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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1969년의 기록 55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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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가 1967년 제7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뒤 국회의원 겸직 문제에 따라 『사상계』의 발행권을 부완혁에게 넘김. 부완혁은 같은 해 12월부터 발행인 겸 사장을 맡아 잡지를 운영함.

이는 창간 이래 장준하가 직접 이끌어 온 『사상계』의 경영·발행 체제가 바뀐 전환점. 다만 『사상계』의 비판적 논조와 정치적 성격은 이후에도 이어졌으며, 1970년 김지하의 「오적」 게재와 필화 사건, 강제 폐간으로 이어지는 배경 가운데 하나가 됨.

사상계

1965년 별세한 부친 고노 이치로의 지역 기반을 물려받아 중의원 의원 선거에 출마해 처음 당선됨. 와세다대학교 졸업 후 종합상사 마루베니의 전신 회사에 근무하다 정계에 입문한 경로. 이후 42년여에 걸쳐 14차례 연속 당선되며 장수 의원의 길을 시작한 사건.

고노 요헤이

1968년 3월 16~17일 런던 금 풀 참가 중앙은행이 금 거래를 공식 시장과 민간 시장으로 분리함. 공식 거래 가격은 금 1온스당 35달러로 유지하고 민간 거래 가격은 수요와 공급으로 정하도록 함. 중앙은행의 민간시장 금 매각을 제한하면서 공식가격 방어와 민간가격 변동이 병존하게 됨.

향토예비군은 1968년 2월 27일 대통령령 제3386호로 「향토예비군설치법시행령」을, 1968년 4월 1일 국방부령 제123호로 「동법시행규칙」을 제정 공포. 1.21 청와대 기습 사건 등 북한의 도발이 최고조에 달했던 당시, 자주국방 및 지역 방위 체제 확립을 목적으로 160만~250만 명 규모로 조직, 대전 공설운동장에서 창설. '일하면서 싸우자'는 모토 아래 창설 직후부터 무장공비 소탕 작전 등에 참여.

미국 워싱턴 D.C. 업타운 극장에서 160분 판본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세계 최초 공개. 4월 3일 뉴욕 로스 캐피톨 극장, 4월 4일 로스앤젤레스 워너 할리우드 극장에서 로드쇼 상영 개막. 70mm 필름과 6트랙 입체음향을 사용한 시네라마 방식의 대형 상영으로 우주 비행과 우주 공간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영상 제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스탠리 큐브릭이 편집기사 레이 러브조이와 함께 개봉판에서 약 19분 분량을 삭제해 재편집. 디스커버리호 내부 생활과 우주 유영, 프랭크 풀의 죽음 전후 장면 등을 덜어내며 서사의 흐름과 상영시간을 압축. 삭제된 장면 가운데 약 17분 분량의 필름이 2010년 워너브러더스가 이용하던 미국 캔자스주 보관 시설에서 확인되었으나, 큐브릭이 단축판을 최종본으로 여겼다는 이유로 미공개 유지.

클레이 펠커가 창간한 주간지 《뉴욕》에서 정치·사회·대중문화 기사를 쓰는 기고편집자로 활동을 시작함.

《뉴욕》은 스타이넘이 선거정치와 사회운동을 장문 기사로 다룰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다. 그는 이 지면에서 여성해방운동을 대중 독자에게 해설했고, 잡지 제작 경험과 독자망은 훗날 《Ms.》 시험판을 만드는 토대가 되었다.

스타이넘의 역할은 공동 창간자 또는 창간 초기 핵심 필자로 설명되지만, 잡지 자체는 펠커와 여러 편집자·기자의 협업으로 출범했다.

서울고등법원이 정하룡·정규명·임석훈에게 사형, 조영수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윤이상 등 11명에게 징역 15년에서 3년까지의 실형을 선고함. 일부 피고인의 형량이 1심보다 높아지면서 서독 정부와 국제사회의 반발이 다시 커진 계기.

동백림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