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도어 카진스키 출생
유나바머로 유명한 미국의 테러리스트 시어도어 카진스키. (~2023년)
유나바머로 유명한 미국의 테러리스트 시어도어 카진스키. (~2023년)
대한민국의 기업인 정몽근.
대한민국의 작가, 소설가 이효석. (1907년~)
중국 공산당의 중앙위원회의장, 정치인 천두슈. (1879년~)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윤세주. (1900년~)
나치 독일의 비밀경찰 총수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1904년~)
리비아의 정치인 무아마르 알 카다피. (~2011년)
일본의 정치인 나카이 히로시. (~2017년)
대한민국의 국회의원 이해봉. (~2012년)
1923년 국기의 날 회의에서 68개 단체가 마련한 국기 예법(National Flag Code)이 1942년 공법 77-623호로 연방 법률이 됨. 국기의 게양·취급·경례 방식을 규정했으며, 나치 경례와 닮았다는 이유로 '벨러미 경례'를 빼고 가슴에 손을 얹는 방식으로 바꾼 것이 대표적 변화임. 성조기에 대한 예우가 국가 차원에서 제도화됨.
성조기를 “어떻게 대하고, 언제·어디에·어떤 방식으로 게양할 것인가”를 정한 연방 차원의 예절 규범. 현재는 주로 미국 연방법전 제4편 제1장 (U.S. Code Title 4, Chapter 1 — The Flag)에 들어 있음. 원문은 미 하원 법령 사이트에서 볼 수 있음.
가장 중요한 점은, Flag Code는 대부분 민간인을 강제로 처벌하기 위한 법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따르는 예절 지침’에 가깝다는 것. 의회조사국 CRS도 Flag Code에는 일반적인 불이행에 대한 처벌 조항이나 집행 규정이 없고, 민간인·민간단체가 따를 수 있는 가이드로 기능한다고 설명.
즉, “성조기를 땅에 닿게 했다”, “밤에 조명 없이 걸어두었다”, “의류 디자인에 성조기 무늬를 썼다” 같은 행위가 Flag Code의 정신에는 어긋날 수 있지만, 그 자체로 곧바로 연방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구조는 아님. 다만 군대, 정부기관, 학교, 의전 행사 등에서는 별도의 규정이나 관행이 더 엄격하게 적용될 수 있음.
현대적 의미의 Flag Code는 1923년 워싱턴 D.C.에서 열린 National Flag Conference에서 여러 민간·애국단체가 성조기 예절을 정리한 데서 출발. 이후 1942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이 관련 공동결의에 서명하면서 연방법으로 성문화되었고, 1998년에는 기존 Title 36에서 현재의 Title 4로 재편입.
미국의 배우 해리슨 포드.
일제가 조선어학회를 독립운동 단체로 규정하고 10월 1일 이중화·장지영·최현배 등 11명을 시작으로 회원과 후원자들을 잇달아 검거함. 1943년 4월까지 33명이 붙잡혀 치안유지법 내란죄로 몰렸고, 사전 편찬 원고와 서적은 모두 압수됨. 학회 활동과 『큰사전』 편찬이 전면 중단된 일제 말기의 대표적 민족 탄압 사건.
1942년 여름 함흥영생고등여학교 학생 박영옥이 기차 안에서 친구들과 조선말로 대화하다 조선인 경찰에게 적발되어 취조를 받음. 일제는 학생들에게 민족주의적 감화를 준 인물로 조선어사전 편찬원 정태진을 지목하고, 9월 5일 그를 연행해 조선어학회가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민족주의 단체라는 자백을 받아냄.
10월 1일 이중화·장지영·최현배 등 11명이 서울에서 구속되어 함경남도 홍원으로 압송된 것을 시작으로, 1943년 4월 1일까지 모두 33명이 검거되고 48명이 증인으로 끌려가 혹독한 취조를 받음. 홍원경찰서는 사전 편찬 가담자와 재정 후원자 전원을 치안유지법의 내란죄로 몰았고, 이극로·이윤재·최현배·이희승·정인승·한징 등 16명이 기소되어 함흥형무소 미결감에 수감됨.
수감 중 이윤재(1943년 12월)와 한징(1944년 2월)이 고문과 추위·굶주림 속에 옥사함. 1945년 1월 함흥지방재판소는 이극로 징역 6년, 최현배 징역 4년, 이희승 징역 2년 6개월 등 실형을 선고함. '고유 언어는 민족의식을 양성한다'며 사전 편찬 자체를 민족운동으로 규정한 판결로, 학회는 사실상 해산되고 『큰사전』 편찬도 중단됨.
맨해튼 프로젝트 책임자 레슬리 그로브스가 오펜하이머에게 핵무기 물리 연구와 설계를 담당할 새로운 중앙 연구소 Project Y를 이끌 것을 요청함. 오펜하이머는 대형 연구소 운영 경험은 없었지만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여러 이론 분야를 폭넓게 이해하고 연구자들을 통합할 수 있는 인물로 평가되어 선택됨.
미국 과학연구개발국장 배니버 부시가 그로브스와 오펜하이머가 참석한 회의에서 오펜하이머를 새로운 핵무기 중앙연구소 책임자로 삼는 방안을 승인함. 이후 그로브스와 오펜하이머는 연구소 부지를 물색했고 뉴멕시코 로스앨러모스를 Project Y의 장소로 선정함.
조선민족혁명당을 비롯한 좌파 독립운동 세력이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에 참여하고 김규식·장건상이 임시정부 국무위원으로 선임됨. 독립운동 진영의 좌우합작이 임시정부 안에서 제도화되기 시작한 전환점.
1942년 일제의 조선 징병제 시행을 찬양하는 한시와 글을 발표하고 각지를 돌며 강연 활동을 벌임. 조선 청년의 전쟁 동원을 유교적 명분으로 정당화한 적극적 친일 행각.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 수록과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 포함의 핵심 근거가 된 행위.
함석헌이 『성서조선』 필화사건에 연루되어 서대문경찰서에서 1년간 미결수로 복역함. 이 사건으로 김교신·함석헌 등 『성서조선』 관계자들이 검거되었고, 잡지는 강제로 폐간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