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9월 26일 발매된 에는 조지 해리슨의 이 수록됨. 이 음반은 비틀즈가 마지막으로 녹음한 정규 음반이지만 마지막으로 발매된 음반은 아님. 보이드는 의 영감으로 알려지며 해리슨의 작곡과 연결된 인물로 인식됨.
투어 이동 중 여러 스튜디오를 옮겨 다니며 녹음한 2집을 미국에서 발매. 〈Whole Lotta Love〉의 리프와 중간부 사운드 실험이 하드 록의 표준적 어법으로 굳어지는 계기. 미국과 영국 차트 정상에 올라 밴드를 세계적 흥행 밴드로 올려놓은 작품.
1969년 10월 《소년 점프》를 주간 발행 체제로 바꾸고 제호를 《주간 소년 점프》로 변경함. 11월 인기 연재작을 단행본으로 묶은 점프 코믹스를 발간함. 주간 잡지 연재와 단행본 발행을 연계하는 판매 체계를 마련함.
리사 수, 대만 타이난 출생
리사 쯔펑 수(Lisa Tzwu-Fang Su)가 1969년 11월 7일 대만 타이난에서 출생함. 세 살 무렵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주해 뉴욕에서 성장함.
건설부가 계획 기간을 1972~1981년으로 정하고 산업 기반 확충, 교통·통신망 정비, 수자원 개발, 권역별 균형발전 등을 기본방향으로 설정함. 이후 부문별 계획과 투자 구상이 본격적으로 종합됨.
해체 직전의 록 그룹 화이브 휭거스에 리드 기타(퍼스트 기타)로 합류. 파주군 장파리 DMZ 클럽을 주 무대로 활동. 이 시기의 경험이 뮤지션으로 중요한 밑거름이 됨.
이란의 아동지능개발연구소, 카눈(Kanun)에 합류해 영화 부문을 만드는 데 참여함. 이 기관은 이후 이란 뉴웨이브 영화의 중요한 산실이 되었고, 키아로스타미가 교육·아동·일상·관찰을 중심으로 한 영화 세계를 발전시키는 기반이 됨.
앨런 케이, 유타 대학교에서 컴퓨터 과학 박사 학위 취득
앨런 케이가 1969년 유타 대학교에서 컴퓨터 과학 박사 학위를 취득함. 박사 연구인 《The Reactive Engine》은 유연하고 확장 가능한 프로그래밍 언어·실행 환경인 FLEX의 구상을 다루며, 이후 객체지향 시스템과 개인용 컴퓨팅에 관한 그의 문제의식을 예고함. 유타 대학교 재학 중 이반 서덜랜드의 그래픽·상호작용 컴퓨팅 연구와 시뮬라 등의 영향을 접하며 객체와 동적 시스템에 대한 관점을 구체화함. 같은 해 스탠퍼드 인공지능 프로젝트(SAIL)에 연구원으로 합류해 교육용 개인 컴퓨터와 프로그래밍 환경에 관한 연구를 이어감.
다니엘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가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교에서 판단과 의사결정 문제를 함께 연구하기 시작함. 카너먼이 1968~1969년 진행한 대학원 세미나를 계기로 교류가 깊어졌고, 두 사람은 사람들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확률·위험·선택을 어떻게 직관적으로 판단하는지 공동으로 탐구함.
이 협업은 인간 판단이 합리적 계산과 체계적으로 어긋날 수 있음을 실험적으로 보여주는 연구로 이어짐. 이후 휴리스틱과 편향 연구, 기준점과 손실회피를 중심으로 한 전망 이론의 토대가 형성되며 심리학·경제학·법학·정책 연구에 큰 영향을 남김.
카너먼과 트버스키의 공동 연구는 장기적 학문 협업과 개인적 우정의 출발점으로 평가됨.
필립 짐바르도, 몰개성화 이론 체계화
필립 짐바르도가 네브래스카 동기 심포지엄에서 〈The Human Choice: Individuation, Reason, and Order versus Deindividuation, Impulse, and Chaos〉를 발표하며 몰개성화 이론을 종합적으로 정식화함. 이 글은 이후 1970년 《1969 Nebraska Symposium on Motivation》에 수록됨.
짐바르도는 익명성, 책임감 분산, 집단 규모, 각성, 감각 과부하 등 상황 요인이 개인의 자기인식과 자기통제를 약화시켜 충동적이거나 반규범적인 행동을 촉진할 수 있다고 설명함. 몰개성화를 단순한 군중 현상이 아니라 상황이 개인의 심리적 상태와 행동을 바꾸는 과정으로 다룬 고전적 이론화.
이 틀은 익명적 온라인 환경에서 자기 억제가 약화되는 과정을 설명하려는 온라인 탈억제 효과 연구의 주요 선행 이론이 됨. 다만 이후 연구는 익명성이 항상 무질서한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집단 정체성과 해당 집단의 규범을 더 강하게 따르게 할 수도 있다고 보완함.
량정, 홍콩침회학원에서 제1회 영춘권술 대회 개최
1969년 겨울 량정이 홍콩침회학원 시설에서 제1회 영춘권술 대회 겸 시연회를 열고 엽문과 여러 계열 지도자를 초청함. 량정의 대학 교습반 개설은 협회 공식 연혁상 1968년의 별도 사건이므로, 이 항목은 1969년 공개 대회에 한정함. 비공개 대련 중심이던 무술이 학교와 공개 행사의 틀로 옮겨간 사례.
코카-콜라는 붉은 아든 스퀘어 안에 상표와 흰 물결선을 배치한 새 그래픽을 도입함. 이 물결선은 다이내믹 리본 디바이스로 불렸으며 기존 광고 문구인 ‘Drink’ 대신 ‘Enjoy’가 쓰임. 포장과 광고에서 상표를 빠르게 식별하는 시각 요소가 됨.
찰리 멍거가 블루칩 스탬프스 이사회에 합류.
블루칩 스탬프스는 이후 멍거와 워런 버핏이 시즈 캔디와 웨스코 파이낸셜 등 여러 기업에 투자하는 주요 수단으로 활용됐으며, 훗날 버크셔 해서웨이에 편입.
멍거는 1976년 블루칩 스탬프스 이사회 의장에 취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해인사 백련암에서 출가함. 이후 군 복무와 베트남전 참전을 거쳐 1974년 법주사에서 사미계를 받고 본격적인 승려 생활을 이어감.
대종상 독립 시상식을 중단하고 대한민국문화예술상 영화 부문에 통합함. 1969년에는 수상자가 없었고 1970년에는 최금동이 시나리오상을 받은 뒤 통합 운영을 종료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