 1월 노조 해산을 명령한 뒤 활동가들이 조직 유지와 대응책을 논의한 것이 처벌의 대상이 됨. 같은 해 7월 계엄법 위반으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으나, 2024년 12월 서울동부지법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됨. 재심 재판부는 당시 계엄포고의 발령 요건과 내용이 헌법·법률에 위배된다고 판단함.

《마음의 저편》 촬영을 시작한 다음 날,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조이트로프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비디오 기술을 영화 제작에 결합하는 ‘전자영화’ 구상을 설명. 사전 촬영·편집과 현장 모니터링을 활용해 이미지와 소리를 조정하며 제작과 후반작업의 경계를 줄이려 한 실험.

새 헌법에 따라 구성된 대통령선거인단이 민주정의당 후보 전두환을 제12대 대통령으로 선출함. 선거인단 5,271명 가운데 4,755명의 지지를 얻은 간접선거로, 유권자가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는 방식은 채택되지 않았음.

1980년 헌법이 정한 7년 단임 대통령제에 따라 전두환은 3월 3일 취임함. 군사력으로 확보한 실권이 새로운 헌법과 집권정당, 간접선거를 통해 제도화된 과정.

전두환

전두환이 제12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제5공화국의 대통령 임기를 시작함. 1980년 헌법이 정한 대통령선거인단의 간접선거에서 당선된 뒤 이루어진 취임으로, 대통령 임기는 7년 단임으로 규정됨.

민주정의당이 집권당을 맡고 국가안전기획부·군 보안기관·경찰 등을 통한 권위주의 통치가 이어짐. 대통령의 중임 제한이 도입되었어도 대통령 직선제와 정치적 자유를 요구하는 민주화운동이 계속된 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