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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1969년의 기록 1,15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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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법 제1차 개정으로 금융통화위원회가 금융통화운영위원회로 바뀌고 정부의 정책 관여가 강화됨. 정부 주도 경제개발계획을 금융 측면에서 뒷받침하기 위한 제도 개편으로, 위원 9명 중 정부 추천 위원을 5명으로 확대하고 재무부 장관에게 정책결정의 재의를 요구할 권한을 부여함.

재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각의가 최종 결정하도록 하여 통화정책 결정의 정부 의존성이 커짐. 외환정책·관리 기능의 정부 이전과 재무부의 업무검사권 신설도 함께 이루어져 중앙은행의 업무 범위와 내부 경영 자율성에 변화가 생김.

군사정부의 제3차 긴급통화조치에 따라 한국은행이 원 표시 은행권 6종을 발행하고 10환을 1원으로 교환함. 정부는 보관된 현금과 예금을 산업자금으로 끌어내 경제개발계획 재원을 확보하려 했으며, 일부 예금 동결을 포함한 후속 금융조치도 실시함.

기대한 산업자금 동원 효과는 충분히 거두지 못했지만 이때 도입한 원 단위는 이후 화폐제도의 기준으로 정착함. 1953년의 원→환 전환과 반대 방향의 단위 변경이며, 단순한 지폐 도안 교체를 넘어 현금과 예금의 사용에 영향을 준 조치.

《더 뉴요커》가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을 6월 16일·23일·30일호에 세 차례 연재. 합성 살충제가 토양·물·먹이사슬을 거쳐 방제 대상이 아닌 생물과 사람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설명하고, 단행본 출간에 앞서 농약 사용에 대한 사회적 논쟁을 촉발한 연재.

침묵의 봄

구속·군사재판 중이던 김지태가 부일장학회 토지와 자신이 소유한 언론사 주식 등의 기부서류에 날인하고 이틀 뒤 석방됨.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7년 조사에서 이러한 헌납 강요를 재산권과 의사결정권 침해로 판단.

조사보고서는 헌납재산이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지시에 따라 5·16장학회의 기본재산으로 출연됐으며 측근·친인척이 운영을 주도했다고 밝힘. 공권력에 의한 재산 이전과 언론의 공공성 침해가 문제 된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