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KO, 재편집한 《위대한 앰버슨가》 개봉
오슨 웰스가 감독·각본을 맡은 《위대한 앰버슨가》가 RKO를 통해 개봉함. 웰스와 스튜디오가 러닝타임과 편집을 두고 갈등한 뒤 공개된 88분판은 웰스의 원래 버전에서 약 45분이 제거된 형태였으며, 개봉 직전 웰스와 머큐리 스태프는 RKO 촬영소에서 퇴출됨.
독일 친위대와 경찰이 바르샤바 게토 주민을 트레블링카 절멸수용소로 보내는 대규모 강제이송을 시작함. 9월까지 이어진 작전으로 수십만 명이 게토에서 끌려갔고, 남은 주민들은 가족과 공동체를 잃음.
이송이 단순한 이주가 아니라 대량살해로 이어진다는 소식은 무장 자위조직을 만드는 계기가 됨. 피해 규모와 집계 범위는 자료마다 차이가 있어 하나의 숫자로 모든 희생을 설명하기 어려움.
대규모 강제이송이 진행되던 바르샤바 게토에서 청년운동 단체들이 유대인 전투조직(ŻOB)을 결성함. 이후 다른 정치·사회운동 세력도 참여해 무기 확보와 조직적인 자위를 준비함.
게토의 모든 저항세력이 하나의 조직에 속했던 것은 아니었음. 별도로 활동한 유대인 군사연합(ŻZW) 등과 함께 저항의 복수 주체를 살펴볼 필요가 있음.
내셔널 지오그래픽, 미국 국기 삽화를 표지에 게재
미국 재무부의 국기·전쟁채권 홍보 요청에 응해 국기 그림을 표지에 실음. 글자와 장식이 중심이던 표지에 처음으로 삽화를 도입한 사례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잡지의 시각적 표현이 미국의 전시 동원과 맞물렸음을 보여 줌.
바르샤바 게토의 주민들이 트레블링카로 대규모 강제이송되던 때, 이스라엘 리히텐슈타인과 다비트 그라베르 등은 자료를 금속 상자 10개에 넣어 노볼립키 거리 68번지 지하에 숨김. 기록을 만들던 사람들 자신도 살해될 위험에 놓인 상황이었음.
그라베르는 매장 직전 작성한 유언을 기록과 함께 남김. 일기와 연구 자료, 생활의 흔적을 후대에 전하려는 수집 활동이 파괴를 견딜 물리적 보존 작업으로 이어졌음.
미 해병대 제1사단이 1942년 8월 7일 솔로몬제도 과달카날과 툴라기 등에 상륙하여 태평양전쟁에서 미군의 첫 주요 공세 상륙작전을 시작함. 일본군이 건설 중이던 비행장을 둘러싸고 이후 해전·지상전·보급전이 이어져 1943년 초 일본군 철수에 이름. 일본 제국의 태평양 전쟁 수행과 동아시아 식민지 지배에도 영향을 미친 주요 전쟁 전환점임.
보잉 XB-29, 최초 비행
B-29 슈퍼포트리스의 첫 시제기 XB-29가 1942년 9월 21일 최초 비행에 성공함. 미 육군항공대는 전시 상황에서 첫 비행 전부터 대량생산을 발주했으며, 이후 B-29는 태평양전쟁 장거리 전략폭격과 원자폭탄 투하에 사용된 대표적 중폭격기로 발전함.
일제가 조선어학회를 독립운동 단체로 규정하고 10월 1일 이중화·장지영·최현배 등 11명을 시작으로 회원과 후원자들을 잇달아 검거함. 1943년 4월까지 33명이 붙잡혀 치안유지법 내란죄로 몰렸고, 사전 편찬 원고와 서적은 모두 압수됨. 학회 활동과 『큰사전』 편찬이 전면 중단된 일제 말기의 대표적 민족 탄압 사건.
발단
1942년 여름 함흥영생고등여학교 학생 박영옥이 기차 안에서 친구들과 조선말로 대화하다 조선인 경찰에게 적발되어 취조를 받음. 일제는 학생들에게 민족주의적 감화를 준 인물로 조선어사전 편찬원 정태진을 지목하고, 9월 5일 그를 연행해 조선어학회가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민족주의 단체라는 자백을 받아냄.
전개
10월 1일 이중화·장지영·최현배 등 11명이 서울에서 구속되어 함경남도 홍원으로 압송된 것을 시작으로, 1943년 4월 1일까지 모두 33명이 검거되고 48명이 증인으로 끌려가 혹독한 취조를 받음. 홍원경찰서는 사전 편찬 가담자와 재정 후원자 전원을 치안유지법의 내란죄로 몰았고, 이극로·이윤재·최현배·이희승·정인승·한징 등 16명이 기소되어 함흥형무소 미결감에 수감됨.
결과
수감 중 이윤재(1943년 12월)와 한징(1944년 2월)이 고문과 추위·굶주림 속에 옥사함. 1945년 1월 함흥지방재판소는 이극로 징역 6년, 최현배 징역 4년, 이희승 징역 2년 6개월 등 실형을 선고함. '고유 언어는 민족의식을 양성한다'며 사전 편찬 자체를 민족운동으로 규정한 판결로, 학회는 사실상 해산되고 『큰사전』 편찬도 중단됨.
A-4(V-2) 로켓 최초 성공 시험비행
1942년 10월 3일 독일 페네뮌데에서 A-4 로켓이 최초의 성공적인 시험비행에 성공함. 이 로켓은 이후 V-2로 실전 배치됨.
A-4는 액체연료를 사용하는 장거리 탄도미사일로 개발됐으며 이날 시험에서 약 84.5km 고도까지 상승함. 전쟁 후 미국과 소련은 V-2 기술과 관련 인력을 자국의 미사일·우주개발 계획에 흡수했고, 이 기술은 초기 탄도미사일과 우주발사체 개발에 큰 영향을 줌.
체스터 칼슨이 전자사진 기술에 관한 미국 특허 제2,297,691호를 취득함. 빛에 따라 전기적 성질이 달라지는 물질과 정전기를 조합한 복제 원리를 권리로 확보한 단계로, 이후 바텔과 할로이드가 기술을 개발하고 복사기를 상품화하는 기반이 됨. 실험 성공과 실제 사무용 복사기 출시 사이에 특허와 개발 협력이 이어졌음을 보여 주는 전환점.
맨해튼 프로젝트 책임자 레슬리 그로브스가 오펜하이머에게 핵무기 물리 연구와 설계를 담당할 새로운 중앙 연구소 Project Y를 이끌 것을 요청함. 오펜하이머는 대형 연구소 운영 경험은 없었지만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여러 이론 분야를 폭넓게 이해하고 연구자들을 통합할 수 있는 인물로 평가되어 선택됨.
미국 과학연구개발국장 배니버 부시가 그로브스와 오펜하이머가 참석한 회의에서 오펜하이머를 새로운 핵무기 중앙연구소 책임자로 삼는 방안을 승인함. 이후 그로브스와 오펜하이머는 연구소 부지를 물색했고 뉴멕시코 로스앨러모스를 Project Y의 장소로 선정함.
조선민족혁명당을 비롯한 좌파 독립운동 세력이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에 참여하고 김규식·장건상이 임시정부 국무위원으로 선임됨. 독립운동 진영의 좌우합작이 임시정부 안에서 제도화되기 시작한 전환점.
교토 도시샤대학교로 전학
릿쿄대학교를 떠나 교토 도시샤대학교 문학부에서 영문학 공부를 이어간 시기. 도쿄에서 교토로 옮겨 간 유학 생활의 두 번째 단계. 이듬해 체포되기 전까지 재학했으며, 오늘날 도시샤대학교가 윤동주의 삶과 문학을 기억하는 역사적 연결점.
마틴 스콜세지 출생
미국 뉴욕에서 출생. 리틀이탈리에서 성장하며 접한 이탈리아계 미국인 공동체의 생활과 거리 풍경은 훗날 《비열한 거리》를 비롯한 여러 작품의 바탕. 고향 뉴욕은 그의 영화에서 인물의 욕망과 갈등을 형성하는 주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1942년부터 이듬해까지 조선유도연합회 기관지 『유도』 등에 유교와 일본의 전쟁 수행을 결합하는 논설과 한시를 발표함. 징병제 실시를 찬양하는 한시 등도 발표하며 유교적 논리를 전쟁과 조선인 동원에 연결하는 글을 작성함.
함석헌이 『성서조선』 필화사건에 연루되어 서대문경찰서에서 1년간 미결수로 복역함. 이 사건으로 김교신·함석헌 등 『성서조선』 관계자들이 검거되었고, 잡지는 강제로 폐간됨.
코넬 울리치가 윌리엄 아이리시라는 필명으로 단편을 《Dime Detective》 1942년 2월호에 게재함. 이 작품은 1944년 단편집 《After-Dinner Story》에 「Rear Window」라는 제목으로 수록됨. 해당 텍스트가 1954년 영화 《이창》의 각색 원작으로 활용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