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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의 기록 242건

17년 전.한 해의 기록을 월별로 살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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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의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운동을 내부에서 기록한 다큐멘터리 《바이 더 피플》(원제 《By the People: The Election of Barack Obama》)의 HBO 첫 방송. 오바마가 대선 출마를 선언하기 약 1년 전부터 촬영을 시작해 경선의 승패와 선거운동 조직의 활동을 따라간 에이미 라이스와 얼리샤 샘스의 공동 연출.

에드워드 노튼은 스튜어트 블럼버그·윌리엄 밀리오어와 함께 제작에 참여. 극영화 연기·연출과 병행한 정치·사회 다큐멘터리 제작.

에드워드 노튼 제작

NASA가 LCROSS 자료의 예비 분석을 통해 카베우스 충돌구에서 물을 검출했다고 발표함. 근적외선 스펙트럼의 물 신호와 자외선 영역에서 관측한 수산기 신호가 서로 보완하는 근거로 제시됨.

이는 10월 9일 충돌 당일과 구분되는 결과 발표임. 물의 존재를 확인한 것과 그 농도·분포·기원을 완전히 규명한 것은 다른 단계였으며, 연구진은 추가 분석이 필요하다고 설명함.

LCROSS

마리나 주라힌스카야와 한나 월러크가 2006년 참가자 여섯 명의 경험을 다시 조사함. 참가자들은 기술 분야의 일을 이어가고 멘토링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여러 작업이 GNOME 본류에 반영되지 않았으며 학업과 생업 때문에 지속 기여가 어려웠음. 후속 프로그램은 준비 기간과 멘토 연결을 늘리고, 작은 기여부터 팀 작업에 참여하도록 하며, 디자인·문서·마케팅까지 활동 범위를 넓히는 방향을 마련함.

아웃리치

장편 『백야행』을 박신우 감독이 한국의 인물과 배경으로 각색한 영화 개봉. 손예진·한석규·고수가 주연을 맡아 한 살인 사건에서 시작된 인물들의 관계와 그 진상을 14년에 걸쳐 추적하는 이야기로 재구성.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소설이 일본 밖에서 현지 언어와 배경의 영화로 제작된 주요 사례.

히가시노 게이고 원작

2008년 사고 뒤 1년 넘게 수리와 안전 보강을 진행한 LHC에서 다시 양성자 빔이 순환함. 자석 연결부와 보호 체계 등을 점검한 뒤 조심스럽게 가동을 재개한 결과였음.

이날의 성과는 빔을 링 안에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는 뜻이며, 양성자끼리 충돌시키는 첫 시험은 사흘 뒤 이루어짐. 빔 순환, 첫 충돌, 높은 에너지에서의 안정적 자료 수집은 서로 다른 운전 단계임.

DSi의 기능을 유지하면서 두 화면을 각각 4.2인치로 키운 DSi LL 출시. 글자를 크게 보고 옆 사람과 화면을 함께 볼 수 있도록 시야각을 넓힌 모델로, 작게 만드는 것뿐 아니라 보기 편한 크기를 선택지로 제공한 제품군 확장.

심리전단이 외부단체를 동원해 국회 점거 사건 공소기각 판결을 내린 판사와 전교조 관련 입장을 보인 경기도교육감을 규탄하는 1인 릴레이시위를 열고 300만 원을 집행함.

LHC에서 서로 반대 방향으로 도는 양성자 빔이 처음 충돌하면서 ALICE도 충돌 흔적을 관측함. 재가동 사흘 뒤 이루어진 저에너지 충돌로, 가속기와 검출기가 함께 작동하는지 확인하는 중요한 시험이었음.

ALICE는 중이온 실험에 앞서 검출기와 분석 체계를 점검하고, 이후 원자핵 충돌과 비교할 양성자 충돌 자료를 확보하기 시작함. 높은 에너지에서 안정적인 물리 자료를 수집한 2010년 3월의 운전과는 구분됨.

한국과 UNDP가 서울정책센터 설립 협정에 서명함. 2010년 1월 1일 발효된 협정은 신흥 공여국의 경험 비교, 정책대화와 개발도상국의 역량 개발을 센터의 기능으로 정함. 한국사무소의 원조 업무 종료와 맞물려, 한국의 개발 경험을 국제협력 자원으로 활용하는 전환의 제도적 기반이 되었음.

유엔개발계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2009년 11월 27일 발표한 최종 조사 결과와 보고서에 이명세의 친일반민족행위 결정 내용이 수록됨. 조선유도연합회 활동과 침략전쟁·징병제 협력 활동 등이 조사·판단 대상에 포함됨.

이명세 (1893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제3기인 1937년 중일전쟁 발발부터 1945년 광복까지의 친일반민족행위자 704명을 추가 공개하고, 총 25권의 『친일반민족진상규명 보고서』를 발간. 제1·2기 명단 301명과 합쳐 보고서에는 1,005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 이유가 수록됨. 방응모와 김성수 등은 포함됐으나, 박정희·장지연·안익태 등은 제외돼 선정 기준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짐.

홍난파는 위원회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했지만, 행정소송에 따른 법원의 효력정지 결정으로 당시 보고서에서는 빠졌음. 이후 2010년 후손이 소송을 취하하면서 홍난파의 명단 재등재가 가능해졌고, 후대의 위원회 집계에서는 제3기 705명, 전체 1,006명으로 정리됨.

김성수 (1891년) 제3기 결정 대상 성대경 위원장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2005년 5월 출범 뒤 약 4년 6개월간의 활동을 마치고 종료됨. 위원회는 친일반민족행위자 1,006명에 대한 조사·심의 결과를 총 25권의 『친일반민족진상규명 보고서』로 정리해 대통령에게 보고함. 이후 위원회 결정에 관한 행정소송 수행과 사후관리, 관련 민원 업무는 행정안전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으로 이관됨. 국가기관이 친일 행적을 조사·심의·결정하고 기록으로 남긴 과거사 진상규명 작업의 한 축으로 남음.

성대경 당시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