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과이어, 접종 이론 정립
한국전쟁 후 미군 포로 '세뇌' 논란을 배경으로, 설득을 강화하는 연구가 주류이던 시기에 거꾸로 설득에 저항하는 방법을 탐구해 접종 이론을 창시함. 백신이 약한 병원체로 면역을 만들 듯, 약한 반론에 미리 노출되면 위협 자각과 선제적 반박이 일어나 더 강한 설득 공격을 막아 낸다는 가설을 1961년 실험으로 입증함. 1964년 종합 이론으로 체계화되어, 반세기 뒤 현대 프리번킹의 심리학적 토대가 됨.
한국전쟁 후 미군 포로 '세뇌' 논란을 배경으로, 설득을 강화하는 연구가 주류이던 시기에 거꾸로 설득에 저항하는 방법을 탐구해 접종 이론을 창시함. 백신이 약한 병원체로 면역을 만들 듯, 약한 반론에 미리 노출되면 위협 자각과 선제적 반박이 일어나 더 강한 설득 공격을 막아 낸다는 가설을 1961년 실험으로 입증함. 1964년 종합 이론으로 체계화되어, 반세기 뒤 현대 프리번킹의 심리학적 토대가 됨.
다니엘 카너먼이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함. 그는 1954년 히브리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수학을 부전공한 뒤, 이스라엘 방위군 심리부에서 장교 후보 평가 업무를 맡았으며, 1958년 장학금을 받아 미국으로 건너감.
카너먼의 박사논문은 의미분화법에서 형용사들 사이의 관계를 통계적·실험적으로 분석한 연구였음. 학위 취득 뒤 같은 해 히브리 대학교 심리학 강사로 부임하며 학계 경력을 시작함.
이 시기의 훈련은 이후 카너먼이 판단·의사결정 연구에서 심리학적 실험과 통계적 분석을 결합하는 연구자로 성장하는 기반이 됨.
우수국산영화상의 주관 부처가 문교부에서 공보부로 이관되면서 명칭을 대종상으로 변경함. 정부가 영화 제작의 질적 향상과 산업 진흥을 위해 시상 제도를 정비한 과정.
제임스 아이보리와 제작자 이스마일 머천트가 Merchant Ivory Productions를 설립한 해. 이후 루스 프라워 자브발라의 소설 각색과 각본 작업이 더해지며 장기적인 국제 영화 제작 협업으로 발전한 출발점.
1961년 미국으로 유학해 영어와 발레를 공부하고 1962년 귀국해 영화 활동 재개. 연합뉴스의 경력 정리와 본인의 문화일보 인터뷰에서 확인되는 유학·복귀 과정.
쿠바에서 태어난 앤디 가르시아가 다섯 살 무렵 가족과 함께 미국 마이애미 지역으로 이주. 이후 미국에서 성장하며 연기와 음악 활동을 이어 간 삶의 전환점.
폴린 베인스의 표지를 사용한 퍼핀 문고판의 출간. 양장본 중심의 유통에서 저렴하고 휴대하기 쉬운 문고판 독서로 넓어진 판형상의 전환.
할로이드제록스가 회사 이름을 제록스 코퍼레이션으로 변경함. 914의 성공으로 복사기 사업이 회사의 정체성을 대표하게 된 변화. 같은 해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하며, 사진 인화지 제조업체에서 제로그래피 중심 기업으로 전환한 모습을 드러냄.
유니세프가 아동의 건강과 영양뿐 아니라 교육을 주요 지원 분야로 확대함. 어린이를 살리는 일에 더해 배우고 성장할 기회를 마련하는 일도 기관의 핵심 과제로 다루기 시작함.
광개토왕릉비를 포함한 집안 평야의 고분군이 중국의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됨. 비석을 주변 왕릉과 함께 보호하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었으며, 이후 보존처리와 보호시설 관리가 이어졌음.
후쿠모토 가즈야 원작의 야구만화 《맹세의 마구》가 《주간 소년 매거진》에서 연재를 시작함. 치바에게는 주간 소년잡지 진출작으로, 소녀만화와 병행하던 활동이 스포츠만화로 넓어지는 전환점이 됨.
웨슬리언대학교 출판부가 제이컵 E. 쿠크가 편집한 《연방주의자 논집》을 출판함. 초창기 신문과 단행본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출판사적 검토를 제공한 학술 판본임.
같은 논설도 판본에 따라 번호·문구·저자 표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독자가 살피는 데 도움을 주었음.
필리스 A. 휘트니의 《The Mystery of the Haunted Pool》이 첫 수상작으로 기록됨. 어린 독자를 위한 미스터리를 성인 장편과 따로 평가하는 통로가 생김. 이후 청소년 부문이 별도로 등장하므로 두 부문을 하나로 취급하지 않는 것이 정확함.
FIAF가 첫 전문위원회인 보존위원회를 설치함. 개별 기관의 경험을 기술 지침으로 공유하는 체계를 마련했으며, 이후 저작권·문헌·목록 분야로 전문 협력이 넓어짐.
1950년대 시험을 거친 유로비전 뉴스 교환이 상설 운영으로 이어짐. 필름을 비행기나 열차로 보내야 했던 방식에서 벗어나 방송망을 이용해 다른 나라의 뉴스 영상을 신속하게 공유하는 기반이 강화되었음.
성당의 역사와 가우디의 설계·구조 연구를 보여주는 박물관이 개관함. 계속되는 공사와 건축 구상을 관람객에게 설명하는 공간.
영화진흥위원회가 기록한 《연산군》의 개봉일은 1962년 1월 1일. 한국영상자료원의 현장사진 컬렉션에는 1961년 12월 31일로 소개. 폐비 윤씨의 아들인 왕이 어머니의 죽음을 알게 된 뒤 복수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신영균의 연기와 궁중 의상·세트로 표현.
왕의 감정과 권력의 충돌을 컬러 시네마스코프로 펼친 사극. 신필름은 제1회 대종상 최우수작품상을 받았으며, 신영균도 남우주연상을 수상.
국립창극단·국립무용단·국립오페라단이 창단되어 연극 중심이던 국립극장에 여러 공연예술 분야의 상설 제작 기반이 마련됨. 초기 국립무용단은 한국무용과 발레를 함께 포괄했으며, 1962년 3월 임성남 안무의 《백의 환상》과 송범 안무의 《영은 살아 있다》 등으로 창단 공연을 선보임. 서로 다른 춤 계열이 한 조직에서 활동하다가 1973년 발레 부문이 분리되면서 한국춤 중심의 제작 체제로 이어짐. 전속단체의 창설은 예술가의 개별 활동을 지속적인 공연 제작과 레퍼토리 축적의 구조로 연결한 계기.
박정희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으로 있던 군사정부가 1962~1966년을 대상으로 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함. 전력·석탄 등 에너지 공급 확대, 농업생산력 증대, 기간산업과 사회간접자본 확충, 수출 증대 등을 통한 자립경제의 기반 조성이 주요 목표.
이전 정부의 개발계획과 경제관료들의 기획을 이어받아 정부 주도의 자원 배분을 본격화한 전환점. 초기 계획은 투자재원 부족 등의 문제로 수정되어 1964년 2월 보완계획으로 이어짐.
임권택의 장편 연출 데뷔작인 항일 액션영화. 학생독립단 청년들이 일본군의 추격을 피해 만주로 향하는 여정과 두만강을 건너기 위한 전투를 중심으로, 독립운동·동료애·사랑을 결합한 작품. 국경의 설원과 총격전을 활용한 초기 만주 웨스턴 계열의 연출. 김석훈이 영우로 출연하고 황정순이 영우의 어머니 준례 역을 맡았으며, 문정숙·엄앵란·황해·박노식 등이 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