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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2009년의 기록 74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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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 9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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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3월 구글 이사회 의장으로 합류한 뒤 8월 최고경영자(CEO)에 오름. 엔지니어 출신 창업자 래리 페이지·세르게이 브린과 함께 '3두 체제'로 회사를 운영하며 노련한 전문 경영을 더함. 신생 검색 기업 구글이 본격적인 사업 조직으로 도약하는 전환점.

에릭 슈미트

9·11 테러 당일 뉴욕 소방관 세 명이 무너진 세계무역센터 잔해 위에 성조기를 세웠고, 사진기자 토머스 E. 프랭클린이 이 장면을 촬영함. 이오지마 사진에 비견된 이 이미지는 다음 날 신문 1면을 장식하며 미국의 회복과 단결을 상징하게 됨. 9·11 이후 성조기 판매가 급증하고 집·자동차에 국기를 다는 물결이 일며, 성조기가 국가적 애도와 결속의 표상으로 다시 부각됨.

성조기

9·11 테러 사흘 뒤 미국 의회가 대통령에게 공격을 계획·지원·실행하거나 이를 비호한 국가·조직·개인을 상대로 필요한 무력을 사용할 권한을 부여하는 공동결의 S.J.Res.23을 가결. 상원은 98대 0으로 통과시켰고 하원도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했으며, 결의는 9월 18일 대통령 서명을 거쳐 법률로 성립해 이후 미국의 장기 대테러 군사작전의 핵심 법적 근거로 기능.

9·11 테러 이후 거래를 중단했던 미국 증권시장이 시스템 점검과 증권거래위원회의 긴급 규제 완화 조치를 거쳐 정상 거래를 재개. 뉴욕증권거래소와 나스닥을 비롯한 주요 시장이 다시 문을 열며 테러 직후 금융시장의 비상 운영 단계에서 정상 거래 체제로 전환된 사건.

소프트뱅크가 2001년 9월 종합 브로드밴드 서비스 ‘야후! BB’를 시작함. 저가 ADSL 접속과 IP전화 등을 결합해 일본 가정의 초고속 인터넷 보급 경쟁을 촉진한 서비스였음. 소프트뱅크가 인터넷 포털 투자자에서 통신 인프라 사업자로 확장하는 출발점이 됨.

소프트뱅크

2001년 10월 30일 월간조선사에서 칼럼집 《김대중 주필의 직필》을 출간. 언론의 비판 기능과 현실 비판을 강조한 글들을 묶은 저서로, 조선일보 주필·칼럼니스트로서 축적한 논평 활동을 단행본으로 정리한 출간물.

김대중 (언론인)

1997년 애플을 떠나 교육용 프로그래밍 도구 회사 Stagecast를 공동 창업한 뒤, 2001년 10월 아마존에 합류해 쇼핑 경험 담당 부사장으로 웹 인터페이스와 책 미리보기 기능을 개선. 이후 야후 등에서도 사용자 경험 분야 임원으로 일하며 평생 사용성을 다듬은 행보.

영화평론가 박평식이 제22회 청룡영화상 사무국으로부터 정영일 영화평론상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통보를 받은 뒤 수상을 거부함. 스포츠조선이 주최하고 조선일보가 후원하는 상을 받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힘. 이후 청룡영화상 측은 박평식이 확정 수상자가 아니라 후보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는 취지로 해명하면서 논란이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