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사상 첫 1,000선 돌파
한국 증시 대표지수 코스피가 종가 기준 처음으로 1,000선을 넘어섬(장중 첫 돌파는 3월 20일). 1980년 기준지수 100으로 출발한 지 약 9년 만의 네 자릿수 진입. 1980년대 후반 '3저 호황'과 증시 활황을 상징하는 첫 이정표.
한국 증시 대표지수 코스피가 종가 기준 처음으로 1,000선을 넘어섬(장중 첫 돌파는 3월 20일). 1980년 기준지수 100으로 출발한 지 약 9년 만의 네 자릿수 진입. 1980년대 후반 '3저 호황'과 증시 활황을 상징하는 첫 이정표.
대한민국 정부가 제70주년 3·1절을 맞아 김규식에게 건국훈장 최고 등급인 대한민국장을 추서. 조소앙·안재홍 등과 함께 한국전쟁 당시 납북된 독립운동가들을 포상한 조치의 하나로, 파리강화회의 독립 외교와 대한민국임시정부 활동 등의 공적을 국가적으로 기림.
미국이 최초의 GPS Block II 위성 Navstar II-1을 델타 II 로켓으로 발사함.
Block I이 기술 검증용 실험위성이었던 것과 달리 Block II는 실제 운용을 목적으로 제작된 GPS 위성 세대로, 이후 24기 규모의 실용 GPS 위성군을 구축하는 출발점이 됨.
함석헌이 1989년 2월 4일 서울대학교병원에서 별세함. 향년 87세. 사상가·교육자·종교인으로 활동하며 『씨알의 소리』를 창간하고 민주화운동과 평화운동에 참여함.
이별의 정서를 담은 〈Q〉를 타이틀로 1989년 발표한 정규 음반(발매 당시 음반 표기는 '조용필 제10집 Part.II'). 〈Q〉는 애절한 멜로디로 큰 사랑을 받으며 1980년대 말을 대표하는 발라드가 됨. 1980년대를 마무리하는 그의 대표 히트곡 중 하나.
빅뱅과 블랙홀, 시간의 본질을 일반 독자를 위해 풀어쓴 대중 과학서 《시간의 역사》를 출간. 수식을 거의 쓰지 않고 우주론을 설명해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영국 선데이 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기록적으로 오래 머무름. 우주론을 대중에게 널리 알린 저작.
CNRI 재직 중 빈트 서프가 상용 전자우편 서비스 MCI Mail과 인터넷의 연결을 추진함. 1988년 상용 전자우편과 인터넷 사이의 연동을 위한 허가와 실험을 추진했고, 1989년 MCI Mail이 인터넷과 연결되며 상용 네트워크와 연구용 인터넷 사이의 경계를 넓히는 초기 사례가 됨.
1988년 성균관대학교 사학과에 한국사 담당 교수로 부임. 성균관대에서 학사부터 박사까지 마친 연구자의 부임으로, 학과의 연구 인력 재생산이 자리를 잡았음을 보여 준 사례. 이후 한국 근현대사·사회주의운동사 연구와 후학 양성을 이어 감.
PARC 컴퓨터과학연구소를 이끌던 마크 와이저가 컴퓨팅의 '세 번째 물결'로서 유비쿼터스 컴퓨팅 개념을 제시. 기술이 일상의 배경으로 스며드는 '차분한 기술'을 핵심으로 삼아, 메인프레임·개인용 컴퓨터 이후의 컴퓨팅을 전망. 이후 모바일·임베디드·사물인터넷 흐름의 사상적 기반이 됨.
인텔 CEO 앤디 그로브가 TSMC의 제조 공정을 검증하고 인증하며 주문을 냄. 무명의 신생 파운드리였던 TSMC가 세계 최고 반도체 기업으로부터 품질을 공인받은 사건. 이 인증을 발판으로 TSMC가 국제 시장에서 신뢰를 얻고 고객을 넓히는 전환점.
자라가 포르투갈 포르투에 스페인 밖 첫 매장을 열며 국제 확장을 시작함. 이 시점부터 자라는 지역 체인을 넘어 유럽과 세계 시장으로 진입하는 브랜드가 됨.
한·중 수교가 이뤄지기 전인 1988년, 한국 가수로는 처음으로 중국 본토 무대에 서서 공연함. 냉전기 문화 교류가 드물던 시기에 이뤄진 이례적 공연. 그의 영향력이 국경을 넘었음을 보여 준 사례.
1988년 미국 대선을 배경으로, 상대 후보의 공격 메시지를 미리 약하게 노출해 유권자의 태도를 면역시키는 정치 캠페인 접종을 현장 연구로 검증함. 위협과 선제적 반박이라는 두 기제가 실제 선거 설득에서도 작동함을 보였고, 1990년 다이렉트 메일 실험 등으로 확장함. 실험실에 머물던 접종 이론을 정치·광고 등 실제 설득 환경으로 끌어낸 분기점.
보니 타일러가 냉전 말기 소련에서 약 6주간 순회공연을 진행함. 당시 소련에서 공연한 초기 서방 대중음악 가수 가운데 한 명으로 기록. 타일러는 훗날 자신을 소련에서 공연한 최초의 서방 여성 가수라고 회고함. 서유럽과 북미를 넘어 동유럽권에서도 높은 인지도를 확보했음을 보여준 활동.
샘 닐이 프레드 셰피시 감독의 《어둠 속의 외침》(A Cry in the Dark)에서 메릴 스트립과 함께 실제 사건의 당사자인 마이클 체임벌린을 연기. 호주에서 최초 개봉.
호주에서 발생한 아자리아 체임벌린 실종 사건과 부모를 둘러싼 재판 및 언론의 여론몰이를 다룬 작품으로, 샘 닐이 대형 상업영화와 진지한 드라마를 오가는 배우임을 보여준 작품임.
베냐민 네타냐후가 1988년 총선에서 리쿠드 비례대표 명단으로 제12대 크네세트 의원에 처음 당선됨. 주유엔 이스라엘 대사 재임을 마치고 국내 정치에 진입한 사건. 이후 모셰 아렌스 외무장관 아래 외무차관을 맡으며 외교·안보 분야의 정치 경력을 본격화함.
9월 둘째 주에 새너제이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애플 개발자 회의로, 같은 해 두 번째로 열린 개발자 회의. VMS와 DECnet에 대한 애플토크(AppleTalk) 네트워킹 지원을 발표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