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가 0.13μm FSG 및 low-k 공정의 생산 성과를 발표함. 앞서 TSMC는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의 Black Diamond CVD low-k 절연막을 채택해 0.13μm 구리 배선 칩 생산에 적용했으며, 2003년 4월 기준 230개 이상의 제품 설계가 테이프아웃되고 8인치 환산 10만 장 이상의 0.13μm 웨이퍼가 출하됐다고 밝힘. TSMC는 자사의 0.13μm low-k 공정이 파운드리 업계 최초로 고객 제품 인증을 통과해 대량생산에 들어갔다고 설명하며, 자체 첨단 공정 개발·양산 역량을 입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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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MC가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미국주식예탁증서(ADR)를 상장함. 대만 기업으로는 최초의 NYSE 상장으로, 국제 자본을 직접 조달하는 길을 엶. 글로벌 기업으로서 위상을 공식화하며 이후 막대한 설비 투자를 뒷받침한 사건.
TSMC가 대만증권거래소(TWSE)에 주식을 상장함. 설립 7년 만에 자본시장에서 대규모 투자 재원을 확보해 공격적 설비 투자에 나설 발판을 마련함. 같은 시기 0.5마이크로미터 공정으로 진입하며 기술과 자본을 함께 키운 성장기의 출발.
인텔 CEO 앤디 그로브가 TSMC의 제조 공정을 검증하고 인증하며 주문을 냄. 무명의 신생 파운드리였던 TSMC가 세계 최고 반도체 기업으로부터 품질을 공인받은 사건. 이 인증을 발판으로 TSMC가 국제 시장에서 신뢰를 얻고 고객을 넓히는 전환점.
대법원 2부가 2026년 5월 12일 노상원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알선수재 혐의에 대해 징역 2년과 추징금 249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함. 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된 첫 사례. 다만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 핵심 혐의를 다투는 본 사건 재판은 별도로 진행됨.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재판장 이현복)가 2025년 12월 15일 노상원의 알선수재·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 징역 2년과 2490만원 추징을 선고함. 재판부는 '부정선거 수사'라는 위법한 목적의 제2수사단 구성을 위해 군인 개인정보가 유출됐다며 유죄로 판단하고, 계엄 준비 행위 자체를 '위헌적·위법적'이라고 명시함. 12·3 비상계엄을 둘러싼 법원의 첫 위헌·위법 판단으로 평가됨.
조은석 내란·외환 특별검사팀이 2025년 6월 30일 노상원을 알선수재 및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추가 기소함. 노상원이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의 '제2수사단'을 부정선거 수사 명목으로 꾸리려 정보사 요원들의 인적사항을 넘겨받고, 진급을 약속하며 군 간부들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 내란 본 사건과는 별도로 계엄 준비 과정의 위법성을 겨눈 기소.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2025년 1월 10일 노상원을 내란 중요임무 종사 및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구속기소함. 검찰은 노상원을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함께 비상계엄을 사전에 모의·준비한 핵심 인물로 판단함. 이로써 민간인 신분의 그가 내란 사건의 주요 피고인으로 정식 재판에 넘겨짐.
국가수사본부가 2024년 12월 15일 노상원을 문상호 당시 정보사령관 등과 함께 비상계엄을 사전 기획한 내란 혐의로 긴급체포함. 체포 당시 노상원의 안산 점집에서 계엄 모의 정황이 담긴 수첩이 압수되어 핵심 증거로 확보됨. 민간인 신분이던 그가 군을 동원한 계엄에 깊이 관여한 정황이 드러난 분기점.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2월 3일 밤 긴급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계엄군이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에 투입됨. 국회가 곧바로 본회의를 열어 12월 4일 새벽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하면서 약 6시간 만에 계엄이 해제됨.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 선포된 비상계엄으로, 노상원 등이 사전 기획한 내란의 실행 국면으로 규정됨.
노상원이 비상계엄을 앞두고 경기 안산 상록구의 한 롯데리아(안산상록수점)에서 문상호 정보사령관과 정보사 대령 등을 2024년 11월 17일·12월 1일·12월 3일 세 차례 만난 이른바 '햄버거 회동'을 가짐. 12월 1일 회동에서는 '중앙선관위 전산서버를 확인하면 부정선거 증거를 확보할 수 있다'며 요원 선발과 선관위 장악을 지시한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남. 민간인 신분의 노상원이 계엄을 사전 기획한 핵심 정황으로 지목됨.
정보사령관과 육군 정보학교장 등 요직을 거친 노상원이 2018년 국군의 날 행사 교육생인 여군을 성추행해 보직 해임되고 입건됨. 이 사건으로 그해 불명예 전역했으며, 이후 경기도 안산에서 무속인(점집)으로 생활함. 현역에서 물러난 민간인 신분이 훗날 12·3 비상계엄 개입의 배경으로 거론됨.
충남 서천 출신의 노상원이 1981년 육군사관학교(41기)에 수석으로 입교한 뒤, 1985년 3월 1일 육군 보병 소위로 임관함. 이후 소령 시절 보병에서 정보 병과로 옮겨 777사령관·정보사령관 등 군 정보 분야 요직을 걷는 출발점이 됨.
북한, 김대중 납치사건과 6·23 선언 등을 문제 삼아 남북대화 중단을 선언. 이로써 7·4 남북공동성명 이후 이어지던 대화 국면이 중단됨.
- 납치 직후 CIA 도쿄 지부와 서울 지부는 긴밀히 소통하며 중앙정보부의 개입을 확신. 특히 한국 공작선 '용금호'가 김대중을 태우고 오사카항을 출발해 한국으로 향하고 있다는 구체적인 첩보를 입수.
- 당시 필립 하비브 주한 미국 대사는 CIA의 보고를 받은 뒤, 박정희 정권에 "김대중이 죽는다면 한미 관계는 끝장"이라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냄. 미국은 김대중의 '생존 확인'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함.
- 납치범들이 바다에 김대중을 수장하려 할 때, 미국 정찰기가 용금호 상공을 비행하며 위협했다는 증언 있음.
3·1 운동 이후 고향 충남 천안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체포되어 수감 중이던 유관순이 서대문형무소에서 사망함. 모진 고문과 열악한 수감 환경 속에서도 독립 의지를 굽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며, 사망 당시 나이는 17세였음.
유관순의 순국은 3·1 운동의 희생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상징적 장면으로 기억됨. 이후 유관순은 학생 독립운동가이자 여성 독립운동가를 대표하는 인물로 자리 잡았으며, 삼일절과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을 설명할 때 함께 언급되는 핵심 인물이 됨.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중앙기념식이 열림.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독립유공자, 일본군 위안부·강제동원 피해자 등 각계 인사와 시민 약 1만 명이 참석함. 100년 전 만세의 함성을 기리며 3·1운동의 의미를 되새긴 대규모 국가 기념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