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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렬

1974 20건
52년 전

기타리스트로 음악을 시작한 조용필이 자신을 보컬로 세워 결성한 밴드. 미국 시카고의 브라스 밴드의 영향을 받아 옛 음악 친구들을 모아 만든 7인조 브라스 밴드 (트럼펫 둘, 트롬본 하나, 기타, 베이스, 건반, 드럼)를 만들어 서울고고 클럽에서 연주를 함. 이후 '위대한 탄생'으로 개칭되어 그의 음반·방송·콘서트 전반을 함께한 전속 밴드의 출발점이 됨.

1974년 12월 빈트 서프가 요겐 달랄, 칼 선샤인과 함께 RFC 675 「Specification of Internet Transmission Control Program」을 발표함. 1974년 5월 논문에서 제시한 인터네트워킹 개념을 구현 가능한 전송 제어 프로그램의 기술 명세로 구체화한 문서로, 이후 TCP와 IP가 분리·발전하는 과정의 초기 규격이 됨.

박정희 대통령의 영부인 육영수 여사를 암살한 재일교포 문세광. (1951년~)

1961년 5·16 쿠데타 이후 군부 세력은 노조 활동을 금지시킴. 언론노조운동 역시 활동 위축되었고 1970년대 유신체제에서는 더욱 힘들어짐. 하지만 젊은 기자들을 중심으로 단결이 필요함을 자각, 동아일보 노조를 결성, 1974년 10월 24일 오전 9시 15분, 동아일보, 동아방송 기자, PD, 아나운서 등 80여 명이 동아일보사 3층 편집국에서 외부 간섭 배제, 기관원 출입 거부, 불법 연행 거부를 요구하는 자유언론실천선언 채택.

참고로 10월 23일 송건호 편집국장과 간부 3인은 서울대 농과대 학생들의 유신반대시위를 보도했다는 이유로 중앙정보부 조사를 받음.

자유언론실천선언문 전문

우리는 오늘날 우리사회가 처한 미증유의 난국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언론의 자유로운 활동에 있음을 선언한다.

민주사회를 유지하고 자유국가를 발전시키기 위한 기본적인 사회기능인 자유언론은 어떠한 구실로도 억압될 수 없으며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것임을 선언한다.

우리는 교회와 대학 등 언론계 밖에서 언론의 자유회복이 주장되고 언론인의 각성이 촉구되고 있는 현실에 대하여 뼈아픈 부끄러움을 느낀다.

본질적으로 자유언론은 바로 우리 언론 종사자들 자신의 실천과제일 뿐 당국에서 허용받거나 국민 대중이 찾아다 쥐어주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유언론에 역행하는 어떠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자유민주사회 존립의 기본요건인 자유언론 실천에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을 선언하며 우리의 뜨거운 심장을 모아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1.신문 방송 잡지에 대한 어떠한 외부 간섭도 우리의 일치된 단결로 강력히 배제한다.

1.기관원의 출입을 엄격히 거부한다.

1.언론인의 불법연행을 일체 거부한다. 만약 어떠한 명목으로라도 불법연행이 자행되는 경우 그가 귀사할 때까지 퇴근하지 않기로 한다.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사 기자 일동

아모스 트버스키와 다니엘 카너먼이 학술지 《사이언스》에 「Judgment under Uncertainty: Heuristics and Biases」를 발표함 (185권 4157호, 1124~1131쪽).논문은 사람들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복잡한 확률 판단을 단순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정신적 어림짐작인 휴리스틱을 정리함.

두 연구자는 대표성, 가용성, 정박과 조정이라는 세 가지 주요 휴리스틱을 제시하고, 이 과정에서 기저율 무시·표본 크기 오해·정박 효과 등 예측 가능한 판단 편향이 나타날 수 있음을 설명함. 인간 판단이 항상 확률 규칙이나 합리적 계산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을 체계적으로 제기한 연구였음.

이 논문은 이후 인지심리학의 판단 연구와 행동경제학, 행동재무학, 법·정책 분야의 의사결정 연구에 널리 영향을 준 대표적 연구로 평가됨.

대니얼 카너먼 전망 이론 이론적 선행 연구

천주교 사제들이 서울 명동성당에서 순교찬미기도회를 열고 〈제1 시국선언〉을 발표하며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발족과 활동을 공식화함. 선언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권이 침해될 때 피해자의 편에 서서 권리 회복을 위해 저항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천명함.

앞서 9월 23일 원주에서 열린 성직자 세미나에 참석한 사제 약 300명이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라는 명칭과 지속적인 인권·민주화 활동에 합의한 뒤 공식 출범으로 이어진 것임. 이날 기도회 뒤 사제·수도자·평신도들이 명동 일대에서 가두시위를 벌이며 유신체제에 대한 공개적인 저항에 나섬.

버틀러 램슨과 찰스 시모니가 이끈 팀이 알토의 비트맵 디스플레이 위에서 동작하는 문서 편집기 브라보(Bravo)를 완성. 다중 글꼴을 화면에 표시하며 화면과 출력이 일치하는 WYSIWYG 방식을 처음으로 구현한 프로그램으로 꼽힘. 이후 워드프로세싱과 전자 출판의 기반이 된 기술.

제록스 PARC

에티오피아 군부 조직인 데르그가 하일레 셀라시에 1세를 폐위하고 국가 권력을 장악. 1974년 초부터 경제난과 기근, 군 내부 불만, 학생·노동자 시위가 겹치며 황제의 권력이 급속히 약화된 끝에 이루어진 정권 교체로, 군부가 임시정부를 선언하고 헌법을 정지하며 의회를 해산한 결정.

1930년 즉위 이후 장기간 이어진 하일레 셀라시에 통치의 종말이자 에티오피아 제정이 실질적으로 붕괴하는 분기점. 왕정은 1975년 공식 폐지되었고, 이후 데르그의 군사사회주의 체제와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의 권력 장악, 적색테러로 이어지는 현대 에티오피아 정치사의 출발점.

제럴드 포드 미국 대통령이 대통령 포고령 4311호를 통해 전임 대통령 리처드 닉슨에게 1969년 1월 20일부터 1974년 8월 9일까지 미국에 대해 저질렀거나 저질렀을 가능성이 있는 모든 범죄에 대한 ‘완전하고 자유로우며 절대적인 사면’을 부여.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닉슨이 사임한 지 한 달 만에 이루어진 조치로, 향후 제기될 수 있었던 연방 형사 기소를 차단한 대통령 사면권의 대표적 사례.

포드는 워터게이트를 둘러싼 국가적 분열을 끝낼 필요가 있다는 점을 사면의 이유로 제시했지만, 결정 직후 대통령의 사면권 범위와 권력자의 법적 책임을 둘러싼 거센 논쟁이 발생. 워터게이트 이후 미국 정치의 신뢰 회복 문제와 대통령 권한의 한계를 함께 보여주는 사건.

천주교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가 명동성모병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신헌법과 비상군법회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내용의 〈양심선언〉을 발표함. 지학순은 유신헌법이 민주헌정을 파괴한 뒤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와 관계없이 만들어졌다며 무효라고 주장하고 자신의 군법회의 출석 거부 의사를 밝힘.

지학순이 민청학련 사건과 관련해 구금·기소된 데 대한 천주교 사제들의 반발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됨. 이후 사제들이 공동으로 인권 회복과 민주화를 위한 행동에 나서면서 같은 해 9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결성으로 이어짐.

러셀 헐스와 조지프 H. 테일러 주니어가 아레시보 관측소에서 PSR B1913+16의 신호를 처음 포착함. 펄스 주기의 변화로 보이지 않는 동반천체와 약 7.75시간 주기의 쌍성계를 이룬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강한 중력장에서 일반 상대성이론과 중력복사 효과를 장기간 정밀 시험할 수 있는 천체 실험실이 마련됨.

일반 상대성이론

미국 사회학자 데이비드 필립스가 1974년 자살 보도와 후속 자살의 상관관계를 실증 분석한 연구를 《미국사회학보》에 발표하며 모방 자살 현상을 '베르테르 효과'로 명명함. 괴테 소설이 촉발한 18세기 모방 자살에서 이름을 따옴. 매체의 자살 보도 준칙 논의의 학술적 토대가 됨.

베르테르 효과