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붕, 서울시장 역임
제3대 서울특별자유시장 (1949-06-06 ~ 1949-08-14), 제4대 서울특별시장 (1949-08-15 ~ 1951-05-08)
제3대 서울특별자유시장 (1949-06-06 ~ 1949-08-14), 제4대 서울특별시장 (1949-08-15 ~ 1951-05-08)
무장대 제2대 사령관이었던 이덕구가 경찰 토벌대와의 교전 끝에 사살. 김달삼 월북 이후 무장대를 지휘하던 이덕구 사살로 실질적인 무장항쟁 세력은 와해.
한 언론이 "제주도 반도사령관 이덕구는 지난 7일 경찰부대에 사살됐다. 즉 제주경찰서 화북지서 김영주 경사가 지휘하는 경찰부대는 지난 7일 오후 4시께 속칭 작은 가오리 부근 정글 속에서 반도사령관 이덕구 부대와 교전 끝에 이덕구를 사살하는 한편 그의 보신부하 1명을 포로로 잡았는데 이덕구 시체는 방금 제주경찰서에서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고 보도.
잉글랜드의 음악가 존 웨튼. (~2017년)
잉글랜드의 음악가 앨런 화이트. (~2022년)
1949년 7월 조직을 주식회사 슈에이샤로 개편함. 8월 ‘밝고 즐거운 소년소녀 잡지’를 표어로 내건 《오모시로 북》을 창간함. 이 잡지는 법인 개편 뒤 처음 발행한 정기 간행물이 됨.
대한민국 정부가 1949년 10월 1일 법률 제53호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제정·공포해 3·1절을 4대 국경일의 하나로 공식 지정함. 이로써 3·1절은 제헌절·광복절·개천절과 함께 국가가 기리는 국경일이자 공휴일이 됨. 광복 이후 대한민국이 3·1운동의 정신을 국가 차원에서 계승·기념하는 법적 토대가 마련됨.
폭스바겐베르크의 신탁권을 서독 연방정부에 넘기고 니더작센주가 관리를 맡은 사건.
관리권 이양 당시 회사는 약 1만 명의 노동자와 월 4천 대의 생산능력, 약 3천만 마르크의 현금 보유고를 갖춘 상태. 영국 군정기 형성된 생산·수출 기반을 토대로 서독의 주요 자동차 기업으로 성장할 조건 확보.
정부가 1949년 1월 국기시정위원회를 꾸려 제각각이던 태극기 규격을 통일하는 작업에 착수, 여러 안을 검토한 끝에 '우리국기보양회' 안을 채택함. 1949년 10월 15일 문교부 고시 제2호로 태극과 4괘의 위치·비율 등 현행과 같은 작도법을 확정함. 오늘날 태극기 표준 도안의 직접적인 토대.
역사학자이자 수정주의 시온주의 계열 지식인이었던 벤시온 네타냐후의 아들로 텔아비브에서 태어남. 어린 시절 예루살렘에서 성장했고, 부친의 연구·교직 활동을 따라 1950~1960년대 일부를 미국에서 보냄.
소련의 첫 원자폭탄 실험 이후 수소폭탄 개발 문제가 제기되자 오펜하이머가 의장을 맡은 미국 원자력위원회 일반자문위원회가 검토 보고서를 제출함. 위원회 다수는 기존 원자폭탄보다 훨씬 큰 파괴력을 가진 ‘Super’의 즉각적인 총력 개발에 반대하며 군사적 이득보다 인류에 대한 위험이 더 크다고 판단함.
광복 뒤 정기총회 결의로 학회 이름을 '한글학회'로 바꿈. 1908년 국어연구학회에서 출발해 배달말글몯음·한글모·조선어연구회·조선어학회로 이어진 이름이 오늘의 한글학회로 정착됨. 이후 한글 전용 운동과 우리말 사전 편찬 등 우리 말글 진흥 사업을 이어감.
제주 4·3 사건 와중인 1949년 군법회의에서 사형이 결정된 민간인과 1950년 예비검속 대상자 등이 정뜨르비행장(현 제주국제공항) 일대에서 군에 의해 총살·암매장됨. 수백 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는 제주 최대 규모의 학살터. 공항 부지가 현대사의 비극을 품게 된 사건.
중국 대륙의 정권 교체기인 1949년 말 엽문이 불산을 떠나 홍콩으로 이동함. 이주 뒤 음식점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공개 교습을 시작하면서 엽문 계열 영춘권의 활동 무대가 광둥 내륙에서 홍콩의 도시 사회로 옮겨짐. 문중 중심 전승이 도시형 교습망으로 확장되는 계기.
페레스 프라도가 RCA 빅터에서 「Qué rico el mambo」와 「Mambo No. 5」를 녹음함. 그는 1940년대 후반 멕시코로 옮겨 자신의 오케스트라를 결성한 뒤 RCA 빅터에서 녹음을 시작함. 이 녹음은 멕시코 음반 산업을 통해 맘보를 상업 음반으로 유통하는 기반이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