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 형집행정지로 석방
시인 김지하가 형집행정지로 석방됨. 민청학련 사건으로 수감됐다가 1975년 잠시 풀려난 뒤, 인혁당 사건의 고문·조작을 폭로하고 다시 구속되어 장기간 옥살이를 한 끝의 출감.
전두환 정부 출범 뒤 이루어진 석방이지만, 이전 정권에서 시작된 국가폭력과 장기 구금의 피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음. 김지하는 출감 이후에도 집필과 사상적 모색을 이어감.
시인 김지하가 형집행정지로 석방됨. 민청학련 사건으로 수감됐다가 1975년 잠시 풀려난 뒤, 인혁당 사건의 고문·조작을 폭로하고 다시 구속되어 장기간 옥살이를 한 끝의 출감.
전두환 정부 출범 뒤 이루어진 석방이지만, 이전 정권에서 시작된 국가폭력과 장기 구금의 피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음. 김지하는 출감 이후에도 집필과 사상적 모색을 이어감.
미국 의회가 CONTU 권고를 바탕으로 컴퓨터 프로그램을 제17편에 명시적으로 반영하고, 프로그램 사용에 필요한 복제와 보관용 복제 등에 관한 제117조 규정을 정비함. 1976년법이 소프트웨어 시대에 적응한 초기 핵심 개정.
1980년 12월 14일 방영된 《코스모스: 개인적 여행》 12화 〈Encyclopaedia Galactica〉에서 "특별한 주장에는 특별한 증거가 필요하다"고 언급함. 외계 문명의 지구 방문 가능성과 UFO 사례를 엄격하고 회의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맥락에서 제시. 텔레비전 방영을 통해 격률을 대중적으로 확산한 계기.
전두환 정부가 국가보위입법회의를 거쳐 제정한 「언론기본법」을 공포함. 이 법은 신문·통신·방송 관련 법체계를 통합하고 언론의 공적 책임을 내세웠으나, 정부가 정기간행물 등록을 취소하거나 발행을 정지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했음. 앞서 이루어진 언론인 강제해직과 언론사 통폐합에 법적 통제 장치가 결합하면서 제5공화국 언론 통제체제가 굳어졌으며, 법률은 민주화 이후인 1987년 폐지됨.
국가보위입법회의가 의결한 노동조합법 개정법률을 전두환 대통령이 공포함. 개정법은 노조 설립을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로 규정하고, 근로자 30인 이상 또는 해당 사업장 근로자의 5분의 1 이상의 찬성을 설립 요건으로 정함.
직접적인 근로관계가 없는 사람 등의 노조 설립·해산 및 단체교섭 개입을 금지하고, 상급 노동단체에 교섭을 위임할 때에는 행정관청의 승인을 받도록 함. 사업장 간 연대와 외부 지원, 상급단체의 교섭 활동을 제약하는 법적 장치가 강화되면서, 정권 초기 노동계 정화조치에 이어 노조의 조직과 활동에 대한 제도적 통제가 확대됨.
동양통신과 합동통신을 합치고 시사·경제·산업 등 군소 통신사를 흡수한 연합통신이 출범함. 통신사는 신문·방송에 기사를 공급하므로 통신망의 단일화는 독자가 접하는 뉴스의 출발점에도 영향을 미쳤음. 설립 자본금의 일부는 기존 통신사들의 현물출자로 마련되었고, 이후 지분 이전을 거쳐 KBS와 MBC가 대주주가 되었음.
미국의 버나드 라운과 소련의 예브게니 차조프를 비롯한 의사들이 제네바에 모여 핵전쟁 예방을 위한 국제 협력의 원칙에 합의. 두 심장학자의 오랜 학문적 교류와 서신 왕래를 바탕으로, 군비경쟁의 적대 진영에 속한 의료인들이 공동 조직을 출범시킨 사건.
핵전쟁과 관련 문제에 활동의 초점을 맞추고,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의사의 책임을 정치적 입장보다 앞세우기로 결정. 동서 양측의 의료 지식을 모아 핵전쟁의 결과를 시민과 지도자에게 알리되 초당파적 성격을 유지한다는 원칙 확립. 국가 간 대립을 넘어 예방의학의 관점으로 핵 위협에 대응하는 운동의 시작.
제인 오스틴의 어린 시절 극본을 무대에 올리려는 뉴욕 연극인들의 경쟁을 다룬 영화. 자브발라가 발견된 극본을 이야기의 출발점으로 삼고, 1980년 1월부터 3월까지 뉴욕 현지에서 촬영한 작품.
올리비아 핫세(Olivia Hussey)와 일본 가수 후세 아키라(布施明, Akira Fuse)가 1980년 결혼. 핫세의 두 번째 결혼으로, 두 사람 사이에 아들 한 명을 둔 가족관계. 이후 1989년 이혼.
서명숙이 고려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1980년부터 1983년까지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출판간사로 근무함. 월간지 기자와 시사주간지 편집장으로 이어지는 출판·언론 경력의 출발점.
병원체를 가진 등줄쥐가 한탄강 유역에서 포획되었고, 한국전쟁 때 환자가 많이 발생한 지역도 관련이 있기 때문에 한탄강 이름을 따 한탄바이러스 (Hantaan Virus)로 명명.
서울의 아파트 주변에서 포획한 집쥐의 폐 조직에서 한탄바이러스와 구별되는 새로운 바이러스를 분리함. 이후 서울바이러스(Seoul virus)로 명명된 이 바이러스가 도시형 신증후출혈열의 원인 병원체임을 밝히는 연구로 이어짐.
바로아응애가 미국 양봉 현장에서 확인되며 북미 꿀벌 건강 문제의 주요 변수로 부상. 꿀벌 바이러스 확산과 군집 약화에 관여.
1980년 미국 뉴욕 카네기홀 무대에 서며 한국 가수로는 처음으로 이곳에서 공연한 기록을 남김. 데뷔 초부터 해외 무대를 개척한 상징적 사건. 이후 이어지는 국제 공연 활동의 출발점.
자라가 1980년대 디자인, 제조, 유통 과정을 재편해 매장 반응에 더 빠르게 대응하는 체계를 구축함. 전통적 시즌 기획보다 짧은 리드타임과 빈번한 상품 교체를 중시하는 패스트 패션 방식의 핵심 사례가 됨.
자라의 모델은 매장 수요, 정보기술, 디자이너 팀, 물류망을 결합해 상품을 짧은 주기로 회전시키는 데 초점을 둠. 이 방식은 이후 SPA 브랜드와 패스트 패션을 설명할 때 반복적으로 인용되는 구조가 됨.
제록스 PARC가 외부 배포와 이식을 목적으로 스몰토크-80을 개발·공개함. 아델 골드버그가 PARC 밖으로의 보급과 라이선스 사업을 이끌고, 댄 잉걸스가 공개판 개발을 주도함. 텍트로닉스, DEC, 애플, HP 등 파트너 기업에 라이선스가 제공되며 여러 시스템으로의 이식이 추진됨.
스몰토크-80은 클래스·메타클래스·메시지 전달·스트림·통합 개발 환경을 하나의 일관된 객체 체계로 정리한 버전. 이후 상용 스몰토크 구현체들의 기반이 되었으며, 1981년 8월 《BYTE》의 스몰토크 특집을 통해 객체지향 프로그래밍과 그래픽 개발 환경의 개념을 컴퓨터 업계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됨.
인텔이 8086·8088의 수치 연산을 보조하도록 설계한 8087 코프로세서를 도입함. 별도 칩에서 부동소수점 연산을 처리해 8086 기반 시스템의 수학 계산 성능을 크게 높였으며, 이후 x86 계열의 수치 연산 기능 발전에 영향을 준 초기 구성요소가 됨.
볼커 연준이 통화량 증가 억제를 우선하는 긴축 기조를 지속하며 높은 시장금리를 감수한 반인플레이션 정책을 추진함. 연방기금금리는 1980년 말 20%까지 치솟았고, 1981년에도 약 19% 수준의 고금리가 이어짐. 이는 기업과 가계의 차입 비용을 급격히 높이며 투자·소비 위축과 유동성 압박을 초래함.
미국 경제는 1980년 경기침체와 1981-1982년의 더 깊은 침체를 연이어 겪었고, 실업률은 1982년 말 거의 11%까지 상승함. 반면 인플레이션은 1980년 고점 이후 빠르게 둔화해 1982년 말에는 약 4-5% 수준으로 낮아짐. 볼커의 정책은 큰 사회적 비용을 수반했지만, 1970년대식 고인플레이션과 기대인플레이션의 고착을 끊어낸 전환점으로 평가됨.
1980년 H&M이 스웨덴 통신판매 회사 로웰스(Rowells)를 인수하며 매장 밖 판매 채널을 확보. 카탈로그와 우편 주문을 통해 고객의 집으로 H&M 패션을 전달하는 기반을 마련. 이후 인터넷 판매와 전자상거래로 이어지는 원격 판매 역량의 초기 전환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