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940–1949년의 기록 664건

구간을 선택해 더 좁은 기간으로 좁혀 보세요.

가장 많은 기록
1945 · 95건
관련 엔티티
337개
날짜가 확정된 기록
79%
구간을 선택해 기록 보기 1945 · 95건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연맹 제21차 총회가 기구 해산 결의를 채택. 국제연맹은 국제연합 헌장 발효 뒤에도 청산 절차를 위해 존속했으며, 최종 총회에서 자산과 문서, 일부 기능을 국제연합과 관련 전문기구에 이관하는 절차를 승인.

국제연맹 사무국은 청산 작업을 거쳐 활동을 종료하고 제네바의 만국궁을 국제연합에 이관. 국제노동기구를 비롯한 일부 연계 조직은 별도의 법적 지위를 바탕으로 활동을 지속.

좌익 노동단체인 ‘조선노동조합 전국평의회(약칭 전평)’에서 주관하는 노동절 기념행사가 서울운동장 야구장에서 개최. 약 20만 여명의 노동자 참석. 전국에서 ‘8시간 노동제를 즉시 실천하라. 생활이 보장되는 최저 임금제를 실시하라. 실업자에게 직업을 달라. 공장 폐쇄 및 해고 절대 반대’와 같은 구호를 외치며 시가행진. 그러나 당시 한국 정부와 미군정은 좌익 단체의 노동운동에 대해 대대적인 탄압을 가함.

재 동경 순국열사 해방의사 유골 봉환회가 일본 각지의 형무소 묘지를 찾아 수습해서 한국(부산)으로 봉환. 이후 부산, 대구, 대전, 천안, 서울 순으로 경로를 따라 이동하면서 각 지역에서 추모가 이루어짐. 열차가 지나갈 때마다 시민들이 만세와 추모를 했다고 함. 서울역에 도착한 날짜는 6월 16일.

한인애국단

국립박물관이 경주 호우총과 은령총을 조사하며 개관 후 첫 발굴조사 실시. 광복 직후 소장품 인수와 전시를 넘어 직접 유적을 조사하고 자료를 축적하는 학술 활동의 시작. 같은 해 8월에는 중요출토품전을 열어 발굴 성과를 관람객에게 소개. 현장 조사와 연구, 전시가 연결되는 박물관 활동의 초기 사례.

이승만이 전라북도 정읍에서 남북을 포괄하는 정부 구성이 어려워진 상황을 들어, 남한만이라도 임시정부 또는 위원회 등을 조직하자는 구상을 공개적으로 제시함.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중단된 뒤 나온 발언으로, 남한 단독정부 수립 노선이 드러난 중요한 계기였음.

이 발언은 이미 진행 중이던 미국과 소련의 분할 점령, 신탁통치를 둘러싼 대립, 남북의 정치체제 재편 속에서 나왔음. 이승만은 남한의 정치적 기반을 먼저 마련해 소련의 철수와 통일을 추진한다는 논리를 폈으나, 통일정부 수립을 우선한 세력과의 거리는 커졌음. 분단의 원인을 한 사람의 발언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후 단독선거와 정부 수립을 지지한 그의 선택을 보여 주는 사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