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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이 2010년 제34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의 역사마을'로 등재됨. 양반 가옥과 민가, 서원·정자가 자연과 어우러진 씨족 마을의 유교 생활 문화와 전통 경관을 인정받음.

한국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이 2007년 제31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국 최초의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됨. 한라산·거문오름 용암동굴계·성산일출봉의 화산 지형과 지질학적 가치를 인정받음. 한국 세계유산 중 처음으로 자연유산 범주에 든 사례.

한국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이 2000년 제24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세계유산으로 등재됨. 한곳에 수백 기가 밀집한 청동기 시대 거석 무덤으로, 선사 매장 문화와 사회상을 보여주는 가치를 인정받음. 경주역사유적지구와 함께 등재됨.

한국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해인사 장경판전이 1995년 제19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국 최초의 세계유산으로 등재됨. 목판을 온전히 보존하는 통풍·방습 건축 구조의 과학성을 인정받음. 종묘, 석굴암·불국사와 함께 한국 세계유산의 첫 장을 엶.

종묘가 1995년 제19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국 최초의 세계유산 중 하나로 등재됨. 조선 왕실의 신주를 모신 유교 사당으로, 건축물과 함께 종묘제례·제례악의 전통이 이어지는 점을 인정받음. 석굴암·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과 더불어 한국 세계유산의 출발을 알린 유산.

덴비가 1809년 창립 이래 200주년(바이센테너리)을 맞아 기념행사를 열고 200주년 기념 패키지를 선보임. 영국 왕실의 앤 공주(HRH The Princess Royal)가 기념 행사를 위해 덴비를 방문함. 두 세기 동안 같은 더비셔 부지에서 손으로 도자기를 빚어 온 흔치 않은 영국 제조 유산을 확인한 자리.

디자이너 리처드 이턴이 만든 식기 레인지 임피리얼 블루(Imperial Blue)를 출시함. 풍요로웠던 1980년대 분위기 속에서 화려한 무늬 대신 깊고 푸른 유약의 견고한 디자인을 내세워, 함께 나온 리젠시 그린(Regency Green)과 더불어 격식·캐주얼 식탁에 두루 어울리는 스테디셀러가 됨. 35년 넘게 사랑받은 덴비의 대표 레인지로, 2026년 공장에서 마지막으로 구워진 작품도 이 유약을 입힌 그릇이었음.

덴비 포터리 컴퍼니

세계적 텍스타일 디자이너 티보 라이히의 스튜디오 도자기 '티고 웨어(Tigo Ware)'를 1954년부터 덴비가 생산하기 시작함. 라이히가 1952년 직접 만든 이 레인지는 수요가 그의 작업장을 넘어서자 덴비로 생산이 옮겨졌고, 흰 점토 바탕을 긁어 드러내는 스그라피토 기법과 헝가리 민속 예술에서 영감받은 모던한 1950년대풍이 특징. 콩코드 좌석 원단·페스티벌 오브 브리튼·코번트리 대성당을 디자인한 라이히와의 협업으로 덴비가 모더니즘 디자인 지형에 이름을 올림.

덴비 포터리 컴퍼니

사라 엘리자베스 본이 회사를 이끌던 빅토리아 시대 후기, 덴비가 특유의 마졸리카(Majolica) 유약을 도입해 머니박스 등 화려한 장식 도기를 내놓음. 높은 온도에서 구워야 고유의 단단한 광택이 살아나는 비법 유약으로, 실용 스톤웨어를 넘어 색을 입힌 장식 도자기로 영역을 넓힌 빅토리아풍 전위적 시도. 100년 넘게 이어진 덴비 색 유약 전통의 뿌리 중 하나.

6월 4일 더비셔 공장에서 마지막 도자기 가마가 구워지며 1809년부터 이어온 217년 제조 역사가 막을 내림. 임피리얼 블루(Imperial Blue) 유약을 만든 디자이너 리처드 이턴이 마지막으로 나온 작품(그 유약을 입힌 그릇)을 직접 수령해 서명함. 보통 한 점에 스무 쌍 넘는 손이 거치던 '세계 최대 스튜디오 포터리'의 전통 생산이 끝난 순간으로, 한국·미국·중국 등 해외 법인은 법정관리 대상이 아니어 정상 운영됨.

덴비 포터리 컴퍼니

에너지·인건비 급등과 소비 위축으로 적자에 빠진 덴비가 3월 11일 법정관리인 선임 의향을 알린 뒤 3월 31일 법정관리에 들어감. 관리는 FRP 어드바이저리가 맡았고, 고객의 구매 운동 '#SaveDenby'와 10만5천 명 넘는 의회 청원에도 인수자를 찾지 못함. 4월 들어 제조·디자인 부문이 문을 닫고 120여 명이 일자리를 잃었으며, 할인 유통업체 홈바겐스 등이 막판 인수 의향을 보였으나 회생에는 이르지 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