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987년의 기록 154건

39년 전.한 해의 기록을 월별로 살펴보세요.

가장 많은 기록
5월 · 22건
관련 엔티티
200개
날짜가 확정된 기록
75%
월을 선택해 기록 보기 5월 · 22건

이규형 감독의 청춘영화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국내 개봉. 강수연·박중훈·김세준이 대학생들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 작품.

박중훈이 철수, 강수연이 미미, 김세준이 보물섬을 맡은 영화. 세 청춘의 낙방과 캠퍼스 생활, 만남을 엮어 1980년대 대학가의 분위기를 담은 작품.

박중훈

연세대생 이한열, 6월 항쟁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뒤 사망. 장례식에 대규모 추모 인파가 모이며 민주화 열기를 더욱 확산시킴.

최루탄에 맞아 중태에 빠졌다가 7월 5일 숨진 이한열의 장례가 민주국민장으로 치러짐.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영결식에 이어 운구 행렬이 서울시청 앞에 도착하여 시민들과 함께 노제를 진행함.

이후 광주로 이동해 망월동 묘역에 안장됨. 6월 민주항쟁의 희생자를 기리는 대규모 추모 행렬이 서울 도심과 광주를 잇고, 시청 앞 공간이 민주화운동의 기억을 공유하는 장소로 남게 된 사건.

CBS가 보도 기능 정상화를 요구하는 5시간 특별 생방송에서 김대중·김영삼·윤보선의 인터뷰를 내보냄. 오후 6시 30분에는 보도 허가가 회복되기 전 저녁 종합뉴스를 송출함. 정규 보도 기능의 제도적 회복은 같은 해 10월에 이루어짐.

6월 민주항쟁 이후 노동자들이 민주노조 건설과 임금인상,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전국적인 집단행동에 나섬. 7월 5일 현대엔진 노동자들의 노조 결성을 출발점으로 울산과 마산·창원의 대공장에 투쟁이 확산되었고, 8월에는 현대그룹 노동자들의 대규모 가두시위와 거제 대우조선의 파업으로 이어짐.

8월 22일 이석규가 경찰의 직격 최루탄에 맞아 숨지는 등 진압 과정의 희생도 발생함. 7~9월에 3,341건의 노동쟁의가 집중되었으며, 전두환 정권기에 억눌렸던 노동자들의 조직과 요구가 분출하면서 민주노조운동의 기반이 크게 확대됨.

전두환

세계현대미술제의 일환으로 국제 조각가들이 현장에서 작품을 만드는 첫 야외조각 심포지엄이 열림. 이듬해의 두 번째 심포지엄과 조각초대전으로 이어지며 공원의 야외미술 컬렉션을 형성했음.

작품 설치 과정에서는 몽촌토성 훼손 가능성과 한국 미술가의 참여, 선정 절차를 둘러싼 논쟁도 제기됨. 이에 일부 작품의 위치를 사적보호구역 밖으로 조정하는 등 예술행사와 유적 보존 사이의 조율이 필요했음.

임춘애가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7회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800m에서 2분 05초 39로 동메달을 획득함. 한국의 최세범이 2분 05초 11로 우승하고 중국의 장슈링이 2분 05초 21로 2위에 올라, 1~3위가 0.28초 차이로 나뉨. 임춘애는 같은 대회 여자 1500m에서는 4분 27초 21로 5위를 기록함.

MTV가 1987년 8월 1일 유럽 시장을 겨냥한 범유럽 채널 MTV 유럽을 개국함. 첫 송출 뮤직비디오로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Money for Nothing〉을 내보내며 수백만 유럽 가구에 도달. 미국식 뮤직비디오 편성 모델을 해외로 확장한 국제화의 출발점.

MTV

심리학자 브라이언 G. 길마틴이 연애 관계 형성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 남성들을 ‘love-shy’로 다룬 연구서를 출간함. ‘인셀’이라는 명칭 이전부터 원치 않는 연애·성적 고립을 수줍음, 사회적 불안, 관계 경험 부족의 문제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선행 맥락.

후대 온라인 ‘love-shy’ 공동체는 이 연구의 용어를 차용하면서 점차 남성 중심의 불만과 여성 책임론을 강화해 현대 인셀 문화의 한 갈래와 접점을 형성함.

인셀

민주정의당에서 노태우가 총재를 맡고 전두환은 명예총재로 물러남. 6월항쟁과 6·29선언 뒤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추진하던 시기에 집권당의 당권을 대통령 후보에게 넘긴 조치.

전두환의 대통령 임기는 계속되었으며, 노태우는 당을 이끌고 같은 해 12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함. 대통령 직선제 선거를 준비하며 후계자의 당내 지위를 강화한 권력 재편.

전두환

앨런 그린스펀이 폴 볼커의 뒤를 이어 연방준비제도 의장으로 취임함. 그린스펀은 1987년 8월 11일부터 2006년 1월 31일까지 다섯 차례 임기를 지내며,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래 재임한 연준 의장 가운데 한 명이 됨.

그의 취임은 볼커의 고강도 반인플레이션 정책 이후 연준이 물가 안정 기조를 유지하면서 금융시장 안정과 경기 확장 관리에 무게를 두기 시작한 전환점으로 평가됨. 취임 두 달여 뒤 발생한 1987년 10월 주가 대폭락은 그린스펀 체제의 첫 대형 금융시장 위기가 됨.

국제바이러스분류위원회(ICTV, International Committee on Taxonomy of Viruses)가 한탄바이러스와 서울바이러스·푸말라바이러스 등 유사 바이러스들을 묶기 위해 Bunyaviridae 과 안에 새 속 ‘한타바이러스(Hantavirus)’를 승인. (당시 공식명은 genus Hantavirus였으나, 현재 분류에서는 Hantaviridae 과 및 Orthohantavirus 속 체계로 재편)

거제 옥포에서 노조 인정과 임금인상을 요구하던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가 경찰이 발사한 직격 최루탄에 맞아 사망함. 대우조선 노동자들은 회사의 노조 결성 방해에 맞서 8월 8일부터 파업농성을 벌였고, 9일 노동조합을 결성한 뒤 교섭을 요구해 온 상태. 22일 협상이 결렬된 뒤 옥포관광호텔 인근에서 노동자들과 경찰이 대치하던 중 발생한 희생.

이석규의 죽음은 전국 노동자들의 추모와 항의로 이어짐. 장례 과정에서도 충돌과 지원 인사들의 구속이 뒤따르면서, 전두환 정권 말기 노동쟁의에 대한 경찰의 강경 진압이 다시 쟁점으로 떠오름.

전두환

강수연이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에서 양반가의 대를 잇기 위해 선택된 옥녀를 연기하여 제44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한국 배우의 베니스국제영화제 첫 연기상 수상으로, 임권택의 연출작과 한국영화의 국제적 인지도를 넓힌 성과.

런정페이가 투자자 5명과 함께 중국 선전 경제특구에서 약 2만 1천 위안(약 5천 달러)으로 화웨이 테크놀로지를 설립함. 홍콩에서 수입한 전화교환기(PBX)를 호텔·중소기업에 재판매하는 사업으로 출발. 덩샤오핑 개혁개방기 선전에서 등장한 첫 민간 기술기업 중 하나.

각 투자자는 3500위안씩, 총 2만1000위안의 자본금을 출자한 것으로 전해짐. 화웨이 공식 자료는 설립 연도만 1987년으로 밝히지만, 에바 더우의 연구를 인용한 보도에서는 설립일을 9월 15일로 제시함.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CFC와 할론 등 오존층을 파괴하는 물질의 생산·소비를 국제적으로 제한하는 의정서를 채택함. 물질별 규제 일정, 비당사국과의 무역 제한, 개발도상국의 유예기간과 과학평가에 따른 규제 강화 장치를 결합함. 비엔나 협약의 협력 틀을 구체적인 물질 규제로 발전시켰으며, 이후 개정·조정으로 대상 물질과 감축 의무를 확대할 수 있도록 설계함.

과학적 근거와 협상

CFC의 오존 파괴 가능성을 제시한 몰리나·롤런드의 연구와 후속 관측·실험이 국제 규제의 과학적 근거로 축적됨. 몰리나는 구술 기록에서 과학 보고서와 일부 회의에 참여해 과학적 내용을 설명했지만 전문 외교 협상가는 아니었다고 회고함. 국가 간 의무와 이행 조건의 합의는 각국 대표와 국제기구가 담당한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