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 사망 이후 4년 7개월간 지속된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가 해제. 정부는 12월 8일 0시를 전후 구속 인사 68명 석방. 참고로 10·26 사건 이후부터 석방된 인사들도 있었음.
《스타 트렉: 더 모션 픽처》 미국 개봉
로버트 와이즈가 감독한 첫 극장용 《스타 트렉》 영화가 미국에서 개봉함. 오리지널 시리즈의 주요 배우들이 복귀했고, 커크와 엔터프라이즈호의 이야기가 텔레비전을 넘어 대형 스크린으로 옮겨 감.
이 영화는 알 수 없는 존재와의 조우를 긴 호흡으로 다루며 우주선과 우주 공간을 시각적으로 확장함. 개별 작품에 대한 평가는 갈렸지만, 이후 여러 편의 극장판이 제작되는 출발점이 되었다는 산업적 의미가 있음.
《신궁》 국내 개봉
임권택 감독의 무속 소재 문예영화 《신궁》 개봉. 어촌의 무당 왕년과 남편 옥수가 선주이자 고리대금업자인 판수에게 시달리고, 남편을 잃은 왕년이 굿판에서 복수에 나서는 이야기. 무속 의례와 어촌 공동체의 착취·원한을 결합한 작품. 윤정희의 왕년 역, 김희라의 옥수 역, 방희의 쪼깐년 역 출연.
신군부의 12·12 군사반란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노태우 제9사단장 등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대통령의 사전 재가 없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을 강제로 연행함. 서울과 수도권 병력을 동원한 반란은 이튿날 새벽까지 이어졌으며, 육군본부·국방부 점령과 반대 지휘관 체포를 거쳐 군 지휘권 장악으로 귀결됨.
최규하 대통령의 사후 재가는 이미 진행된 무력행사를 정당화하지 못했으며, 대법원은 이 사건을 대통령의 군통수권과 육군참모총장의 지휘권에 반항한 군사반란으로 판단함. 최규하 정부가 곧바로 폐지된 것은 아니지만, 신군부가 이듬해 국가권력 전반을 장악하는 기반이 된 사건이었음.
노태우, 12·12 군사반란에 가담
제9사단장 노태우가 전두환 등과 함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연행을 준비하고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함. 반란 지휘부가 모인 수도경비사령부 제30경비단에서 휘하 병력의 서울 진입을 지시했으며, 제9사단 병력이 이튿날 새벽 중앙청에 진주함.
반란 뒤 노태우는 수도경비사령관에 임명되어 수도 방위의 핵심 지휘권을 맡음. 이 사건은 전두환과 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기존 군 수뇌부를 밀어내고 군권을 장악하는 과정의 주요 단계였음.
배경
10·26 사건으로 박정희가 사망한 뒤의 권력 공백기에 전두환·노태우 등 하나회 장교들이 계엄사령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체포를 모의함.
전개
9사단장이던 노태우가 병력을 동원해 반란에 가담했고, 최규하 대통령의 원대복귀 명령에도 불응. 사태 직후 수도경비사령관에 올라 신군부 집권의 토대 마련.
하나회 소속 장교들의 12·12 군사반란 가담
군 내부 사조직 하나회에 속한 전두환·노태우와 이들을 지지한 장교들이 수도권 병력과 주요 부대를 동원해 12·12 군사반란의 중심을 이룸. 보안사령부, 수도경비사령부, 공수부대 등에서 형성된 인맥은 정규 지휘체계의 명령을 거스른 병력 운용을 가능하게 한 조직적 기반이었음.
반란 뒤 신군부 인사들이 군의 핵심 보직을 차지하면서 기존 지휘부가 교체됨. 하나회는 신군부의 중요한 인적 토대였지만 두 집단의 범위가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며, 반란에는 하나회 회원 외의 지지 세력도 참여함.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의 강제 연행에 맞서 정규 지휘계통의 병력을 모아 반란 진압을 시도했으나 지휘부의 분열과 병력 이탈로 실패함. 12월 13일 새벽 신윤희가 지휘하는 헌병들이 수도경비사령부를 장악하고 장태완과 그곳에 모여 있던 육군 지휘부를 체포·무장해제함.
서울고등법원이 인정한 체포 시각은 새벽 3시 40분 무렵이었으며, 체포 과정에서 하소곤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이 총상을 입음. 장태완의 제압과 노태우의 후임 사령관 임명은 반란 세력이 수도 방위 지휘체계를 장악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음.
《1941》 미국 개봉
진주만 공격 직후 로스앤젤레스의 전쟁 공포를 소재로 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대규모 코미디.
《죠스》와 《미지와의 조우》에 이어 본격적인 코미디 장르로 방향을 넓힌 작품. 로버트 저메키스와 밥 게일의 각본을 스필버그가 연출하고 존 벨루시, 댄 애크로이드, 미후네 도시로, 크리스토퍼 리 등이 출연한 전쟁 풍자극.
계엄보통군법회의, 김재규에 내란목적살인 사형 선고
1979년 12월 20일 계엄보통군법회의가 김재규에게 내란목적살인·내란수괴미수 등을 적용해 사형을 선고. 박선호 등 범행에 가담한 중앙정보부 관계자들도 함께 중형을 선고받음. 거사의 성격을 '내란'으로 규정한 군사재판의 판단이 이후 평가 논쟁의 출발점.
애플 공동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PARC를 방문해, 제록스가 애플 주식 매입권을 얻는 대가로 알토의 기술 시연을 관람. 스몰토크-76 환경과 네트워킹, 그리고 마우스 중심의 WYSIWYG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봄. 이 방문은 애플 리사와 매킨토시 개발에 영향을 끼친 일화로 자주 인용됨.
전두환·노태우 등, 정승화 연행 계획 수립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노태우 제9사단장이 12월 7일 무렵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의 연행 문제를 논의하고 실행일을 12월 12일로 정함. 전두환은 이어 이학봉·허삼수·우경윤 등에게 체포 장소와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마련하도록 지시함.
군 수뇌부를 제거하고 지휘권을 확보하려는 준비는 병력 동원 지휘부의 구성으로 이어짐. 정승화의 10·26 사건 관련 혐의 수사는 표면적 명분이었으며, 법원은 이 계획과 실행을 군 지휘권 장악을 위한 반란의 일부로 인정함.
경쟁사의 16비트 프로세서가 시장에 잇따라 등장하며 8086 판매가 기대에 못 미치자, 인텔이 1979년 12월 대규모 판매·마케팅 캠페인 ‘오퍼레이션 크러시(Operation Crush)’를 기획함. 단순한 성능 수치보다 개발 도구·기술 지원·공급 능력을 포함한 ‘전체 시스템 솔루션’을 앞세워 1년 안에 2,000건의 디자인 윈을 확보한다는 목표를 세움.
캠페인은 1980년 전사적으로 전개되어 약 2,500건의 디자인 윈을 확보했고, 가장 중요한 성과는 8086의 8비트 버스 변종인 8088이 IBM PC에 채택된 것이었음. 8086 계열이 경쟁 프로세서를 제치고 개인용 컴퓨터의 사실상 표준으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 전환점이 된 캠페인.
영국영화등급분류위원회(BBFC)가 무술영화의 인기와 청소년 사이에서 쌍절곤 등 무술 무기 사용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커지자 《용쟁호투》를 다시 검토함. BBFC 사무총장 제임스 퍼먼이 이소룡이 쌍절곤을 사용하는 장면과 예고편·홍보물의 관련 이미지를 제거하도록 배급사에 요구함.
이후 쌍절곤·표창·도리깨 등 특정 무술 무기의 화면 묘사를 제한하는 것이 BBFC의 일반적인 검열 관행으로 확대됨. 《용쟁호투》와 1970년대 쿵후 열풍이 영화 등급·검열정책에까지 영향을 미친 사례.
《프럼버》 텔레비전영화 공개
피터 위어가 각본·연출을 맡고 매트 캐럴이 제작한 텔레비전용 심리 스릴러의 공개. 대학 연구자의 집에 배관공이 찾아오면서 일상과 통제권을 둘러싼 갈등이 커지는 이야기. 주디 모리스와 이바 캔츠가 출연하며 계급과 권력관계를 블랙코미디로 드러낸 작품. 1978년에 완성되고 1979년 작품으로 공개된 텔레비전영화.
유발이 암호학 저널 《크립톨로지아》 논문 「How to swindle Rabin」에서 생일 문제의 수학을 해시 충돌 탐색에 적용한 생일 공격을 처음 제시함. 출력이 l비트인 해시 함수의 충돌을 약 2^(l/2)회 시도로 찾아 전자서명을 위조할 수 있음을 보임. 해시 함수의 안전성을 출력 길이의 절반 기준으로 평가하게 만든 출발점.
스티브 잡스와 애플 개발진이 PARC를 방문했을 때 그래픽 인터페이스 시연에 참여. 테슬러의 후일 구술에 따르면 주요 스몰토크 시연은 댄 잉걸스가 담당. 테슬러는 이 방문을 계기로 애플 입사를 고려하기 시작.
시연 장비와 프로그램의 세부 내용에 관해서는 참석자마다 다르게 회고. 테슬러도 Gypsy를 시연했을 가능성을 언급했으나 확정하지는 않았으며, 애플은 이 방문 전부터 Lisa 개발을 진행.
대마초 파동 해금 직후인 1979년 자신의 전속 밴드 '위대한 탄생'을 결성함. 이 밴드와 함께 곡을 편곡하고 앨범을 프로듀싱하면서 한국 가요계에 싱어송라이터 개념을 확립함. 이듬해 정규 1집을 내며 본격적인 전성기로 진입하는 토대.
에드 디너, 자기인식 감소를 몰개성화의 핵심 기제로 제시
사회심리학자 에드 디너가 논문 〈Deindividuation, Self-Awareness, and Disinhibition〉에서 몰개성화의 중심 심리 과정으로 자기인식, 특히 자신의 내적 기준과 행동을 점검하는 사적 자기인식의 약화를 강조함.
디너는 익명성이나 집단 상황 자체가 곧바로 행동 억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조건이 개인의 자기관찰과 의식적 행동 계획을 약화시킬 때 충동적이거나 평소 억제되던 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함. 몰개성화를 외부 조건의 단순한 결과가 아니라 자기조절 과정의 변화로 재해석한 정교화.
미국 퀘이커봉사회, 함석헌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
미국 퀘이커봉사회(AFSC)가 함석헌을 1979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함. 1947년 평화상을 공동 수상한 단체인 AFSC가 행사한 추천으로, 1985년에도 함석헌을 다시 추천함. 한국의 비폭력·민주화 운동가가 국제 평화운동의 추천을 받은 사례. 추천 자체는 노벨위원회의 지지나 수상자 선정과 구별되는 절차이며, 함석헌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지 않음.
타지펠·터너, 사회 정체성 이론 정식화
앙리 타지펠과 존 터너가 「집단 간 갈등의 통합 이론」에서 사회 정체성 이론의 기본 틀을 제시함. 개인이 자신을 사회집단의 구성원으로 범주화하고 집단 간 비교를 통해 긍정적인 사회 정체성을 확보하려 한다는 관점에서 최소집단 실험의 내집단 편애와 현실의 집단 간 행동을 설명함. 집단 간 지위 차이가 불안정하거나 정당하지 않다고 인식될 때 개인 이동·사회적 창의성·사회적 경쟁과 같은 대응이 나타날 수 있다는 이론적 체계 정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