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부가 제70주년 3·1절을 맞아 김규식에게 건국훈장 최고 등급인 대한민국장을 추서. 조소앙·안재홍 등과 함께 한국전쟁 당시 납북된 독립운동가들을 포상한 조치의 하나로, 파리강화회의 독립 외교와 대한민국임시정부 활동 등의 공적을 국가적으로 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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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이 1989년 2월 4일 서울대학교병원에서 별세함. 향년 87세. 사상가·교육자·종교인으로 활동하며 『씨알의 소리』를 창간하고 민주화운동과 평화운동에 참여함.
이별의 정서를 담은 〈Q〉를 타이틀로 1989년 발표한 정규 음반(발매 당시 음반 표기는 '조용필 제10집 Part.II'). 〈Q〉는 애절한 멜로디로 큰 사랑을 받으며 1980년대 말을 대표하는 발라드가 됨. 1980년대를 마무리하는 그의 대표 히트곡 중 하나.
1988년 성균관대학교 사학과에 한국사 담당 교수로 부임. 성균관대에서 학사부터 박사까지 마친 연구자의 부임으로, 학과의 연구 인력 재생산이 자리를 잡았음을 보여 준 사례. 이후 한국 근현대사·사회주의운동사 연구와 후학 양성을 이어 감.
인텔 CEO 앤디 그로브가 TSMC의 제조 공정을 검증하고 인증하며 주문을 냄. 무명의 신생 파운드리였던 TSMC가 세계 최고 반도체 기업으로부터 품질을 공인받은 사건. 이 인증을 발판으로 TSMC가 국제 시장에서 신뢰를 얻고 고객을 넓히는 전환점.
자라가 포르투갈 포르투에 스페인 밖 첫 매장을 열며 국제 확장을 시작함. 이 시점부터 자라는 지역 체인을 넘어 유럽과 세계 시장으로 진입하는 브랜드가 됨.
한·중 수교가 이뤄지기 전인 1988년, 한국 가수로는 처음으로 중국 본토 무대에 서서 공연함. 냉전기 문화 교류가 드물던 시기에 이뤄진 이례적 공연. 그의 영향력이 국경을 넘었음을 보여 준 사례.
1988년 미국 대선을 배경으로, 상대 후보의 공격 메시지를 미리 약하게 노출해 유권자의 태도를 면역시키는 정치 캠페인 접종을 현장 연구로 검증함. 위협과 선제적 반박이라는 두 기제가 실제 선거 설득에서도 작동함을 보였고, 1990년 다이렉트 메일 실험 등으로 확장함. 실험실에 머물던 접종 이론을 정치·광고 등 실제 설득 환경으로 끌어낸 분기점.
베냐민 네타냐후가 1988년 총선에서 리쿠드 비례대표 명단으로 제12대 크네세트 의원에 처음 당선됨. 주유엔 이스라엘 대사 재임을 마치고 국내 정치에 진입한 사건. 이후 모셰 아렌스 외무장관 아래 외무차관을 맡으며 외교·안보 분야의 정치 경력을 본격화함.
9월 둘째 주에 새너제이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애플 개발자 회의로, 같은 해 두 번째로 열린 개발자 회의. VMS와 DECnet에 대한 애플토크(AppleTalk) 네트워킹 지원을 발표함.
1988년 최태원이 미국 시카고대 유학 중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장녀 노소영과 결혼해 대통령의 사위가 됨. 재계와 정치 권력이 맺어진 혼사로 주목받았으며, 훗날 SK의 제2이동통신·통신 사업 특혜 의혹이 거론될 때 배경으로 언급되기도 함. 이 결혼은 2010년대 이후 세기의 이혼 소송으로 이어짐.
스위스의 축구 선수 에렌 데르디요크.
〈서울 서울 서울〉과 〈모나리자〉를 앞세워 1988년 발표한 정규 10집.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 도시적 세련미를 담은 사운드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함. 〈모나리자〉는 강렬한 록 사운드로 또 하나의 대표곡이 됨.
일본의 배우 쿠로키 메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