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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 20건
103년 전

9월 2일 오후부터 3일 사이 일본 내무성 경보국장 고토 후미오 명의의 전보가 전국 지방장관과 조선총독부·대만총독부에 발송. 조선인이 지진을 틈타 각지에서 방화하고 폭탄과 석유를 사용해 불령한 목적을 이루려 한다고 주장하며, 조선인의 행동을 엄밀히 단속하도록 지시한 내용. 확인되지 않은 조선인 폭동설에 정부 기관의 권위를 부여하고 이를 일본 전역과 식민지 통치기관으로 확산한 조치로, 학살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보여 주는 핵심 문서.

일본 정부가 9월 2일 오후 6시 긴급 칙령을 통해 도쿄부와 인접 지역에 계엄령 선포. 이후 3일 가나가와현, 4일 사이타마현과 지바현으로 계엄 지역 확대. 치안 유지와 재해 수습을 명분으로 군대가 투입되었으나, 조선인이 폭동과 방화를 일으킨다는 유언비어에 근거한 검문·수색·연행과 군경·자경단의 폭력이 계엄 체제 아래 확산. 국가의 비상조치가 조선인 보호보다 통제와 탄압에 작동하며 학살의 제도적 조건을 형성한 국면.

관동 대지진 발생 당일부터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거나 방화와 폭동을 일으킨다는 근거 없는 소문 확산. 지진과 화재로 통신·행정 체계가 마비된 상황에서 유언비어가 구두로 전파되고, 일부 관헌과 언론을 거치며 사실인 것처럼 증폭. 조선인을 위험 집단으로 지목한 이러한 유언비어가 군·경찰과 자경단의 검문·연행·살해를 정당화하고 대규모 학살을 촉발하는 명분으로 작용.

1923-09-01 지진 직후 학살이 벌어진 재난

일본 관동 지방에서 관동 대지진 발생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경 사가미만 북서부를 진원으로 하는 대규모 지진 발생. 도쿄와 요코하마를 비롯한 관동 지방에서 건물 붕괴와 대형 화재가 잇따르며 막대한 인명·재산 피해 발생. 행정·통신 체계가 혼란에 빠지고 사회적 불안이 확산되면서 조선인에 대한 유언비어가 퍼질 수 있는 환경 형성.

X선을 전자에 쏘았을 때 산란된 X선의 파장이 길어지는 현상 관측. 빛이 운동량을 가진 입자(광자)처럼 전자와 충돌한다고 보아 이 파장 변화를 정확히 설명. 빛의 입자성을 결정적으로 입증해 광양자 가설을 굳힘.

사회주의 노동운동단체인 ‘조선노동연맹회’ 주최. 원래 계획은 서울의 각 노동단체와 공장노동자들이 당일 동맹파업을 결의하고 장충단에 모여 ‘노동시간단축, 임금인상, 실업방지’ 등을 주장하는 시위행진. 하지만 당시 조선총독부가 장충단으로 모여드는 노동자들을 잡아들여 행사가 열리지 못함. 대신 약 2,0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서울 중앙기독교 청년회관으로 장소를 옮겨 기념 강연을 듣는 것으로 대신함.

당시 강상호, 신현수, 천석구 등이 주도하여 경상남도 진주에서 형평사(衡平社)를 창립하고 총본부를 조직. 이는 백정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철폐하고 인권 존중과 평등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조직적인 한국 최초의 인권 단체라 할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