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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1989년의 기록 1,39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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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 베리가 에밀리 역으로 출연한 ABC 시트콤 《리빙 돌스》(Living Dolls)의 첫 방송. 모델 지망생들을 다룬 코미디에 고정 출연하며 텔레비전 연기를 시작했고, 이후 《노츠 랜딩》 등으로 방송 경력을 이어 간 인물. 장편영화 《정글 피버》에 앞선 초기 배우 활동.

《송아지 송아지 누렁 송아지》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지지 야외공연으로 확대함. 대학 총학생회·지역 단체와 함께 노래와 연극, 풍물을 결합하여 해직 교사 문제와 민주화 요구를 공연에 담음.

소극장 대화형 공연에서 대규모 사회참여 공연으로 활동 범위가 넓어진 계기가 됨.

참가자가 늘어나면서 평화기도가 개혁교회에서도 열리고, 약 2만 명이 링을 따라 행진함. 경찰은 행진을 막으려 했으며 일부 구간에서는 방패·곤봉과 경찰견을 동원해 개입함. 집회의 급성장과 강경 대응이 맞물리면서 다음 주 월요일에 더 큰 충돌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짐.

성 니콜라이 교회를 비롯한 네 교회의 평화기도 뒤 약 7만 명의 시민이 도심을 행진함. 무력 진압의 우려 속에서 참가자들은 ‘우리가 인민이다’, ‘폭력을 쓰지 말라’고 외쳤으며 정치적 자유와 개혁을 요구함. 보안 병력은 물러났고 집회는 유혈 진압 없이 끝나, 이후 대중운동이 더 넓게 확산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됨.

시민운동가들은 시위대와 보안 병력 모두에게 비폭력을 촉구하는 전단을 배포함. 지휘자 쿠르트 마주어를 포함한 지역 인사 여섯 명도 대화를 호소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함. 이 같은 호소와 시민들의 비폭력적 행동, 압도적인 참가 규모, 현장 지휘의 판단을 함께 고려해야 하며, 진압이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를 한 사람의 공로로만 환원하기는 어려움.

라이프치히 월요 시위 독일 재통일

MBC가 880회 〈서울은 비〉를 방송하며 《수사반장》의 정규 방송을 마무리. 1971년 3월 시작 이후 1984년의 첫 종영과 1985년 재개를 거쳐 18년에 걸친 수사극의 막을 내린 날. 최불암의 박 반장과 동료 형사들이 발로 뛰는 수사로 범죄를 추적하고, 사건에 얽힌 인간적 사정까지 살피는 작품 세계를 마감한 방송. 종영 뒤에도 특징적인 주제음악과 박 반장의 모습은 후대 영화·드라마·예능의 인용과 패러디에 남은 대중문화의 기억. 2024년에는 박영한의 청년기를 다룬 프리퀄과 최불암의 특별출연으로 이어지며, 본편의 종영 이후에도 인물과 세계가 확장된 시리즈의 마지막 회.

우디 앨런이 각본·연출한 《범죄와 비행》이 미국에서 개봉함. 마틴 랜다우가 연기한 안과의사와 앨런이 연기한 다큐멘터리 감독의 이야기를 나란히 배치해 죄책감과 도덕적 선택을 다룸.

노라 에프런이 영화 후반 결혼식 장면의 하객으로 짧게 출연함.

노라 에프런 결혼식 하객 역 출연

왕가위의 장편 감독 데뷔작 《열혈남아》가 한국에서 개봉함. 유위강이 촬영감독을 맡아 핸드헬드 촬영과 색채 대비를 활용한 홍콩 도심의 시각적 질감을 구현했으며, 1980년대 후반 신세대 촬영감독으로 자리 잡던 시기의 대표작.

전주 집회가 대규모 유혈 진압 없이 끝난 뒤에도 시민들은 다시 거리로 나옴. 참가자가 약 12만 명으로 늘면서 10월 9일이 일회적인 예외가 아니라 지속적인 대중운동의 전환점이었음이 드러남. 당국이 대화를 제안하는 한편 진압도 검토하던 상황에서 시민들의 반복적인 참여는 정치 개혁 요구를 계속 가시화함.

1989년 10월 17일 오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크루즈산맥의 로마프리에타 인근에서 규모 6.9의 지진이 발생한 사건. 샌프란시스코만 일대에 강한 흔들림이 전달돼 고가도로와 교량 등이 붕괴·손상되었으며 63명이 사망하고 수천 명이 다침.

현대 도시 기반시설의 지진 취약성과 내진설계·재난 대응체계의 중요성을 부각한 대형 지진.

동독의 사회주의통일당(SED) 중앙위원회가 장기 집권한 에리히 호네커의 사퇴를 공식 승인하고 에곤 크렌츠를 후임 총서기로 선출함. 전날 정치국 내부에서 사실상 축출이 결정된 뒤 대규모 시위와 대규모 탈출 등 사회적 압박이 이어지는 가운데 권력 교체가 확정됨. 베를린 장벽 붕괴를 약 3주 앞둔 동독 체제의 급격한 변화가 드러난 사건.

라이프치히의 월요 시위 참가자가 약 25만 명으로 늘어남. 호네커가 물러나고 에곤 크렌츠가 당 지도부를 이어받은 뒤에도 시민들의 거리 참여는 줄지 않음. 지도자의 교체를 넘어 발언의 자유와 정치적 참여, 실제 제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계속됨.

조규찬이 1989년 10월 28일 열린 제1회 유재하음악경연대회에서 자작곡 《무지개》로 금상을 수상함. 첫 회 대회에서는 금상이 최고상이었으며 대상 부문은 제2회부터 운영됨. 《무지개》는 제1회 경연대회 기념음반에도 수록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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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유재하음악경연대회

정혜선이 제1회 유재하음악경연대회에서 《나의 하늘》로 은상을 수상함. 이 곡은 경연대회 기념음반에 수록되었으며, 당시 신인 창작 음악가의 작품을 소개한 첫 회 입상 기록에 포함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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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유재하음악경연대회

유원준이 제1회 유재하음악경연대회에서 연주곡 《낙엽이 있는 골목》으로 동상을 수상함. 유재하음악장학회 공식 역대 수상 명단에는 '낙엽이 있는 골목'으로, 당시 기념음반의 일부 트랙 목록에는 '낙엽이 있는 길목'으로 적혀 있어 자료 간 제목 표기 차이가 확인됨.

제1회 유재하음악경연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