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권투 선수 잭 존슨. (1878년~)
잭 티보 출생
미국의 배우 잭 티보.
영국의 발명가 존 로지 베어드. (1888년~)
실베스터 스탤론 출생
미국 뉴욕에서 실베스터 스탤론 출생. 이후 《록키》의 각본가이자 주연 배우로 이름을 알리고, 록키 발보아와 존 람보를 중심으로 장기 시리즈를 이끈 배우·각본가·감독·제작자.
삼의사 국민장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의사의 영결식이자 봉환식으로 광복 이후 한국에서 거행된 첫 국민장. 영결식은 서울운동장(현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거행, 유해는 효창공원에 안장.
참고로 독립운동가 김승학 선생의 증손인 김병기가 당시 장례식의 장례 절차를 담고 있는 '삼의사 국민장 행사요령'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기탁(기증). (2015년 8월 10일) 함께 기증한 유물은 봉오동전투도, 순국의사명부초, 광복군 국내 제2지대장 위임장 등 50여 점.
미군정의 국립서울대학교안 발표로 경성대학과 여러 전문 교육기관을 하나의 종합대학으로 통합하는 계획의 공식화. 추진 측은 교육기관 재편과 종합대학의 교육적 이점을 강조했으나, 상당수 교수·학생은 관선 이사회가 인사와 운영의 실권을 장악하는 구조, 대학 자치의 약화, 학생 수용과 교수 확보 문제에 반대.
반대운동은 1947년 전국적인 동맹휴학으로 확대되고 서울대 수업도 파행을 겪은 갈등. 국대안 지지운동도 함께 전개된 가운데, 1947년 5월 한국인 중심으로 이사회를 재편하는 법 개정 이후 반대운동이 잦아들고 9월 학기부터 수업이 정상화된 경과.
새 국가의 고등교육 체계를 만드는 과제가 대학 구성원의 자치 요구 및 미군정의 교육정책과 충돌한 설립기의 핵심 사건.
김규식·여운형, 좌우합작위원회 발족 주도
김규식과 여운형, 1946년 5월부터 좌우 정치세력의 합작을 위한 회담을 진행한 끝에 7월 25일 좌우합작위원회를 발족. 김규식은 우측 주석, 여운형은 좌측 주석을 맡아 중도 우파와 중도 좌파를 각각 대표함. 좌우합작을 바탕으로 남북을 아우르는 통일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휴회 중이던 미소공동위원회를 재개하는 것을 목표로 활동함.
FIAF, 파리에서 전후 첫 총회 개최
전쟁으로 중단된 영화자료원 간 협력이 파리 총회를 통해 재개됨. 전후 새로운 아카이브들이 등장하는 가운데 국제 교류망을 다시 구축하는 출발점이 됨.
미군정 법령 제102호로 국립서울대학교의 설립 근거가 마련된 사건. 기존 대학·전문학교의 조직을 통합하고 재산·설비·기록·인력을 새 대학으로 이관하도록 정한 법적 재편. 식민지 시기의 제국대학 및 전문학교 관련 법령 가운데 새 대학과 충돌하는 규정도 폐지한 조치.
제3조는 인종·국적·종교·성별·신분·경제적 지위를 입학과 재학, 학위·장학금 등의 부여를 결정하는 조건으로 삼지 못하도록 규정한 원칙. 이는 실제 교육 기회의 평등을 곧바로 실현했다는 뜻이 아니라, 새 국립대학이 내세운 비차별적 고등교육의 제도적 기준.
법령의 공포·시행일인 8월 22일과 대학이 기념하는 통합 개교일인 10월 15일을 구분하게 하는 설립사의 기준점.
제1회 로카르노 영화제 개막
스위스 이탈리아어권 도시 로카르노의 그랜드 호텔 정원에서 첫 영화제가 개막했으며, 상영은 9월 2일까지 이어졌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영화를 통해 국제적인 문화 교류를 다시 시작하려는 흐름 속에서 출발했음.
처음부터 오늘날의 피아자 그란데에서 열린 것은 아니었음. 호텔 정원의 야외 상영에서 출발한 행사가 이후 도시의 광장과 여러 극장을 아우르는 영화제로 성장했음.
전쟁으로 기존 사업 기반을 잃은 혼다 소이치로가 하마마쓰에 혼다기술연구소를 세우고 군용 무전기 발전용 소형 엔진을 자전거 보조동력으로 전용한 출발점. 물자와 교통수단이 부족하던 전후 일본에서 짐을 나르고 먼 거리를 이동하는 부담을 줄이려는 사업. 남은 엔진의 단순 판매를 넘어 분해·개량·시험을 거쳤으며, 1947년 자체 개발 A형 엔진으로 이어진 독자 제조의 기반.
바르샤바 노볼립키 거리 68번지 폐허에서 금속 상자 10개에 보관한 링겔블룸 아카이브의 첫 부분이 발굴됨. 오네그 샤바트 생존자 헤르시 바세르 등의 기억과 전후 수색으로 나치 점령기에 묻어 둔 문서를 다시 찾음.
일기·편지·행정 문서와 생활 기록은 유대인 공동체의 박해와 생존 경험을 전하는 자료였음. 땅속의 습기 등으로 손상된 종이를 복원하고 내용을 분류하는 작업이 뒤따랐으며, 이후 유대역사연구소의 핵심 소장 자료가 됨.
제1회 칸 영화제 개막
제2차 세계대전으로 1939년 개최가 무산됐던 국제영화제가 전후 프랑스 칸에서 처음 정식 개막함. 19개국이 참여한 행사로 출발해 세계 영화인들이 다시 만나 작품을 교류하는 자리가 됨. 전쟁 전의 창설 구상과 실제 첫 개최를 구분할 때 기준이 되는 날짜임.
오우삼 출생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 주요 전범 판결 선고
1946년 9월 30일과 10월 1일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소가 주요 나치 지도자들에 대한 판결을 선고함. 피고인 22명 가운데 19명이 유죄, 3명이 무죄 판결을 받았고 12명에게 사형이 선고됨. 재판부는 게슈타포·보안국(SD)·친위대(SS)·나치당 지도부를 일정 범위에서 범죄조직으로 판단해 개인과 조직의 전쟁범죄·반인도범죄 책임을 국제법적으로 다룬 선례를 남김.
대구에서 노동자·학생·시민과 경찰의 충돌이 벌어진 뒤 미군정 경무부장 조병옥이 경찰 당국이 파악한 사건 경위와 응원경찰 파견 등 대응 상황을 발표함.
수잔 서랜든 출생
미국 뉴욕시 퀸스 출생. 출생명은 수잔 애비게일 토멀린(Susan Abigail Tomalin).
한글날, 법정 공휴일 지정
국립서울대학교가 9개 단과대학과 대학원을 갖춘 종합대학으로 개교한 사건. 8월 22일 설립 법령에 따라 경성대학과 여러 전문 교육기관을 통합하고, 문리과·공과·농림·법과·사범·상과·의과·예술·치과 계열을 하나의 대학 체계로 편성한 결과.
경성대학은 경성제국대학을 해방 후 개칭한 기관으로 서울대에 통합된 여러 전신 가운데 하나. 기존 기관들의 건물·자료·설비·인력은 통합 대학으로 이관되었으나, 제국대학 관련 제도를 폐지하고 새 국립종합대학을 설립한 법적 재편도 함께 이루어진 과정. 따라서 시설과 학문적 기반의 연속성, 1946년 통합 대학의 설립, 식민지 교육제도의 평가를 구분할 필요가 있는 역사.
출범 당시에는 단과대학들이 동숭동·연건동·공릉동·수원 등 여러 지역에 분산된 상태. 1975년 관악캠퍼스 종합화는 이러한 공간적 분산을 줄이는 후속 전환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서 사형이 선고된 나치 독일 주요 지도자 10명에 대해 1946년 10월 16일 교수형이 집행됨. 전체 사형선고 대상은 12명이었으나, 헤르만 괴링은 전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마르틴 보어만은 궐석재판 대상이어서 처형되지 않음.
나치 독일의 침략전쟁·전쟁범죄·반인도범죄에 대한 국제적 형사책임 추궁이 실제 형 집행으로 이어진 사건. 이후 국제형사법과 전쟁범죄 재판의 역사에 중요한 선례로 기록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