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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의 기록 15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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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많은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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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 데이비드 매밋 각본의 《언터처블》이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서 개봉. 금주법 시대 시카고를 배경으로 엘리엇 네스와 수사팀이 조직범죄 두목 알 카포네를 추적하는 범죄극. 로버트 드 니로가 알 카포네를 맡고 케빈 코스트너·숀 코너리·앤디 가르시아가 수사팀으로 출연한 작품.

김태홍·신홍범·김주언이 집행유예 또는 선고유예를 받아 풀려남. 석방은 재판의 종결이나 무죄 확정을 뜻하지 않았으며, 피고인들은 이후에도 항소심과 상고심을 거쳐야 했음.

보도지침 사건

연세대학교 학생 이한열이 6·10국민대회를 앞두고 열린 시위에서 경찰이 발사한 최루탄에 머리를 맞아 쓰러짐. 중태에 빠진 이한열의 모습은 시위 진압의 폭력성을 드러내며 학생과 시민의 분노를 확대했고, 다음 날 시작되는 전국적 항쟁에 큰 영향을 주었음. 이한열은 7월 5일 사망했으며, 7월 9일 장례에는 대규모 추모 인파가 모여 민주화 요구와 국가폭력에 대한 항의를 이어갔음.

전두환 6월 민주항쟁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조작·은폐를 규탄하고 호헌 철폐를 요구하는 국민대회를 개최한 사건. 성공회 서울주교좌대성당 주변이 경찰에 봉쇄된 가운데 오후 6시 차량 경적과 흰 손수건 흔들기 등으로 시민들이 동참하고 시위가 전국 주요 도시로 확산된 전환점.

같은 날 집권 민주정의당이 노태우를 대통령 후보로 지명하면서 간선제에 따른 정권 승계와 국민의 대통령 직선제 요구가 맞선 상황. 명동성당 농성과 연이은 거리 시위, 6·26 국민평화대행진으로 이어지며 개헌 협상을 이끌어 낸 6월 민주항쟁의 본격적 시작.

전두환 대한민국 헌법 6월 민주항쟁

민주정의당이 6월 10일 잠실체육관에서 제4차 전당대회 겸 대통령 후보 지명대회를 열고 노태우를 제13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함. 같은 날 열린 국본의 6·10 국민대회와 정면으로 대비되며, 정권의 권력 승계 의지를 드러낸 행사. 이후 노태우는 6·29 선언을 거쳐 그해 12월 직선제 대선에서 당선됨.

6월 민주항쟁

6월 10일 국민대회 뒤 시위를 벌이던 학생·시민이 경찰에 쫓겨 명동성당으로 들어가 6월 15일까지 농성을 이어감. 인근 계성여고 학생과 시민들이 도시락·물을 전달하며 지원했고, 사제단의 중재로 6월 15일 오후 자진 해산함. 단발성으로 끝날 뻔한 6·10 국민대회를 지속적 항쟁으로 전환시킨 분기점.

조지 밀러 감독의 판타지 코미디 《이스트윅의 마녀들》 미국 개봉. 작은 마을의 세 여성 앞에 정체불명의 남자가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수잔 서랜든이 음악교사 제인 스포퍼드를 맡고 셰어·미셸 파이퍼·잭 니컬슨과 공동 출연.

국본이 무차별 최루탄 사용에 항의해 6월 18일 '최루탄추방 국민대회'를 전국에서 개최함. 전국 주요 도시에서 100만 명 이상이 참여했고, 부산에서는 노동자 이태춘이 최루탄에 맞아 쓰러진 뒤 6월 24일 사망함. 회사원·이른바 넥타이부대까지 가세하며 학생 시위가 시민 항쟁으로 확산된 분수령.

6월 민주항쟁

국본이 6월 26일 '국민평화대행진'을 전국 37~38개 시·군에서 동시에 벌임. 100만 명 이상이 참여한 6월 항쟁 최대 규모의 시위로, 대도시뿐 아니라 군 단위 농촌까지 시위가 번짐. 경찰력만으로는 진압이 불가능함이 분명해지며 정권을 6·29 선언으로 내몬 결정적 항쟁.

6월 민주항쟁

전국적인 6월 민주항쟁 속에서 민주정의당 대표이자 대통령 후보인 노태우가 시국수습 특별선언을 발표한 사건. 여야 합의에 따른 대통령 직선제 개헌, 선거법 개정, 김대중의 사면복권과 시국사범 석방, 기본권과 언론 자유의 확대 등을 제시한 8개 항의 선언.

직선제 요구를 거부하던 집권세력이 입장을 바꾼 정치적 전환. 7월 1일 전두환의 공개 수용과 여야 개헌 협상을 거쳐 제9차 개정헌법, 12월 대통령 직접선거로 이어진 제도 변화의 계기. 선언 발표 자체와 이후 헌법의 국민투표 확정·공포는 서로 구별되는 단계.

대한민국 헌법 전두환 직선제 수용 결정 6월 민주항쟁

전두환 대통령이 특별담화를 통해 노태우가 제시한 6·29선언을 전면 수용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힘. 이에 따라 대통령 직선제 개헌과 새 헌법에 따른 대통령선거 추진이 정부의 공식 방침으로 자리 잡았음. 국민의 직선제 요구를 거부한 4·13 호헌조치에서 선회한 조치이며, 거리의 항쟁이 이끌어 낸 정치적 양보를 여야의 개헌 협상과 제도 변경으로 연결하는 과정이었음.

전두환 담화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