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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부가 부산 지역의 부마민주항쟁을 진압하기 위해 10월 18일 0시를 기해 비상계엄을 선포함. 대학 휴교와 통행금지 강화가 시행되고 군 병력이 시위 진압과 연행에 투입되면서 학생·시민에 대한 강경 탄압이 이루어짐.

노먼 주이슨 감독, 알 파치노 주연의 법정 드라마가 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서 개봉. 배리 레빈슨과 발레리 커틴이 볼티모어 변호사를 중심으로 사법제도의 모순을 공동 집필한 작품. 두 작가에게 1980년 아카데미 오리지널 각본상 후보 지명을 안긴 각본.

배리 레빈슨 공동각본

1979년 10월 26일 밤 서울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 대통령경호실장 등을 총격해 살해함. 부마민주항쟁에 대한 대응과 유신체제의 위기를 둘러싼 권력 내부의 갈등이 격화한 상황에서 벌어진 사건.

1961년 5·16 군사쿠데타부터 약 18년간 이어진 박정희의 집권이 끝났고,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와 비상계엄으로 이어짐. 민주화에 대한 기대가 커졌으나 같은 해 12월 12일 군사반란을 계기로 신군부가 군권을 장악함. 사건의 동기와 김재규의 법적·역사적 평가를 둘러싼 논쟁은 이후에도 계속됨.

박정희 10·26 사건

1979년 10월 27일 오전 6시 40분경 경상북도 문경의 대한석탄공사 은성광업소 지하 갱도에서 화재가 발생함. 갱구에서 약 2,250m 떨어진 컨베이어 구간에서 시작된 불이 운반용 벨트를 따라 번져 유독가스가 발생했고, 작업 중이던 광부 126명 가운데 44명이 숨짐.

전동기의 열이 고무 컨베이어에 옮겨붙은 것이 사고 원인으로 전해짐. 대한석탄공사 역사상 최악의 광산 참사로 기록되었으나, 박정희 대통령 피살 바로 다음 날 발생해 충분한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한 사건. 한국 석탄산업을 뒷받침한 노동자의 위험과 산업안전·재난구조의 과제를 보여줌.

거사 직후 김재규가 중앙정보부가 아닌 육군본부로 향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과 동석하며 사태를 장악하려 했으나, 곧 범행이 드러나 10월 27일 새벽 보안사령부 합동수사본부에 체포됨. 중앙정보부 병력을 동원하지 못한 이 판단 착오가 거사 실패의 결정적 분기점으로 지목됨. 사건 수사를 맡은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권력 전면에 부상하는 계기.

10·26 사건

박정희 사망으로 최규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고, 10월 27일 오전 4시를 기해 제주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이 선포됨. 계엄사령관에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합동수사본부장에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취임. 유신 권력의 공백을 군부가 메우며 이후 신군부 집권의 통로가 된 조치.

10·26 사건

부마민주항쟁 대응을 두고 강경 진압을 주장한 차지철 경호실장과 신중론을 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앞에서 충돌하며 권력 핵심부의 균열이 깊어진 국면. 차지철의 월권과 박정희의 신임 편중에 대한 김재규의 불만이 누적된 상황. 10·26 거사의 직접적 배경이자 동기로 거론되는 갈등 구도.

10·26 사건

이란 혁명 이후 학생 시위대가 1979년 11월 4일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에 진입해 대사관 직원 등을 억류함. 이후 52명의 미국인이 444일간 억류되는 인질 위기로 이어졌으며, 미국과 이란의 외교 단절과 불신을 심화시킴. 이란 혁명과 미국의 팔라비 전 국왕 입국 허용을 둘러싼 반발 속에 발생함.

1979년 11월 6일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 전두환 소장이 박정희 대통령 피살 사건(10·26 사건)의 수사 결과를 공식 발표함. 당시 수사본부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범행 경위와 관련자 조사 내용을 공개했으며, 전두환이 수사본부장으로 대중 앞에 등장한 시점으로 기록됨. 10·26 사건 이후 권력 공백과 군부 내 영향력 변화, 같은 해 12·12 군사반란으로 이어지는 정국의 맥락에서 의미가 있음.

존 치버의 단편을 테런스 맥널리가 각색한 미국 텔레비전 드라마. 자신이 이용하고 해고한 여성에게 추적당하는 남성을 통해 교외 중산층의 정서적 단절과 도덕적 공허를 다룬, 아이보리의 Merchant Ivory 외부 연출 작업.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

보니 타일러가 일본 도쿄 일본무도관에서 열린 야마하 세계가요제에서 'Sitting on the Edge of the Ocean'을 불러 그랑프리를 수상. 이 무렵 타일러는 자신에게 붙은 컨트리 가수 이미지를 벗어나 팝·록 중심의 음악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기 시작함. 이후 음악적 방향을 스스로 선택하려는 움직임이 1980년대의 대대적인 스타일 변화로 이어짐.

보니 타일러

응급 수술이 진행되는 시간을 시청자가 함께 체감하도록 구성한 〈Life Time〉를 방송함. 실제로 흐르는 시간과 극 속 시간을 맞추는 방식으로 의료진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을 강조함. 환자의 생사를 둘러싼 긴박함을 대사뿐 아니라 회차 전체의 형식으로 전달하려는 시도였음.

개발도상국에 더 유리한 무역조건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결정, 이른바 허용조항을 채택한 사건. 한 나라에 준 혜택을 다른 체약국에도 적용한다는 최혜국대우 원칙에 일정한 예외를 인정한 장치.

선진국이 개발도상국 상품의 관세를 특별히 낮추는 일반특혜관세제도, 개발도상국 상호 간의 관세 인하 등이 그 대상. 경제발전의 격차를 고려한 우대를 허용하되 다른 나라와의 무역에 부당한 장애를 만들지 않도록 조건을 둔 결정.

도쿄 라운드가 마무리되며 관세 인하와 함께 보조금·정부조달·제품규격·수입허가 등 여러 분야의 협정이 마련된 시점. 국경에서 걷는 세금만 낮춰서는 해결되지 않는 무역 문제를 다루기 시작한 진전.

예를 들어 정부가 물품을 구매할 때 외국 기업을 어떻게 대우할지, 상품가격을 세관에서 어떻게 평가할지 등을 공통 규칙으로 정리하려는 시도. 다만 여러 협정은 참여를 선택한 나라에만 적용되어, GATT 참가국 모두가 같은 의무를 지는 단일한 체제는 아니었던 한계.

마틴 셔먼의 연극 《Bent》가 뉴욕 뉴아폴로 극장에서 개막. 나치 독일의 동성애자 박해와 수용소에서의 관계를 다룬 작품으로, 로버트 앨런 애커먼이 연출.

리처드 기어가 맥스, 데이비드 듀크스가 호르스트, 데이비드 마셜 그랜트가 루디 역으로 출연. 기어의 출연은 1980년 6월 1일까지 이어졌으며, 작품은 6월 28일 종연.

유엔 총회가 결의 34/68로 달과 기타 천체에서의 국가 활동을 다루는 달협정을 채택한 사건. 달과 천연자원을 인류 공동의 유산으로 규정하고 자원 개발이 실현 가능한 단계에 이르면 국제제도를 마련한다는 방향의 제시. 우주조약의 비전유 원칙을 자원 문제로 확장하려는 시도지만, 우주조약 자체를 일괄 개정한 것은 아닌 별도 협정.

우주조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